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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어 함께사는 삶을 꿈꾸다. - 이숙자 횡성군 언니네텃밭 영농조합법인 대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01
첨부파일 15042307461ca113fd185fbb8aa5dba2502ec7402d.jpg 조회수 5,315

섬강을 따라가며 곳곳에서 만나는 벚꽃들이 내년을 기약하던 지난달 21일 횡성읍 북천리 텃밭에는 밀짚모자를 눌러쓴 언니들로 북적였다. 경기도 고양과 파주, 남양주를 비롯해 서울 등에서 찾아온 행복중심생협 조합원 언니들이었다. 이날 북천리 텃밭에서는 도시민과 함께 가꾸는 토종농작물 홍보와 체험용 교육농장 개장식이 개최됐다. 횡성군여성농민회 주관으로 열린 이 날 행사에는 횡성군 여성 농민과 행복중심생협 조합원 등 30여 명이 참여해 땅콩 등 토종씨앗을 직접 심기도 했다. 이곳에서 횡성으로 귀농한 지 15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횡성군 언니네텃밭 영농조합법인 이숙자(52) 대표를 만나 언니네텃밭이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날라리 농사꾼, 언니들에게 희망을 쏘다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분주하게 뛰어다니던 이 대표는 조합원들이 토종씨앗 심기를 시작하자 한숨을 돌렸다. 날라리 농사꾼이라며 자신을 한껏 낮추는 이 대표가 귀농해서 주로 하는 일은 소를 키우는 일이다. “제가 횡성군 언니네텃밭 대표와 횡성군여성농민회 회장을 맡고 있는 것은 젊다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날라리 농사꾼이죠. 소를 키우기 때문에 밭작물 농사를 짓는 분들보다 시간이 많아요. 밭농사하는 분들은 영농철이 되면 시간이 부족해 각종 회의나 교육, 대외활동을 할 여력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시간이 좀 많고 젊다는 이유로 대표직을 맡고 있는 셈이죠.” 횡성군 언니네텃밭을 운영하면서는 70~80세의 언니들 통장에 돈을 꽂아 줄 때가 가장 행복하고 기쁨을 느낀다며 환하게 웃었다.

 

제가 가장 젊기 때문에 연세가 지긋한 언니들의 뒷 수발을 하는 셈입니다. 특히 언니들 통장에 돈을 꽂아 줄 때가 가장 기쁘기도 하지요.” 언니네텃밭 조합원이 되기 위해서는 여성 농민이어야 하고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이 반드시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다.

나이가 많은 언니들은 본인 이름으로 통장이 없었는 데 언니네텃밭을 통해서 통장이 생긴 겁니다. 매월 적게는 30~40만 원, 많게는 70~80만 원씩 월급처럼 통장에 돈이 들어오니 얼마나 큰 소득입니까. 언니네텃밭을 통해 언니들이 지속적인 생계를 꾸릴 수 있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더욱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니네텃밭 횡성공동체

횡성공동체는 토종곡식과 토종작물, 토종 배추와 고추, 콩 등을 꾸러미에 넣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여성 농민의 권익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것이 목표다.

채종포 행사를 하게 되면 씨를 받아서 회원들에게 나눠주고 심게 해서 꾸러미에 넣어 판매하는 것이죠. 그래야 우리 토종씨앗도 지킬 수 있는 것 같아요. 한가지 작물을 선택해서 대량으로 농사를 짓고 소득을 올리는 것만 목적으로 하다 보니 많은 작물이 사라져 가고 있어요. 종자의 경우 외국의 다국적 기업 점유율이 70%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토종 작물이 사라지고 덩달아 농민들의 생산비도 올라가는 것은 뻔한 일이지요.” 종자만큼은 농민에게 권리가 있고, 또 종자를 지켜야 하는 의무도 줘야 한다며 종자주권을 강조하는 이 대표는 종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토종종자 지키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농민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먹고 살 수 있는 소득이 있어야 하잖아요. 토종 곡식을 지으라고 하면서 소득과 연결되지 않으면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니네텃밭 제철 꾸러미는 토종 농작물을 우선으로 하고 소비자들과 함께 체험도 하고 알리고 하면서 널리 판매하려고 해요. 우리의 장점이고 주력사업이기도 하죠.”

