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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온 협동조합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8-26
첨부파일 나를_찾아온_협동조합.jpg 조회수 1,677

나를 찾아 온 협동조합

 


  <이 글은 「계간 무위당사람들」 71호에 실려 있으며 (사)무위당사람들과 저자의 허락 하에 재수록합니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협동조합 덕후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라고 무조건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 덕질의 우선순위는 내가 조합원으로 있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다. 그래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용하고, 필요할 땐 증자를 하고, 대의원 노릇도 한다. 의료사협 의원의 원장님들이 너무 편하면서도 존경스럽고 의지가 된다. 거의 매주 생협의 물품을 공급받고, 필요할 땐 오가며 가까운 매장을 이용한다. 다른 지방에 있어 이용하기 어렵지만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의 협동으로 만든 로컬푸드협동조합이나 선후배들이 만나 지역을 위한 일꾼이 되고자 만든 협동조합도 좋아한다. 그래서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읽을 만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협동조합을 잘 이해해서 제대로 운영하도록 책도 썼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협동조합의 노동자나 활동가, 조합원이나 임원들을 위한 학습을 기획해서 길잡이를 한다. 내 덕질의 하이라이트는 친구들이나 이리저리 만나는 사람들과 협동조합에 대해 수다를 떠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운영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이 좋은 걸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이용하고 참여할 수 있을지 밤새 얘기해도 지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할 때도 그의 모든 면이 맘에 들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듯, 내가 협동조합을 사랑하는 까닭도 협동조합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경영이 미숙한 점도 있고, 어떤 때는 고집스럽게도 나쁜 버릇을 고치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 자체를 온전히 인정해주고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듯 협동조합 또한 그런 마음과 자세로 대할 뿐이다. 지청구를 하고 잔소리 한다고 변하지 않는 것이 사람이듯 협동조합 또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보고 참여할 때 더 성숙하고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한다는 전제 하에 많은 협동조합을 비롯해 내가 속한 협동조합의 답답한 구석, 내 목의 가시처럼 걸려 넘어가지 않는 구석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문턱 높은 협동조합

내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협동조합은 단연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다. 거의 매주 인터넷으로 주문해 공급을 받고, 오가며 매장도 종종 이용한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문지방이 달도록 뻔질나게 드나드는 생협의 문턱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높아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내내 걸렸었다. 엄밀히 따져보면 생협의 먹거리와 제품이 그다지 비싼 건 아닌데도 유기농은 비싼 것, 생협은 좀 사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란 인식이 박혀있다. 그럴 때마다 난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주기도 하고, 많이 먹기보다는 좀 덜 먹더라도 건강한 먹거리를 챙기는 게 더 낫지 않냐고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 좋은 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신양객잔’이라고 불리는 나의 집에서는 종종 시간을 잊고 수다를 떠는 만찬이 열린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그 수다의 향연에는 기를 보충할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 나는 처음부터 거한 한 상을 차리지 않고 그 때 그 때 즉석에서 친구들이 먹고 싶은 것을 요리를 해서 갖다 바친다. 막걸리를 마실 땐 동태전이나 김치전, 와인을 마실 땐 치즈와 파스타와 오븐구이 감자, 사케를 마실 땐 양념 연두부나 간단한 생선 조림, 보드카를 마실 땐 삼겹살에 김치 구이 등.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신양객잔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라고, “회비 받아서 회원제로 운영해야 한다”고.
신양객잔의 탄생은 약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친구들과 모임을 하는데 평소 좋은 먹거리와 좋은 술을 먹고 잘 살자는 게 나의 신조인지라 밖에서 사먹으면 너무 비쌌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우리 집에서 모임을 하기 시작했고, 친구들이 이것저것 사오기도 했지만 기본 음식과 술은 항상 내가 준비했다. 그렇게 신양객잔의 단골이 생기면서 우리는 돈 걱정 별로 하지 않고 건강한 먹거리, 맛있는 먹거리를 즐기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우리의 이야기와 만남은 더욱 풍성해졌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누구는 성산살롱이라 했고, 누구는 신양주모라 했다. 그러다가 무협영화 팬인 한 친구가 신용문객잔을 들며 ‘신양객잔’으로 불렀고, 그 때부터 난 먹여주고, 재워주고, ​장만옥처럼 칼도 휘두르는(^^) 객주가 된 것이었던 것이다. 

