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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8-13
첨부파일 추월대_.jpg 조회수 1,065

언덕배기 달 가까운 동네에 가면 전망 좋은 곳
① 추월대​




익숙한 풍경도 먼데서 다시 바라보면 아름답게 느껴진다. ‘낯설게 하기’라는 문학용어가 있다. 이야기 의 형식이나 시간구성을 약간 비틀어줌으로써 흥미를 유발하는 작법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지루 한가? 그건 아마도 너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돋보기 대신 망원경으로, 번화가 대신 골목길로 낯 선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려보자. 새로운 광경이 펼쳐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동남산재개발지구’라는 말을 곱씹어 본다. 원동+남산+재개발+지구. 원동 지역 남산 일대에 있으 며 언젠가 개발이 될 예정이라는 뜻을 명확히 전달한다. 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언제가 될지는 몰라 도 ‘싹 다 갈아엎는다’는 의미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역사가 생긴다. 원동남산재개발지구도 마찬가지다. 1910년 원주군 본부면 상동리에 속했던 이 지역은 1938년에 이르러 남산정(南山町)이 라는 일본식 이름이 붙었다가 다시 남산의 둥근 모양새에 착안해 원동(園洞, 둥글 원)이라 부르기 시 작했다. 당시 남산에는 신사(神社)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6·25 전쟁 전에는 소나무가 많았지만 피난 민들이 하나둘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지금과 비슷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추월대로 향하는 길, 골목 어귀의 오래된 슈퍼마켓 하나가 눈길을 붙잡는다. 빛바랜 간판을 어깨에 짊어지고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을까. 괜히 짠해지는 마음을 뒤로하고 가파른 골목을 오르다보면 오 래지않아 자그마한 기념비가 보인다. 원주 구도심의 랜드마크인 KBS원주방송국과 원동성당, 저멀리​ 원주천과 치악산까지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추월대(秋月臺)가 있다. 대(臺)는 평지보다 높이 있 어 사방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가을 추에 달 월, 말 그대로 가을 달을 바라보는 전망 대다. 종종 동네 어르신들께서 마실을 나와 계시곤 하는데, 도란도란 대화 나누시는 모습이 퍽 정겹 다. 오랜 세월 단출한 함석판 하나가 설치된 공터로 유지되던 추월대는 지난 1995년 원주시와 원주문 화원의 주도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인조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동주 이민구가 남산 봉우리에 올라 가을달을 보 고 처음으로 ‘추월대’라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이민구는 과거에 수석으로 급제한 당대의 수재이며 문장가였다. 평생 쓴 책이 무려 4000권 규모라니 필력이 짐작된다. 조선시대엔 팔도에 내로라하는 묵객들이 추월대에 올라 시를 읊었다. 추월대 기념비에 새겨진 이민구의 낭만적인 시 ‘등추월대(登 秋月臺)’를 읽다보면 어느 가을날 높이 뜬 보름달 아래 서 있는 듯, 호젓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된다.

관아에 한가한 날 많아서 / 官齋豐日暇
다시 남대의 가을 경치 감상하네 / 又賞南臺秋
유람한 때 언제던가 / 遊矚詎幾時
아득히 묵은 자취에 시름하네 / 莽然陳跡愁
하늘 높고 남은 해 저물어 가니 / 天高餘景晏
들녘 바람 소리 날로 스산하네 / 野風日脩脩
빈 교외에는 가을 기운 빛나고 / 郊虛金氣晶
벼는 이미 반이나 수확했네 / 秔稻半已收
농가마다 한 해 농사 마쳐 / 田家各歲功
아침저녁 낫질도 쉬는 구나 / 鎌銍朝夕休
슬프게도 객지 찾아가는 사람은 / 所悲客行子
경치 좋은 곳에 오래 머물기 어렵네 / 勝地難久留
먼 유람이 사람을 늙게 하는데 / 遠遊令人老
하물며 늘그막의 근심까지 겸했음에랴 / 況兼遲暮憂
슬픈 노래와 요란한 연주 소리 / 哀歌與急管
너 때문에 또 수레를 멈췄구나 / 爲爾且停輈
좋은 때는 기다리지 않고 지나가서 / 佳期逝不待
서리 이슬이 하얀 머리를 적신다 / 霜露霑白頭
잔 내려놓고 먼 길 생각하니 / 抛杯戀長道
이별하는 마음 참으로 아련하다 / 離別眞悠悠​

*남대(南臺) : 추월대가 원주 남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남대라고 하였다.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db.itkc.or.kr)



한 때 추월대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일산동 석불좌상이 있었다. 1962년 강원감영으로 옮겼다가 2000년에 다시금 원주역사박물관으로 이전됐 다. 불상뿐만 아니라 사람도 점점 남산 자락을 떠나가고 있다. 쓰러질 듯 좌우 로 늘어선 담벼락과 빈집들이 골목에 적막을 더한다. 예전에는 추월대 공터에 서 반상회가 열리기도 했단다. 시절은 저물었어도 여전히 달빛은 추월대를 은 은히 비춘다. 시심을 품고 남산 언덕을 올랐다던 옛 시인들처럼 언젠가 추월대 에 올라 한 수 읊어보고 싶다.   

 사진·글 황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