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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단체를 만나다 [28] - 노나메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4-27
첨부파일 노나메기.jpg 조회수 1,617

“같이 일하고 같이 잘살되, 올바로 잘살자”


노나메기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치악로 2454

T 070-7789-1145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사업 이야기를 하자면 어쩔 수 없이 개인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학 시절, 상지대 민속연구회에서 활동했다. 탈춤도 추고 , 꽹과리도 치고. 그런데 농악으로는 졸업한 뒤에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그때만 해도 북 치고 장구 치던 학생들은 빨갱이 취급받기도 했고. 어쩔 수 없이 경영학과 출신으로서 건설 회사에 취업했다. 돈은 회사에서 벌고, 자아실현은 민속연구회에서 이어 가는 생활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접어들면서 사회에 ‘웰빙’ 바람이 불었다. 가히 모든 것에 웰빙이 붙었다. 집도 웰빙, 먹는 것도 웰빙. 여담이지만 한살림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도 이때였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추어 주거 공동체의 개념이 뜨기 시작했다. 동호인이든, 예술인이든 모여 살면서 공간도 공유하고, 아이도 공동으로 키우고. 원주 지역 사회에서도 주거공동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공간에 관련된 이슈이다 보니, 건설 회사 직원으로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 개인적인 관심은 점점 커져만 갔고, 결국 회사는 물론 민속연구회 활동도 접게 되었다. ‘집짓기’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집짓는 방식 자체도 웰빙 바람을 타고 있었다. 자연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흙, 통나무 건축이라든가, 공동체을 기반으로 하는 두레, 품앗이 건축 등. 우선 탐방부터 다녔다. 흙집, 통나무집, 한옥 등. 2003년에 건설 회사를 그만두고 한옥 짓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엔 문화재를 보수하며 전국을, 특히 산지를 떠돌아다니게 됐다. 원래 목표는 서민들의 살림집을 짓고 주거공동체를 세우는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지역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결국 문화재 보수는 관두고 원주로 돌아왔다. DIY 건축 교실, 전통 건축 체험 등을 진행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여의치 않은 점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한옥은 건축 비용이 너무 커서 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웠고, 개인적으로는 교육을 통해 생계를 해결할 수도 없었다. 바로 이 시기에 사회적기업 육성가 과정을 만났다. 사회복지투자지원 재단이 주관하는, 전국에서 단 네 개의 사업만을 선정하는 공모였다. 일정한 인큐베이팅 기간이 있고, 이후엔 각 사업에 몇 억씩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2008년 말. '노나메기'라는 사업체 명칭으로 제안서를 냈다. '노나메기'는 같이 일하고 같이 잘살되, 올바로 잘살자는 뜻을 품고 있는 순우리말이다. 당시만 해도 건축​을 사회적기업으로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기에 최종 네 단체 중 하나로 선정될 수 있었다. 정말 좋은 기회였지만… 당시 정부에서 정치적인 압박이 있었고 재단 규모가 축소되며 지원 사업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지원은커녕 교육도 원활히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때의 공모사업 덕분에 지금의 ‘노나메기’가 시작된 셈이다. 

 



노나메기의 사업을 소개해 주세요

‘노나메기’로 사업을 준비하면서 그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살림’, ‘공동체’ 개념이 확장되었다. 무엇보다 주택에 ‘에너지’라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유럽의 패시브 하우스, 이른바 대안 주택 등 체르노빌 원전 사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대적 흐름을 알게 되면서였다. 주택에 대한 고민은 에너지에 대한 고민과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단열과 기밀을 철저히 하는 것부터 대안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사업은 독일의 선진적인 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예컨대 열화상 카메라로 주택을 검사하여 열이 새는 곳을 찾아내어 보완하는 방식이다. 쉽게 설명하면 외풍을 없애 준다고 보면 된다. 여름엔 더 시원하고, 겨울엔 더 따뜻하게. 당연히 에너지 소비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식적으로 통용되는 사업명은 없지만 대체로 ‘에너지 저감형 주택 사업’, ‘주택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주택 보수 사업은 사회복지와도 연결된다. 예전에 원주의료사협(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 대해 ‘집 고쳐 ​주는 병원’이라고 소개하는 신문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다. 기관지 환자들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이유를 살펴보니 근본적인 원인이 ‘집’이었다. 노후 주택의 누수, 결로 등으로 생기는 곰팡이가 문제였던 것이다. 주택 열 개 가구를 보수해 주는 사업이 진행되었고 여기에 자문으로 참여기도 했다. 2009년 설립부터 지금까지, 노나메기는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에너지, 환경, 사회복지, 취약계층 일자리 제공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아우르는 비전을 세워 왔다.

 



사업을 운영하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정부의 사회적기업 정책은 최저임금만 주면서 무조건 취약계층을 많이 고용하라는 식이다. 아마 많은 사회적기업이 공감할 텐데,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사업적인 전문성까지 갖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게 건축 분야는 훨씬 어려울 수밖에 없다. 몸이 편치 않거나 고령이거나 심지어 일할 의지 자체가 부족한 노동자들과 함께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집수리를 해야 하는데 망치를 처음 잡아 보는 사람도 있다. 혼자 할 일을 둘이 하거나, 하루에 할 일을 이틀에 나눠 해야 한다. 경쟁력 차원에서 당연히 매출을 높이기 쉽지 않았다. 그나마도 이익을 축적할 수 있었던 건, 사업의 주축이 되는 구성원들이 인건비를 아껴 온 덕분이었다. 초창기엔 장비나 시설도 개인적으로 마련하여 활동했다. 지금의 이익잉여금은 여러 구성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창고를 사무실로 제공해 준 한살림의 도움도 컸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노나메기는 정부 지원 사업을 주축 사업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원 사업이 있는 시기에는 현금 유동성이 받쳐 주고, 외에는 현금이 마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업 다각화가 필요하다. 2019년엔 기존의 지원 사업 외에,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사업을 꽤 많이 수행했는데 올해도 꾸준히 추진할 예정이다. 나아가 ‘장애인 편의시설 전문’ 기업으로 활동 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현재 사회복지 정책이 고령화 문제를 ‘지역사회통합돌봄’으로 접근하는 추세인데, 여기에 ‘주거’는 반드시 포함되는 키워드다. 도시재생과도 연관되는 이슈로, 공동화되는 원도심의 빈 집 문제가 있다. 이 빈 집들을 어떻게 손보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집을 수리하고 보수하는 사회적기업으​로서 앞으로의 역할을 준비할 것이다. 한편 사회 공헌 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지체장애인협회와 협약을 맺어 교육부터 컨설팅까지, 장애인들의 사업 준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 베트남의 한 마을과 교류하며 사회적경제 운동으로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도록 자문으로서 지원할 예정이다. 다양한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이 활동에 함께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원주가 협동조합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으려면, 그만한 의식을 가지고 사회적·국제적 공헌 사업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한마디

애초에 사회적기업이란 수익성이 떨어지기가 쉬운 사업체일 수밖에 없다. 수익성이 있다면, 거대 자본이 그 사업을 내버려둘 리 없다. 사회에 필요하지만 돈은 안 되는 수많은 사업들이, 활동가들의 희생으로 지금껏 성장해 온 것이다. 고용 안정도 없이, 최저임금 수준의 대가만으로. 사회적경제 영역의 정책이 이러한 활동가들을 보호하고, 더 키우는 쪽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 김이석
도움 주신 분 변재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