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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서 보낸 편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9-19
첨부파일 추석.jpg 조회수 1,221



‘정성’이 필요한 시간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낸 노(老) 교수님이 계십니다. 지금은 명예교수로 은퇴를 하셨지만 평생 유교를 공부하고 연구한 분입니다. 그분께서 차례나 제사에 대해 정말 단순하고 상식적으로 설명해 주셨는데, ‘정성이 들어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물 한 그릇을 올려놓더라도 정성이 들어가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성균관에서 추천하는 차례 상만 보아도 음식이 많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특별히 준비할 음식이 없습니다. 과일과 포, 차(茶)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의 명절은 넘쳐나게 음식 장만을 하고, 또 그것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나왔을까요.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음식을 장만하더라도 정성이 들어가면 다른 것은 문제될 것이 없고 스트레스도 덜 받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올해 추석은 코로나19 사태로 우울한 명절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스트레스까지 받으면 정말 억울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 제주에서 만난 지인 부부는 육지에 살 때보다 섬에 살면서 명절로부터 자유로워 졌다고 말합니다. “제주에 있으니까 명절에서 좀 자유로운 것 같더라고요. 부모님께서 명절에 찾아뵙지 못해도 이해를 해준다고 할까요? 항공기 사정도 그렇고, 배편을 이용한다는 것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시죠.” 

잘 아는 지인 분은 그런 말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하는 말인데, “명절 연휴에 꼭 차례를 지내야겠다고 생각하면 멀리 외국에서 차례를 지내도 된다. 귀신이 된 나는 훨훨 날아서, 혹은 뿅 하고 너희들이 있는 곳에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라고요.

이들에게서 명절증후군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추석은, 혹은 명절은 그저 풍성하고 좋은 날로 기억됩니다.

제주에 계신 지인 분은 한가위처럼 넉넉하고 풍성한 마음을 가진 부모님 덕에 코로나19로 흉흉한 때, 제주에서 행복한 추석을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 교수님 역시 올해 추석도 아주 간소하게 보낼 겁니다. 대신 누구 못지않게 정성이 들어갈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모든 분이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요즘, 넉넉하고 풍요로워야 할 추석에 명절증후군이란 스트레스까지 덤으로 얹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분이 슬기롭고 지혜롭게 ‘한가위’ 를 보내길 기원합니다.


편집장 원상호

 

 

여는 글
우려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8월 중순부터 전국 각지로 퍼진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제 겨우 일상으로 돌아가나 싶었는데, 다시 멀어졌습니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다시 사람들과도 멀어졌습니다. 올 가을에 결혼식을 올리는 친구가 직접 청첩장을 주려고 몇 주 전부터 만남을 약속했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습니다. 주말에 만나자는 다른 약속도 연거푸 사라졌습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시대로 바뀐다고 했을 때, 내심 그런 세상이 빨리 오기를 바랐습니다. 온라인 시대일수록 더 효율적이고 덜 피곤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니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일찍 찾아온 온라인 시대는, 오프라인에서 누군가를 직접 만나는 일이 새삼 어떤 가치는 있는지 알려줬습니다. 늘 평평하기만 한 화면과 화면 글자 밖에는 서로의 눈빛과 표정, 현장 분위기가 입체적으로 살아있습니다. 이렇듯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단순히 언어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추석이 다가옵니다. 어떤 날보다도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날인데, 과연 우리들은 서로 만날 수 있을까요?

이번 호의 주제는 ‘추석’입니다. 추석을 앞둔 원주 사람들의 짤막한 소감과 추석 물가에 관해 살펴봅니다. <생명·협동운동 모색을 위한 1차 포럼>과 ‘원주다움의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에 관한 글도 실었습니다. 강원아카이브협동조합과 노무법인 참터의 소식과 미로시장에 있는 ‘미로주방’ 이야기도 담았습니다. 

‘턱 밑까지 찬’ 코로나19가 하루 빨리 사라져서 모든 사람이 다시 일상을 찾길 간절히 바랍니다.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