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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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1,380 | |
삶은 과학 <저기 어딘가 블랙홀>
이지유 · 한겨레출판 2020 <저기 어딘가 블랙홀>은 무려 과학에세이다. 해묵은 광고 카피 하나가 머릿속에 홀연히 떠오른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이제는 침대와 동의어가 되어버린 ‘과학’이란 대체 무엇인가. 학창시절 흘려들었던, 어림도 없는 토막상식이 전부인 나로서는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고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정말로 과학과 에세이가 합성어로 조합될 수 있는 관계였던가. 의심은 공연한 한계를 만든다. <저기 어딘가 블랙홀>은 쉽고 재미있으며 따뜻한 에세이다. 단지 소재가 과학일 뿐이다. 문과인으로서 당연한 반응이었다고 스스로 애써 다독이며 이 글을 쓴다. 저자 이지유는 천문학을 공부한 과학 논픽션 작가다. ‘전 지구인을 독자로 삼으려’한다는 저자 소개가 인상적이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이 책은 무척 잘 읽힌다. 저자가 전 세계를 유랑하며 겪은 과학적 체험을 명료하고 발랄한 문장으로 서술했다. 여행책 같기도 하고 때론 일기장 같기도 하다. 독자는 책장을 넘기며 혹등고래와 함께 바다를 유영하고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보라를 맞기도 한다. <저기 어딘가 블랙홀>을 추천하기로 마음먹은 까닭은 그저 재미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지구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종 중 하나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결코 아니다. 모든 동식물과 자원을 공유하며 조화롭게 살아갈 의무가 있다. 이 책은 일관된 태도로 독자에게 권면한다. 지구는 우주의 일부이며, 인간은 지구의 일부다. 이것저것 파괴하며 함부로 망칠 권리가 인간에게는 없다. 그래서 읽다보면 뜨끔하기도 하고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더불어 일상의 모든 순간이 알고 보면 거대한 화학작용이자 물리법칙이었음을 알게 된다. 과학이 이렇게 ‘인간적인’ 분야였다니! 정말이지 삶은 과학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벗 삼아 <저기 어딘가 블랙홀>을 탐독하며 우주의 먼지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글 황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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