그 단골들 중 20대, 30대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많았다. 그 중 동네 친구격인 A와 먹거리를 비롯해 나의 연구 관심사 중 하나인 생활협동조합에 대해 자주 얘기를 나눴었다. 그 친구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급여로는 유기농식품 중심의 생협의 문턱이 좀 높다는 것이다. 자기가 속한 단체의 다과를 준비하거나 할 때 되도록 이용하려 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며 아쉬워했다. 특히 요즘 청년들 중 대안적인 삶, 생태적인 삶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그들에게 생협은 너무 먼 당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런 저런 대안을 얘기하다가, A처럼 먹거리에 대한 감수성도 있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은 몇 시간 매장에서 일 해주는 대신 몇 만원 상당의 이용권을 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우리는 일종의 ‘노동쿠폰’을 생각했던 것이다. 

 

빠리의 슬럼가에 소비자협동조합이!

‘건지감자껍질파이북클럽’이라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책에도 귀소본능이란 게 있어서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간다”. 그렇듯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고, 헤어짐은 인연이 다 했기 때문이리라. 어디 사람만 그럴까? 프랑스의 인류학자이자 협동조합운동가였던 마르셀 모스(Marcel Mauss)는 《증여론》에서 물건에도 영혼(hau)이 있어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전달된다고 했다. 

사람이 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책이 읽을 사람을 찾아가듯이 내가 만나는 현장은 어쩌면 오래 전부터 내 맘 속에서 그리고 있던 거라고 생각된다. 내 맘 속에서 싹이 트고, 나의 생각이 물을 주어 자라는 그것. 그것을 누구는 이상(理想)이라고 했고, 누구는 유토피아(utopia)라고 했던가!

어쨌든 내게도 그런 인연이 찾아왔다. 2015년 어느 날, 저성장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협동조합의 전략을 찾는 연구과제를 하던 중 프랑스의 파리 18구에서 준비중인 ‘라루브(La Louve1))’ 라는 협동조합 수퍼마켓을 발견하게 되었다. 라루브가 내 눈에 뛴 까닭은 그 협동조합이 문은 열게 될 입지 때문이다. 거기는 파리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18구의 금방울(Gouttes d'or)가였다. 

2000년대 초 파리 유학 시절 그 지역에서 살았던지라 나는 그 곳의 실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곳에 집을 구할 때 친구들이 위험하다고 다 말렸던 곳, 거리엔 온통 아랍과 아프리카 출신들이 떠들고 있고, 공원 한 쪽에는 아프리카 출신 여성들이 아이를 안고 업고 장사를 하고 있으며, 곳곳엔 할랄 정육점과 빵집과 식당이 그득하다. 내가 사는 집 바로 뒤에는 아프리카 출신의 여성들이 생계형 매춘을 하느라 줄지어 서 있고, 거리엔 늘 껄렁껄렁해보이는 청년들이 큰소리로 싸우거나 웃거나 조롱하거나 위협하는 소리가 들리는 곳. 건너편엔 이슬람 사원이 있어 예배를 볼 때는 길 가득 무슬림들이 길에서 절을 하고 있으며, 밤에는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던 곳. 여기가 파리인지 북아프리카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가게는 온통 알록달록한 아프리카식, 아랍식 장식품과 옷과 식당이 즐비하던 곳이었다. 한마디로 가난한 이민자출신들의 거리, 위험한 거리,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는 거리, 시끄럽고 정신없는 거리, 파리 속 식민지같은 거리였다. 백주 대낮에도 한 켠에서 불법과 탈법과 비공식적 거래로 늘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그런데 우아한 유기농협동조합이 그 곳에 문을 열다니! 이건 정말 난데없으면서도 설레는 시도였기에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라루브를 준비하는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그들이 준비하는 협동조합의 모델은 미국 뉴욕시의 부룩클린에 있는 ‘파크슬로프푸드쿱(Park Slope Food Coop, PSFC)’이라 한다. 두 번째 충격! 그리고 파리에서 라루브의 설립을 준비하는 핵심 인물이 미국인 남성 톰(Tom)과 브라이언(Brian) 이라는 것! 

