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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誠)과 참됨(誠之)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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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
년 나는 대성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입구에는 조그마한 돌에 참되자라고 새겨진 글씨가 있었고, 교실에 들어가 보니 칠판 정면 위쪽에 역시 참되자라는 교훈이 붓글씨로 걸려 있었다. 교훈만 있고 급훈이 보이지 않아 담임에게 우리는 왜 급훈이 없냐고 하니 참되자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으니 우리 학교는 급훈이 따로 없는 것이 전통이라는 것이었다. 음악 수업시간이 되어 음악실에 가보니 한쪽 벽에 萬事無求眞理外(만사는 진리 밖에서 구할 것이 없다.)” 라는 무위당 선생의 붓글씨가 단정한 해서체(楷書體)로 써서 걸려 있었다. 나는 그때 원주서예학원에서 서예를 배우고 있었던 터라 유심히도 보며 건방지게도 잘 쓴 글씨인지 못쓴 글씨인지를 생각하며 문장을 외워 버렸다. 그런데 뭔가 글씨가 뼈대는 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 우리 학교는 교육이념이 오직 참됨을 목표로 하는 학교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월이 흘러 무위당은 세상을 뜨고 그의 사상과 철학이 붓글씨를 통해 서화작품으로 세상에 남게 되었다
. 그런데 그 작품 중에는 중용의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쓴 것이 있다.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이라는 것은 하늘의 길이요, ‘참됨으로 가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
.)”

곧 사람이 사람의 길을 가야지 왜 길 아닌 길을 가느냐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의 길을 가다 보면 곧 사람이 하늘이 된다는 뜻이다.


人乃天
(인내천)이었다.

天人合一(천인합일)이었다.

무위당의 사상을 한글자로 표현한다면 정성 성()자 한 글자에 다 들어 있다. 조각가는 조각가로서 이 있어야 하고, 농부는 농부로서, 예술가는 예술가로서, 장사꾼은 장사꾼으로서 모두 제각기 의 바탕 하에 각자 맡은 일을 한다면 평천하(平天下)의 세상은 저절로 온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식당을 차렸을 때 무위당은 이렇게 말했다
.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시는 분들이 자네의 하느님이여.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해. 장사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 없어. 하느님처럼 섬기면 하느님들이 알아서 다 먹여 주신다 이 말이여.”


이런 것이 바로
을 풀어내는 무위당 만의 특유의 비법이었다.

심지어 무위당은 한밤에 풀섶의 풀벌레 소리를 듣고는 거짓 없는 자기의 소리를 들려준다며 세상의 미물도 거룩한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여기기까지 하였다.

일체의 모든 생명을 같은 차원에서 교감하며, 포용하고 회통하여 좁쌀 한 알로 우주를 갈파하였던 것이다. 삼라만상을 존재론적으로 일체가 평등하다며,

어느 누구도 남을 낮추어 볼 자격 있는 것은 없다고 하였다.


역시
이었다.

무위당의 일평생 말과 행동은 하나도 을 벗어나는 것이 없었다.


혹여
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다그치기보다 차근차근 아주 쉬운 말로 일러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붓글씨나 난초에다 화제(畵題)를 넣어 그 사람에게 맞는 글로 써 주기도 하였다.


무위당은 어느 날 이런 작품을 남겼다
.

밤이면 달처럼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낮이면 해처럼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을축 사월 스무하루 원주 무위당

달이 어찌 물을 가려서 비추겠는가.

 

. 호산(湖山) 채희승 (호산서예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