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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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1,250 | |
바른 말이 꼭 고운 말은 아니더라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 문학동네 2007 울리기보단 웃기는 편이 훨씬 어렵다. 눈물은 어떻게든 쥐어짜낼 수 있지만 웃음은 그보단 훨씬 복잡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면에서 ‘유머감각’이라는 건 상당히 고차원의 기능임에 틀림없다. 특히나 웃음의 도구가 글이라면 더욱 그렇다.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가 던지는 뼈있는 농담을 읽다보면 괜스레 덩달아 지성인이 되는 것만 같다. 『나라 없는 사람』은 2004년(원서 기준)에 출간된 커트 보니것의 마지막 저서이다. 이 책은 흔히 회고록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내용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반전작가’라는 수식어답게 저자는 시종일관 전쟁이 얼마나 미개한 행위인지 거듭 강조한다. 더불어 배금주의의 천박함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특유의 위트를 잃지 않는다. 그야말로 ‘나라 없는 사람’처럼 미국과 인류를 향해 조소를 날린다. 그럼에도 문득 느껴지는 따뜻함이 있다. 인류 없는 인류애라고나 할까. 책에 실린 친필 경구들 또한 독자의 마음을 붙잡는다. 커트 보니것의 문장이 차가우면서도 동시에 뜨거운 까닭은 아마도 삶이 그러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징집됐던 그는 2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드레스덴 폭격 당시, 독일군 포로의 신분으로 잡혀있었다. 비극이 지나치면 희극이 되는 모양이다. 처참한 광경 속에서 살아남은 커트 보니것은 ‘웃음은 안도를 갈구하는 영혼의 산물’이라는 슬픈 진실을 깨닫는다. 『나라 없는 사람』이 출간되었을 때 커트 보니것의 나이는 82세였다. 하지만 어디에도 때 묻은 아집은 보이지 않는다. 비할 데 없이 날카롭고 재치 넘친다. 정치적 신념을 장신구처럼 주렁주렁 전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이다. 자유로운 성찰이 필요한 이에게 『나라 없는 사람』을 권한다. 명예와 존경이란 결코 억지로 획득하는 메달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글 황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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