이 시점부터 나의 연구인 듯 연구 아닌 추적놀이가 시작된다. 빠리의 슬럼지역, 생협, 미국사람, 나는 이제 이 세 개의 단서를 가지고 퍼즐을 맞추어야 한다. 내 마음 속의 그것이 현실과 만나는 그 그림이 완성되는 퍼즐을!

 

뉴욕의 부룩클린에서 친환경 로컬푸드 협동조합을 하다니!

나의 추적은 첫 번째 단서인 파크슬로프푸드쿱에서 시작되었다. 그 중 유튜브에 링크가 되어 있는 동영상은 나중에 알고 보니 톰이 미국에 가서 직접 찍은 것이었다. 아! 그런데 12분 45초 동안 소개된 PSFC은 내가 그토록 그리던 바로 그런 협동조합이었다. 그 수퍼마켓은 아주 저렴한 가격에 친환경 로컬푸드를 공급하고 있으며, 그럴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모든 조합원들이 매달 2시간 45분씩 제공하는 노동이었다. 여기는 출자금만 낸다고 조합원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조건은 반드시 4주에 2시간 45분 노동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사건, 예술가이건, 철도노동자이건, 교사이건, 남자건 여자건, 노인이건 청년이건 그가 누구든 이 조건에 동의해야 가입할 수 있고, 이 약속을 지켜야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조합원의 노동참여로 이루어지는 PSFC의 운영은 실로 놀라왔다. 유기농 로컬푸드가 시중의 유기농가게의 절반가격이었고, 심지어 관행농으로 생산되는 농산물보다 더 싼 것도 많았다. 

예컨대 브로콜리 1킬로그램이 다른 유기농매장에서 5.25달러라면 여기서는 3.25달러다. 완벽한 식품이라 불리는 아보카도는 보통 1개에 2달러인데 여기는 1.05달러로 일반 마트에서 파는 관행농 제품보다도 싸다. 가장 인기 있는 먹거리는 에제키엘(EZEKIEL)이라는 아침식사 대용 시리얼인데 그 레시피가 성경에도 나와 있을 정도로 좋은 식품이라고 해서 기독교신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선호한다고 한다. 이 시리얼 한통의 가격이 대형 유통매장에서 4.55달러인데 여기서는 고작 2.9달러밖에 안 된다. 한마디로 ‘유기농은 비싸다’라는 이미지를 파괴하고 유기농의 민주화를 이룬 쾌거였다2).


앗! 이 분위기는 뭐지?

그런데 PSFC의 매력은 착한 가격이 다가 아니었다. 아니 PSFC의 진짜 매력은 경제적인 이익을 넘어 선, 말로 할 수 없는 어떤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수퍼마켓인데 사람들이 이리저리 부딪치고 북적거리는, 뭔가 떠들썩하고 흥겨운 장터같은 느낌이랄까? 

나중에 파리에 가서 톰을 만나 인터뷰를 했을 때 그 또한 첫눈에 반한 까닭이 바로 그 분위기라고 했다. 프랑스의 와인업계에서 일하던 톰(Tom)이 2009년에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PSFC을 방문했을 때, 그 곳에 들어서는 순간 그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다른 수퍼마켓이나 대형마트에서 보던 익숙한 분위기와는 뭔가가 달랐다. 거기서 장을 보던 사람들의 모습이 달랐던 것이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며 일하고 있었고, 계산대 앞에서 한참동안 줄을 서 있는데도 짜증내는 사람이 없었으며, 곳곳에서 서로 부딪치면서 ‘쏘리’, ‘땡큐’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 곳의 모든 이들은 그냥 쇼핑을 하는 소비자들이 아니라 주인이었던 것이다.