      

농사는 나의 희망

농민이 농사일하는 것은 사실상 생계를 위해서다. 귀촌한 사람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작게 텃밭을 운영하며 가족이 먹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농민도 회사원이나 노동자들이 월급을 받듯이 농사를 통해 나오는 소득이 월급인 셈입니다. 따지고 보면 보람만 가지고 농사일을 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도 주 소득원인 소를 키우고 텃밭을 하고 있는 것이죠. 먹고 살기 위한 생계수단입니다. 이렇듯 농민들도 모두 생계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언니네텃밭은 단지 돈만 벌기 위해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이왕에 농사를 짓는 것이라면 환경은 물론 가족 건강, 자연, 함께하는 사람들과 건강한 먹거리, 돈이 목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먹거리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대표는 그렇다고 농약을 사용하고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농민들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농민이 농사를 짓는 것은 역시 생업의 수단이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서 농약도 사용 안 하고 제초제도 사용하지 않으면서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분들에 대한 생산성 보장을 해줘야 해요. 그만큼의 생산비를 보장해주기 위해 저희가 선택한 것이 바로 언니네텃밭입니다. 소득에만 목적을 둔다면 단품종을 한두 가지만 해야 합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하니까요.”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다

대량생산으로 소득을 올리는 농민들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식량주권과 종자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이 대표가 목소리를 높인다.

대량생산으로 인해 많은 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언니네텃밭은 다양한 종을 지켜내고, 살리고 건강한 먹거리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서는 가장 적합한 것이 언니네텃밭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들과 직거래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지요. 그냥 직거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되는 것이죠. 와서 체험도 하고 농사도 짓고, 먹어보고, 농민의 마음을 알고 얼굴도 보고 말입니다.”

횡성군 언니네텃밭은 4년째 고양파주, 서울동북, 남양주, 용산생협 등 행복중심생협 4곳과 자매결연을 하고 매월 작업을 함께한다. “자매결연을 한 행복중심생협 조합원들은 토종씨앗을 심고만 가는 것이 아니라 매월 한 번씩 생협별로 돌아가면서 텃밭에 와 풀도 매고 농산물이 자라는 것도 확인합니다. 11월까지 함께하고요. 마지막으로 씨앗나눔 행사에도 참여합니다. 단순하게 참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토종 작물인 옥수수와 콩 등을 사주기도 하지요. 이분들 덕에 토종지키기 사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언니네텃밭이 처음 시작보다 많이 발전하게 된 것은 여성농민회와 이분들의 영향이 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토종 작물 꾸러미

횡성군 언니네텃밭 제철 꾸러미에는 7~8가지 정도 농산물이 들어간다. 두부와 계란은 기본이고 채소 3가지와 곡식 1가지, 옥수수와 감자, 제철 과일 등으로 구성된 간식, 여기에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공 반찬도 넣어준다. 도시 소비자들의 반응은 더할 나위없이 좋다. “지금까지 언니네텃밭이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만 보면 소비자 반응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소비자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먹겠다는 욕구가 있고 이와 함께 여성농민회가 어렵게 농사짓는 농촌 현실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습니다. 또 토종에 대한 중요성도 자연스럽게 알게되는 것이죠. 토종에 대한 중요성은 종자주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언니네텃밭의 식량주권 사업에 제철 꾸러미가 있다면, 종자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토종씨앗 지키기, 소비자 교류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언니네텃밭 제철 꾸러미가 없어지지 않고 잘 유지되는 것은 물론 지금보다 더 발전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한다.

언니네텃밭 제철 꾸러미가 좀 더 늘어나면 토종작물을 지키는 일에도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판로가 확대돼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우리 농산물을 많이 이용해 주고 특히 토종 농산물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 주길 바랍니다.”

 

이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시간. 텃밭 현장에는 행복중심생협 조합원들이 분주하게 땅콩 씨앗을 심고 있었다. 조금 서툴러 보이기도 하지만 그 정성이야 웬만한 농부의 손길 못지않았다. 박태정(45·행복중심 용산 생협)씨는 채종포 체험에 벌써 3번째 참여를 했는데 우선 서울을 벗어나 자연과 함께해서 좋다우리가 뿌린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심고 가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글.사진. 원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