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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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2,841 | |
따가운 햇살과 푹푹 찌는 여름의 한복판입니다. 뜨거운 7월의 여름 햇살과 높은 습도에 불쾌감이 들기도합니다. 이럴 때 나라를 지키고자 애쓴 순국선열의 호국정신과 임금을 향한 변하지 않는 충절을 느낄 수있는 곳에서 잠시 한여름의 불쾌지수를 낮춰보는 것은 어떨까요. 충렬사는 그 옛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원주 지역을 지킨 순국 선열의 숭고한 호국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고려충렬왕 당시 원나라의 침입으로 원주성이 포위 됐을 때 모든 장수들이 항복 하자고 제의했지만 홀로 굴복하지 않고 외세를 무찔러 원주성을 지킨 원충갑 장군과 1592년 임진왜란때 여주 신륵사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서울로 향하던 왜적의 진로를 차단하는 공을 세웠던 원호장군, 치악산 영원산성에서 결전을 펼치고 왜적에게 굴하지 않았던 원주목사 김제갑 세 명의 위패가모셔져 있다. 늠름한 산을 뒤에 두고 있는 충렬사의 전경은 흐트러짐 없이 자연과 하나된 느낌을 준다. 충렬사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하마비(下馬碑)’이다. ‘말에서 내린다’라는 뜻인데, 이곳은 신성한 곳으로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춰야 하는 장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충렬사가 신성한 곳임을 입구에서부터알게 해준다. 충렬사의 첫 번째 문인 충렬문은 외삼문으로도 불린다. 세 개의 문이 충렬사의 첫 입구에 서 있다는 뜻이다. 문을 지나면 충렬비가 보인다. 이 비는 김제갑 원주목사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1670년에 건립된 것으로, 치악산 영원산성에서 벌어진 왜적과의 전투 상황과 김제갑 목사를 찬양하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 그 옆을 지키는 충효열각은 김제갑과 그의 아들 김시백, 부인 전주 이씨의 충과 효 그리고 열의 표상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내린 정려문이다. 충렬사 안의 두 번째 문인 충숙문(내삼문)을 지나면 사당이 보인다. 소나무들이 굳건히 뒤를 지키고 있는 사당의 모습을 바라보면 저절로 경건함이 느껴진다. 사당에는 세 분의 위패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사액현판은 조선 현종이내려준 임금의 현판이었으나 조선 후기 서원철폐령으로 헐려진 후 충렬사 복원건립과 함께 기증된 것이다. 2009년 5월 충렬사가 복원, 건립된 이후 매년 원주 시민들이 정성을 모아 제향을 올리고 있다. 경건하면서도 잘 정돈된 충렬사에서 선조들의 국난 극복과 숭고한 애국정신을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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