‘할 일 많고 바쁜 도시인들이 월 2시간 45분의 노동을 조건으로 조합원이 되는 조건을 받아들일까?’ 라고 속으로 물었다면 당신은 너무나 뻔한 질문을 하고 있음을 자각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PSFC에서 정기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조합원의 수가 17,000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수퍼마켓 매장은 너무나 사람들이 많아 11개의 계산대가 있음에도 40분 동안 줄을 서야 할 정도이다. 일하는 조합원, 물건 사는 조합원들이 늘 북새통을 이뤄 가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고 10초마다 쏘리, 익스큐즈미, 쏘리를 반복해야 한다. 매일매일 이런 불편함을 겪고도 조합원들은 꾸역꾸역 온다. 그래서 그들은 이 북새통 속에서 요리조리 피하며 쏘리와 익스큐즈미를 입에 달고 살아 ‘coop dance’가 탄생한 것이다. coop dance는 ‘불편함의 노래와 춤’이다. 불편함이 노래와 춤이 될 수 있었던 건 그들에게 부대낌은 거북함이 아니라 스웩 넘치는 웨이브가 되고, 긴 기다림은 지루함이 아닌 만남과 수다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겪는 불편함은 이유가 있고, 모두가 그 까닭을 알고 있다. 앉을 자리도 없는 콘서트장에서 몇 시간이고 서서 노래를 듣고 춤을 추면서도 즐거워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사람 아니던가? 그러니 어쩌면 내가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짜증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한시가 아까운 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PSFC는 도시 한 복판에서 너무나 맛난 먹거리와 신나는 구경거리가 넘쳐나고 만나면 반가운 사람들이 있는 장터였던 것이다. 

 

빠리에서 꽃핀 협동노동의 협동조합

17,000명이 협동의 춤을 추는 수퍼마켓을 만났을 때 나는 너무나 반가왔다. ‘그래, 내가 찾고 있던 게 바로 이런 거였어. 내 꿈이 허황된 게 아니었어!’. 그렇게 나는 나를 찾아 온 그 협동조합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 때부터 나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추적을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 해 2019년에는 직접 파리의 라루브를 찾아가 더 구체적으로 조사하기로 했다. 라루브는 이미 프랑스에서 널리 알려져 크고 작은 언론사에서 인터뷰가 쇄도했을 뿐 아니라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 톰과 약속을 잡기 위해 나는 거의 007작전을 벌여야 했다. 라루브의 홈페이지에는 일하는 사람 전화번호가 없었고 고객 안내번호만 있었다. 그래서 나는 라루브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타임라인을 샅샅이 뒤져 조합원 행사 포스터를 찾았다. 거기에 행사 담당자 연락처 두 개를 발견했다. 그 중 한명과 연결이 되었는데 그 분은 나이 지긋한 여성으로 조합원 모임 담당자였다. 나의 사정을 얘기하고 빠리에 현장조사를 가서 톰을 만나 꼭 인터뷰를 하고 싶으니 만남을 좀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그분이 톰에게 나의 방문 목적을 전달했고, 나는 톰의 메일주소를 알아내어 현지조사를 떠나기 바로 전에 겨우겨우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2019년 6월 6일 오후에 드디어 역사적인 현장에 도착하니 유쾌하게 등장한 톰은 나와 짧게 인사한 후 바로 계산대에 앉았다. 라루브의 대표자이자 대변인이지만 계산대 일은 빠짐없이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의 옆에 앉아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계산을 하러 온 조합원과도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 제대로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덩달아 나도 계산하는 조합원들과 인사하며 수다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야 겨우 그의 사무실에 앉아 본격적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와 세 시간 가량 나눈 이야기와 인터뷰는 문턱낮은 협동조합에 대한 모든 비밀이 풀리는 마법같은 순간이었다. 또한 나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하나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며, 얼마나 철저히 준비해야 하는지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3).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얼룩진 협동조합의 상(像)

협동조합을 잘 모르는 사람은 라루브가 PSFC를 벤치마킹했고, 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았기 때문에 손 안 대고 코 풀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란 그런 게 아니다.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조직해야 하고, 그 모든 과정은 생각의 협동을 이루는 과정이다. 그러하기에 원리가 뻔하다 하더라도 매번 다른 사람과 그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겪어야 한다. 물론 라루브는 PSFC의 경험을 철저히 분석하여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기에 시간을 좀 더 단축할 수 있었다. 그래서 2019년 6월에 이미 7천여 명의 조합원을 가입시킬 수 있었지만, 사실 설립을 준비하는 데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왜냐하면 모든 조합원이 노동을 제공하는 협동노동의 협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이 가입하기 전에 반드시 설명을 듣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톰과의 인터뷰 중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이 무척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조합원의 가입 동기와 절차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인터뷰 내용 중 다음과 같은 부분이다. 


