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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에세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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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을 말리는 시간



작년 이맘때 어깻죽지에 머물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날개뼈를 넘어섰다. 

숱도 많다. 매일 허리를 숙여 머리카락에 물과 샴푸, 린스를 칠하는 일이 버거워졌다. 자연스레 머리카락을 말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삶은 귀찮아도 해야 하는 일투성이다. 길고 무거운 머리카락을 말리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뜨거운 헤어드라이어 바람을 맞으며 한쪽 팔로 머리카락을 휘적거리다 보면 뜬금없이 떠오르는 생각이 많다. 가깝게는 어제 먹은 저녁 메뉴부터 멀게는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 아침에는 이 소재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며칠 전 치른 결혼식에서 실수한 것을 떠올렸다. 머리를 말리는 시간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거나 반대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일 때가 많다. 그래서 하루를 계획하거나 하루를 성찰할 때가 많다. 

정신없이 시작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시간 속에서 나 홀로 머리카락 말리기에만 집중하는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오롯이 지금 하는 것에만 몰두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은 자꾸 멀리 저 멀리 간다.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거나 돌아갈 수 없는 과거나 상상이 전부인 미래로 간다. 

헤어드라이어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로 거울이 뿌옇다. 마치 미래 같다. 잘 보이지 않는다. 이윽고 헤어드라이어 전원을 끄고 열기에서 빠져나온다. 어김없이 하루가 오간다.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