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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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2,843 | |
잘 나가던 출판사의 기획자.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를 기획하면서 주목받은 사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두 번만 읽으면 끝나는 영문법> 등 영어학습법 책을 기획한 원조자. 그런 그의 곁을 지키는 그림책 작가이면서 방송작가. 손수 산 위에 건물을 지어 북숍을 운영하는 나무선(56)·이효담(53) 부부의 이야기다. 도서정가제가 무너지고 인터넷서점과 e-북이 확대되면서 동네 작은 서점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원주에 이색적인 시골책방이 문을 열었다. 하얗게 눈이 내린 뜰에 소박하게 자리한 건물 세 채. 이 중 카페인 듯, 서점인 듯, 음식점 같기도 한 터득골북숍은 책을 읽으면서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곁들일 수 있는 일종의 복합문화공간이다. 치악산 자락의 순하고 눈부신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하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보는 즐거움을 주는 공간. 터득골의 세계로 들어가 봤다.
문막~소초간 국도 42호선 대안교차로에서 빠져나와 대안로를 따라 문막 방면으로 10여분을 가다보니 터득골을 알리는 아기자기한 나무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얕은 비탈길을 오르자 양지바른 언덕에 노란 사각형의 건물. 얼굴에 부딪히는 산골 바람은 차가웠지만, 머리는 맑아지고 상쾌했다. 터득골 북숍은 원주의 새로운 문화 아지트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작은 연못 앞 삐뚤빼뚤 팻말에 적힌 글씨가 눈길을 끌었다. ‘사람과 만물을 살려주는 것은 물이다.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 만물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는 도덕경의 유명한 글귀를 연상시킨다. 이곳의 주인은 분명히 자연을 사랑하며 무위(無爲)의 삶을 추구하는 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서 오세요.” 카페지기인 나무선 대표가 반갑게 맞아준다. 차분함이 섞여 있는 중후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카페 내부에서는 올드 팝송이 조용하게 흘러나왔다. 카페를 운영하는 아내 이효담씨가 손수 정성스럽게 만든 차와 음식을 내왔다. 인도 홍차 ‘짜이’를 한 모금 마시니 몸에 온기가 퍼진다. 신선함과 건강함을 갖춘 안전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이곳 음식 철학이다. 터득골은 이곳 고유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골짜기에 들어와 살면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는 의미로 들린다. 부부는 ‘터득골’이란 이름이 지혜를 터득하는 책방과도 궁합이 맞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마을의 정체성도 계승하자는 뜻에서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삶의 경험에서 기획된 <야생초 편지>는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덕에 터득골의 넓은 터를 소유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터전을 얻게 돼서 좋았지만, 부부가 살기에는 너무 넓었다. 이효담씨는 “이곳을 관리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을 느꼈죠. 땅을 팔고 다른 곳으로 갈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365일 변화무쌍한 자연과 그 기운에 흠뻑 젖게 되면서 더욱 사랑하게 되었어요.” 터득골을 가꾸다. “애초에 카페를 열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 취향이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은둔적으로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부부는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출판업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바로 카페 형식을 빌린 서점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고민했어요. 우리 사회가 미래로 가는데 책을 읽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했죠. 애초에 카페를 열 생각은 없었어요. 저희 취향이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은둔적으로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처음에 카페를 열고 손님을 맞을 생각을 하니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곧 사람들과 호흡하는 삶의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이효담씨는 “아이 키우는 부모님들이 가장 좋아하시죠. 요즘은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자리 잡고 있어요. 남녀노소 다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북숍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며 활짝 웃었다.
지역문화 연결하기. “남편은 원래 잘 나가는 회사의 기획자였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두 번만 읽으면 끝나는 영문법> 등 영어학습법을 기획한 원조이기도 해요. 책이 팔리는 만큼 인센티브를 받아서 신혼 때부터 10여 년 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어요. 최근에 출판시장이 나빠지고 실적이 저조해지면서 처음으로 우리 남편이 돈을 못 벌어오는 사람이구나 싶었죠.” 이효담씨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남편을 바라보았다. 출판사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적어진 것은 서울 출판사에서 독립하면서였다. “나 혼자 기획자로 먹고살기로 나의 정체성을 정하면 돈을 잘 벌어왔겠죠. 그런데 그 흐름에 이제 흥미를 못 느끼는 거예요.” 나이가 들면서 업계에서 퇴장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원주에 머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좀 더 나누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원주가 문화적으로 취약한 곳이잖아요. 제대로 된 문화콘텐츠 기업을 하나 만들어 놓고 죽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원주에는 전국규모로 출판하는 곳이 아직 없는 것 같다는 나 대표는 원주 지역의 편집, 디자인, 영업, 유통, 홍보 등 출판과 관련된 생태계 마련을 꿈꾸고 있다. 부부에게 지역 서점과 독립출판의 비전을 물었다. “1997년부터 한국에서는 지역 서점 2,000여 개가 문을 닫았고 전체적으로 30~40%의 서점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서점이 사라졌다는 것은 출판콘텐츠 사업의 수족이 잘려나갔다는 것을 의미하죠. 여기에다가 도서할인제가 시작되면서 조직적으로 도매를 거쳐 오는 대형서점에 소매서점은 맥을 못 추게 됐습니다.” 20년간 지식산업의 붕괴를 지켜본 나 대표는 “동네 서점의 붕괴는 출판영역에 있어 정책 입안자들의 방조뿐만 아니라, 값싼 것만 찾는 우리의 이기심에도 책임이 있다”며 출판업계 내림세의 흐름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희망을 보기도 했다. 3년 전 도서정가제가 회복되면서 취향적 의미의 독립서점이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홍대 앞에 가면 도대체 이걸 가지고 밥 먹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하는 서점이 꽤 있어요. 아직은 프로페셔널하진 않지만 어쨌든 꾸려나간다는 거죠.”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것이 문화인데 우리는 다른 사람의 문화를 흉내 내고 있어요.” 나 대표는 원주 고유 스타일에 대한 자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원주 지역 문화가 남의 것을 따라하는 장르에 치우치고 있다는 진단이다.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원주의 문화는 남의 춤을 추고 있는 모양새라는 지적이다. “터득골이 지역의 젊은이들과 문화 콘텐츠 사업을 기반으로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어떨까 싶어요. 터득골카페를 꾸릴 때부터 이곳을 대중에게 개방시킬 생각이었어요. 하늘에서 길을 열어준 거 같아요. 거창한 곳은 아니지만 터득골이 문화콘텐츠 사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부부는 목공, 집짓기, 정원 가꾸기 등 부분적으로나마 자연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워크숍도 계획 중이다. 부부는 앞으로 10년간은 지역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들의 경험을 나누며 원주만의 콘텐츠를 만드는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것. “문화를 이 지역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호흡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연대해서 해보자는 거죠. 밥그릇 싸움에서 벗어나 업계 종사자들을 대동(大同)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게 우리 부부의 소망이에요.”
info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대안로 511-42 TEL. 033-762-7140 Homapage. www.wormhole.kr 영업시간 : AM 11:00~ PM 8:00(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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