Q. 모든 조합원들이 의무적으로 노동을 제공해야 한다는 걸 설득해서 준비하고 조합원들을 모집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어떻게 그들을 설득했는가?

A. 일단 반대하는 사람은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PSFC를 갔을 때 매력적인 것은 분위기였다. 그들은 꼬시려 하지 않았다. 더 사라고 하지도 않았다. 하나를 사더라도 ‘잇츠 오케이(괜찮아)’였다. 

우리는 비디오를 만들어 PSFC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한 것이다. 우리 사업은 아이디어 자체가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꼬실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지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조합원을 위한 안내모임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이 모임은 단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방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니까 동의하고 좋아하는 사람만 들어온다. 예컨대 “여기는 유기농 100%가 아니잖아!” 라고 비판하는 사람에겐 “그럼 다른 데 가세요”라고 한다. 

 

여기서 내가 가졌던 고정관념, 혹은 선입견은 ‘조합원은 당연히 노동에 참여하는 것을 꺼린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조합원들이 노동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어떻게 설득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왜 설득하느냐는 것이다. 자신들의 기획 자체가 좋은 것이므로 그것을 알아듣기 쉽게 잘 설명해주는 것이지 꼬시거나 설득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 그렇다! 나를 위해 좋을 뿐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도 좋은 것을 제안하는데 왜 설득하고 꼬셔야 하는 것인가? 한 달에 단 한 번, 3시간의 간단한 노동을 제공하는 대신 맛좋고 영양 많고 신선한 유기농 로컬푸드와 장인들의 먹거리를 아주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면 그건 조합원들에게도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지 않은가? 그래서 식비를 아낄 수 있다면 너무나 큰 이익이 아닌가? 물론 그 조차 시간이 나지 않는 빠듯한 삶이 있을 것이고, 그 조차도 귀찮아 그냥 돈으로 때우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득이 뻔한 보통의 사람들에겐, 또는 먹는 입이 많아 식비가 많이 드는 가정에게는 2~30%의 식비절약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유기농 로컬푸드이니 건강도 지키고, 시중에서 파는 식료품도 훨씬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니 그 제안을 마다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나의 3시간의 기여로 많은 이들을 위해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뜻에 동참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라루브가 깬 또 다른 고정관념은 무조건 많은 조합원을 가입하게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협동조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입해서 조합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책임과 의무를 다 하​지 않는다면, 혹은 약속한 운영원칙을 잘 모르고 딴소리를 하거나 이의제기를 한다면 그 모든 것은 협동에 장애가 될 것이다. 그래서 톰은 사전설명회를 통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걸러내는’ 효과가 있다고 한 것이다. 사실 처음엔 생각이 같아서 함께 시작해도 시간이 지나면 이견이 생기고 뜻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처음부터 확실히 목적과 원칙을 확인하지 않는다면 협동의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과정을 많이 생략하고 의례적인 가입절차를 통해 모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키는 관행을 지속하고 있다. 

자기를 위해 이용만 하는 것이 조합원일까?

