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해의 끝. 올해도 수고했을 당신에게 겨울산사의 빼어난 풍경을 선물한다. 목덜미를 파고드는 매서운 찬바람에 몸은 움츠려 들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상쾌한 공기와 뛰어난 산세가 함께하는 길이 일품인 이곳에서 맑은 자연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주는지 새삼 느낄 수 있으리라. 치악산 기슭에 자리한 구룡사는 699년 의상대사가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천년 고찰이다. 도선국사, 무학대사, 사명대사 등 여러 고승들이 수도하면서 유명 사찰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고, 지금은 영서지방의 대표적 사찰 역할을 하고 있다. 구룡사 입구에 놓인 황장금표가 보여주는 명품 황장 소나무와 함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으며 사찰 건물들은 대부분 강원도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그 중 보광루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데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유서가 깊다.
치악산 구룡사는 비로봉 자락에 자리 잡은 영서지역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시티투어 버스에서 내리면 치악산 입구에서부터 청정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쨍쨍한 여름 한 낮임에도 더위를 가시게 하고, 겨울에도 푸른 기상을 자랑하는 신비로운 금강소나무 숲길이 천년도량으로 들어가는 출발지이다. 금강소나무 길은 구룡사 사찰에 이를 때까지 이어져 있다. 구룡사 주차장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왼편 으슥한 곳에 ‘구룡사 황장금표黃腸禁標’라고 새겨진 바위를 만나게 된다. 왕실 건축용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질 좋은 황장목(금강송)을 일반인이 도벌하지 못하도록 세운 표석이다. 이곳을 지나면 구룡교가 나온다. 구룡사 유래에 얽힌 거북이와 용 형상이 다리 위에 있고, 다리 아래에도 거북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구룡사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길이다.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걷다보면 세상과 절의 경계라고 하는 일주문에 닿는다. 이 문을 지나면 구룡사 들머리가 시작된다. 구룡사 앞에는 발을 담그기 적당한 계곡이 있다. 물이 맑아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이 투명하게 보이고 물에 비친 울창의 숲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차가운 계곡 물은 사계절 끊임없이 흐르고, 푸르름을 더해가는 치악雉岳의 연봉이 산사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절 마당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20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이다. 오랜 세월 구룡사를 드나드는 수많은 이들을 묵묵히 지켜봐온 나무이다. 은행나무를 지나고 나면 ‘사천왕문’이 보인다. 사천왕이 사찰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부정한 마음’이 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천왕문을 들어서 올라가는 돌계단은 ‘구도의 계단’이다. 오랜 세월 소망과 염원을 담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 돌계단은 묵직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계단을 한 발 한 발 옮길 때 마다 깨달음이 전해진다고 한다.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올라가면 눈앞에 ‘대웅전’의 웅장한 모습이 펼쳐진다. 천년고찰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대웅전 앞을 지키는 석등과 석탑 또한 구룡사의 경건한 기운을 가득 담고 있다. 널찍한 절 마당 위로 하늘과 맞닿을 듯한 지붕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가슴을 트이게 한다. 절의 단청은 화려한 문양은 아니지만 옛 멋을 살린 은은한 색감은 유서 깊은 고찰의 운치를 한결 더 깊게 하며 호젓한 마음의 여유까지 가져다준다. 원주의 밤이 가장 먼저 내리는 곳이 치악산이 아닐까 싶다. 저녁 6시 해거름 무렵에 시작하는 범종 타종 시간에 맞춰 구룡사를 방문하면 저녁 하늘에 울려 퍼지는 장엄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고즈넉한 산사에 시나브로 어둠이 내리고, 치악산 골을 타고 퍼져나가는 범종의 울림을 들으며 뭇 생명들은 평화롭고 행복한 저녁시간을 맞는다.
구룡사는 산사와 박물관을 연계한 문화형 가족 템플스테이도 운영하고 있다. 구룡사의 템플스테이는 전통 사찰에 머물며 불교문화를 이해하고 예불과 명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할 수 있는 체험이다. 구룡사의 템플스테이는 기본적인 일정을 바탕으로 본인이 원하는 프로그램에만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스님이 따라주는 차를 마시며 깊은 대화를 나누고, 이른 아침에 나뭇잎 사이로 맑은 햇살이 비추는 숲길을 걸으며 명상에 잠기다 보면 세파에 찌든 번뇌는 훌훌 날아가 버리고 정결하고도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도시의 일상에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구룡사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 황보배 사진. 박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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