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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의 탄생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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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세상을 바꾸다



“강남에서 1시간” 원주의 모 아파트를 지으며 광고에 내세운 문구이다. 광고에 따르면 수도권 전철을 원주역까지 연장하면 강남·판교역에서 1시간이 걸린다고 홍보한다. 서울과 수도권으로 진입하는 철도 소요 시간이 집을 사고팔 때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지역과 지역을 잇는 편리한 교통수단이자 건설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철도는 언제부터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 온 걸까?


철도의 등장

철도 건설은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최초의 철도는 사람이 아니라 화물을 옮기려고 만들었다.
광산에서 생산한 석탄을 공장이며 도시로 운반하고 지방에서 생산한 식량을 도시로 운반하고 공장에서 생산한 옷감을 항구로 운반하는 식이었다. 

1825년 영국의 스톤턴에서 달링턴의 40km 최초의 철도 구간에서 ‘철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스티븐슨이 만든 화물용 증기기관차 로코모션호가 첫 운행을 시작했다. 이후 1833년부터 여객 수요가 늘어나며 본격적으로 여객 수송을 위한 운행을 시작한다. 운행을 시작한 첫해에 약 40만 명의 승객이 이용했는데, 여객 운임 수입이 화물 운임 수입의 두 배 수준에 달했다. 

한편, 사업가 윌리엄 제임스 채플린은 철도가 생기기 전에 육로에서 유일무이한 장거리 여객 운송수단인 역마차 사업을 접고 철도 사업에 투자한다. 그가 투자한 런던-사우샘프턴 노선은 10만 명의 승객으로 태우고 2년간 시험 운행을 거친 끝에 1840년 개통한다. 이것은 철도 문화를 꽃피우며 1840년대 이후 9,500km에 이르는 영국 철도 노선 건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철도 이용 여객 수는 매년 증가해 1840년에는 100만 명, 1870년에 이르러서는 연간 3억 1,600만 명을 기록한다. 


철도 건설 열풍

철도 건설이 늘어나며 여러 현상이 일어났다. 철도 건설 투자 열풍이 불면서 투자 실패로 경제 손실​을 본 중산층이 늘었다. 세인트 팽크런스 수도원이나 스톤 서클 같은 선사·중세 시대의 유적지를 뚫고 철도를 만들거나 빈민가와 기념물을 철거 후 역을 만들어 예술가 등의 일부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농민들은 목초지를 가로지르는 철도 때문에 가축과 농작물에도 피해가 생겼다고 항의했다. 한 언론에서는 철도가 인간을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철도 인명 사고도 늘었다. 1830년 철도 개통식에서는 저명한 지방 의원이 기관차에 치여 두 다리를 잃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탈선, 충돌, 폭발 같은 사건도 계속 일어났다. 1865년에는 수리 때문에 철도를 제거한 철도교를 건너다 강으로 추락한 스테이플허스트 철도 사고가 대표적이다. 


세상을 바꾼 철도

철도는 영국의 국토의 풍경뿐만 아니라 역세권 도시 개발과 표준시계 도입, 집과 일터를 분리했다. 

여객 수요가 증가하자 당시의 철도 회사는 도심지에 가까운 철로 부지의 사용 허가 요청했으나 거절당하고 그곳에서 2.5km 떨어진 땅 위에 기차역을 지었다. 그러자 몇 년 채 지나지 않아 기차역 주변이 신흥도시로 부상했다. 철도 회사는 기차역을 짓는 것만으로도 철로 주변 땅의 인구 통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도가 생기기 전에는 정확히 시간을 지켜야 하는 사람은 군주뿐이었다.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은 하루를 오전과 오후로만 구분했다. 공식 시간도 마을마다 모두 달랐다. 하지만 기차가 등장하며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시계의 정확성이 중요해졌고 표준 시계가 등장했다. 1840년부터 ‘철도 표준 시간’, 즉 그리니치 표준 GMT(Greenwich Mean Time)를 채택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장거리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통근 수요도 늘었다. 낮에는 도시에 있는 각자의 사무실로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가족이 있는 도시 밖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수요가 많아지면서 철도회사는 정기권을 도입했다. 하지만 정기권 가격은 당시 노동자의 평균 연봉에 해당하는 높은 가격이어서 이용객은 주로 소득이 높은 사업가나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우리나라의 철도

1899년 9월, 우리나라의 첫 철도 노선이자 노량진-제물포 간 총 길이 33.2km에 이르는 경인선이 개통했다. 1905년 경부선, 이듬해 경의선 그리고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도 개통했다. 서울역은 1925년에 준공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이러한 철도 개발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 체제를 강화하는 목적이 더 컸다. 

1967년부터 기존의 증기기관차를 대체하는 디젤기관차 운행을 시작했다. 5년이 지난 뒤에는 제어 기능을 보완한 디젤전기기관차가 등장했다. 오늘날에도 달리는 무궁화호가 디젤전기기관차에 해당한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비둘기호와 통일호 운행을 중단하고 2004년에 경부 및 호남 고속철(KTX)의 시대가 열렸다. 2020년 현재 전국의 20개의 본선 철도 노선이 화물과 승객을 수송한다.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