다른 한편, 라루브는 내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왜냐하면 라루브가 협동노동의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것이 19세기 소비자협동조합의 전통을 잇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신용협동조합이든 소비자협동조합이든 이런 유형의 협동조합은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이라고 분류해왔다. 즉, 조합원의 기본적인 의무는 조합의 서비스나 재화를 이용(소비)하는 것이다. 반면 PSFC과 라루브는 이런 전통을 벗어나는 예외적인 사례인데 왜 전통을 계승한다고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그 질문에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번떡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협동조합 운영원리의 초석을 다진 ‘로치데일의 공정개척자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노동자소비협동조합’이라고 불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19세기의 상황에서 로치데일을 상상해보았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과연 돈이 많이 있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은 섬유산업의 부흥시기, 노동시간은 늘어났지만 임금은 증가하지 않아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공장을 뛰쳐나왔던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상점을 열었다면 아무리 소비협동조합이라도 임금노동자를 고용해서 자신들은 이용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게를 찾고, 공급자를 물색하고, 가격을 책정하고, 물건을 팔고, 게다가 잉여가 남으면 그것으로 금주실(禁酒室)을 만드는 등 엄청나게 많은 일을 서로 분담하여 협동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공정개척자회를 만들며 던진 두 가지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 도울 수 있을까?’이다. 그렇다면 공정개척자회의 설립자들은 진정 가난한 노동자들이었기에 출자금을 내고 소비만 할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이 노동을 협동하여 운영했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이런데 생각이 미​치자 나는 그제서야 왜 라루브가 소비자협동조합이면서도 노동의 협동을 핵심으로 두고자 했는지 그 생각의 뿌리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연구과제 중 또 다른 현장을 조사하며 나의 이 짐작은 확신이 되었다. 그 곳은 내가 대의원으로 있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다. 노동의 협동 ‘좋아랑’을 조사하면서 이사장과 실무자를 인터뷰 했는데, 청소나 홍보 등 조합의 활동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더 적극적인 조합활동가로 성장했고 주인의식이 더욱 함양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 조사를 통해 나는 중요한 발견을 한 것이다. 주인의식이 있어서 조합의 일에 참여한다기보다는 참여함으로써 더욱 소속감을 가지게 되고, 주인의식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렇게 참여하고 돌보며 주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유토피아를 현실로 만드는 라루브의 힘 

라루브를 인터뷰하며 톰은 라루브의 목적이 “우리의 협동조합, 마을의 협동조합, 마을에 비자본주의 수퍼마켓을 만드는 것이다” 라는 말이 가장 깊이 남는다. 그리고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없는 사람도 올 수 있는 문턱 낮은 소비자 협동조합을 만든 게 자랑스럽다는 말도. 그 모든 것의 비결은 모든 조합원들의 조금의 노동으로 가능했고, 딴 데 가지 않고 거기서 장을 보도록 하는 전략 덕분이다. 무엇보다 수년간 준비해서 문을 연 그 철저함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라루브의 꿈은 소박하면서도 야심차다. 소박한 까닭은 세상을 바꾸려는 거대한 목적을 표방하지 않아서이고, 야심찬 까닭은 그러면서도 마을 안에 ‘비자본주의적인’ 수퍼마켓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나’의 이용이 목적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으면서도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 길, 노동의 협동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며 서로를 돌보는 기획. 그것이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협동조합이 꿈꾸었던 유토피아가 아닐까? 그 유토피아를 현실로 만드는 힘을 가진 덕분인지 라루브의 실천은 프랑스 뿐 아니라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중이다. 이미 30개 이상의 협동노동의 협동조합이 준비 중이거나 설립되었다. 

그렇다. 협동조합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이미 시도한 선배 협동조합들에게서 배우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대세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다운 길을 찾는 것이 망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비결인 것이다. 그래서 나의 덕질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더 많은 덕후들과 함께 서로 돌보며 주인이 되는 참된 협동조합의 삶을 살고자 한다.

 

1) 불어로 La Louve는 늑대인 Le Loup의 여성형이다. 유럽에서 늑대는 돌보고 기르는 양육자의 이미지를 가진다. 
2) 파크슬로프푸드쿱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필자가 2015년에 쓴 ‘지역살림과 협동노동의 협동조합’(모심과살림 6호)을 참조하기 바란다. ​
3) 상세한 조사 결과 및 인터뷰 내용은 『2019 생명협동연구 결과보고서』에 실린 ‘저성장시대를 뛰어넘는 새로운 협동조합운동의 길’(김신양, p.115~172)을 참조하기 바란다. ​

글 김신양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