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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열린 배움터 - 무위당학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20
첨부파일 조회수 4,643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열린 교실

      

매주 목요일 저녁, 거리에 땅거미가 내리고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를 무렵이면 원주시 중앙동 밝음신협 4층의 무위당 기념관은 불이 환하게 켜집니다. 저녁 7시가 가까워지자 11기 무위당학교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있는 교실로 눈빛 맑은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몇 해 전 초등학교 교장을 정년퇴임하고 요즘 사진 찍는 취미에 푹 빠져 있는 박성진 선생님, 오늘도 제일 먼저 오셔서 맨 앞자리에 앉으셨군요. 조금 뒤 무위당 독서모임 회장인 미애 아씨가 수줍은 인사를 하며 들어오십니다. 지난주엔 퇴근 후 술 한잔하자는 동료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석한 지훈 씨가 오늘은 회사에서 일을 끝내자마자 직행했군요. 매주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와서 강의 듣고 청량리행 마지막 열차로 돌아가는 정인화 선생님, 오늘은 원주에서 주무실 작정을 하고 강의 끝나고 뒤풀이까지 참석하시겠답니다. 이번 강좌부터 무위당학교 동문이 된 양승희 씨 부부는 오늘도 중학생 두 아들과 함께 오셨군요. 자리가 다 채워진 교실을 쓱 둘러보니 오늘도 올 분들은 다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위당학교는 연세 지긋한 칠순 노인부터 전직 국회의원, 대학 교수, 회사원, 자영업자, 주부, 푸릇푸릇한 십 대 청소년까지 나이, 직업, 학력과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공부하는 열린 배움터입니다.

한 달 전 봄 강좌를 처음 시작한 날, 일찌감치 강의실 앞자리를 차지하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분들 얼굴을 보자 새 학기 첫날, 처음 만나는 담임 선생님이 어떤 분일까 궁금해 하면서 긴장되고 설레는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귀여운 초등학생의 모습이 상상돼 속으로 혼자 웃으며 즐거워했습니다.

      

11기 무위당학교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지역공동체가 가야 할 길입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꾸었듯이 인공지능이 몰고 올 격변의 시기를 맞아 우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고, 사람에게 소중한 사랑, 아름다움, 이웃, 협동, 생명의 가치는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지혜를 나누고자 마련한 강좌입니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어선지 첫 강의부터 자리가 꽉 찼습니다. 강의가 시작되고도 수강생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어 책상 사이사이에 접이 의자를 마련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이번 강좌에도 기라성 같은 전문가들이 거마비(車馬費)밖에 되 지 않는 적은 강연료에도 흔쾌히 원주까지 오셔서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박문호 박사님, 뉴욕주립대 박진 식 교수님,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님, 그리고 무위당 선생님 23주기 즈음에 내 삶 속의 무위당이란 제목으로 강연해주 실 소설가 김성동 님과 극단 산야전 대표 김학철 선생님. 이분 들은 한결같이 무위당 선생을 존경하는 마음 하나로 강연을 수락해주셨습니다. 해당 분야의 명망 높은 전문가들을 초청 강사로 모실 수 있는 것 역시 무위당 선생님의 후광 덕분입니다.
  



바쁜 삶을 멈추게 하고 생활의 나침반이 되는 강좌

      

2012년 봄에 문을 연 무위당학교는 우리 시대에 절실한 공동체 정신의 복원을 바라고 새로운 대안사회를 꿈꾸는 시민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어보자는 결의 속에 탄생했습니다.

그동안 무위당학교는 무위당 선생님의 사상과 원주 협동조합운동의 역사,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 경제, 사람 중심의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법, 선정적인 뉴스와 방송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국민이 지켜내야 할 언론주권,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청년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선정하여,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교수님을 비롯해 사회운동가 홍세화 선생님,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님, 한국 언론의 큰 바위이신 김중배 선생님 등 90여 명의 전문가를 강연자로 초청해 이 시대의 고민을 시민들과 함께 공부하는 값진 시간을 가졌습니다.

교실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유익하고 재미있는 강연에 눈과 귀를 활짝 열고 강연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합니다. 강연이 끝나면 청중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집니다. 예리한 질문은 종종 강연자들을 긴장하게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질문과 답변이 오가다 보면 교실은 열띤 토론의 마당으로 후끈 달아오릅니다. 이런 날은 2시간의 강연 시간을 넘기기 일쑤입니다.

 

      

식당에서의 뒤풀이는

학인(學人)들끼리 교감하는,

가슴으로 이어지는 방과 후 교실

 

     

강연자 중에는 무위당학교를 20명 정도 모이는 작은 공부 모임 정도로 생각하고 왔다가 강의실을 가득 메운 청중들의 배움의 열기에 깜짝 놀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무위당학교 강연자로 두 번이나 초청된 홍세화 선생님은 가르치러 왔다가 오히려 내가 배우고, 감동까지 받고 돌아간다.”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근처 식당에서의 뒤풀이는 밥과 술과 우정을 나누며 학인(學人)들끼리 교감하는, 가슴으로 이어지는 방과 후 교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그날 강좌에 대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촌평도 하고 강연장에서 못다 한 얘기를 풀어내다 보면 밤 깊은 줄 모릅니다. 강연자 중에는 아예 원주에서 묵고 갈 작정을 하고 뒤풀이에 참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날은 심야까지 2교시 무료강연이 이어집니다. 뒤풀이에 참석한 50대 직장인은 생활 이 힘들어서 삶에 대한 돌파구를 찾으려는 생각으로 참석했는데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공감하면서 삶의 위로를 받는 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분들은 무위당학교는 바쁜 삶을 잠시 멈추고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서 그동안 좁은 틀 안에 가두었던 나의 완고한 사고를 반성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고 소감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개교한 지 6년을 맞은 무위당학교는 원주에 인문학 열풍을 불러 오면서 지역의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활동하는 산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무위당학교가 생긴 뒤 원주 곳곳에서 역사, 문학, 철학, 예술 등 을 주제로 한 다양한 인문학 교실이 개설되고 독서모임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무위당학교 가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3년 전에 충북 괴산과 대전에 이어 작년엔 부산과 서울에서도 무위당학교가 열렸고, 다음 주엔 충 주와 고양·파주에서도 무위당학교를 시작합니다. 무위당학교 는 나이·학번·직업·경륜·지역의 벽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직면 한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 삶에 희망을 주고,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는 대안사회를 위한 평생학습 프로그램의 지도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머리로 시작한 공부, 가슴에서 발로 이어지길 

 

새봄이 움트는 삼월에 시작한 11기 무위당학교는 이제 열 강좌 중 다섯 강좌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문득 공부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혹시 나는 머릿속에 지식을 쌓아두는 것만을 공부(工夫)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앎을 추구하는 학()에만 집중해왔을 뿐 배운 것을 실천하는 습()은 제대로 해오고 있는 것인가? 되짚어 봅니다.

배움이란 앎과 삶을 일치시키는 학습(學習)으로 귀결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머리에서 시작한 공부를 가슴과 발로 실천한 분이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입니다.

우리가 무위당 정신을 실천하는 길은 책상에서 익힌 지식을 머릿속에만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교실 문을 열고 나가 삶으로 실천하는 궁행(躬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위당학교 운영진 은 이번 11기 강좌가 끝나면 교실에서 배운 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공부와 실천 과제의 연결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진지하게 고민하겠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무위당 기념관의 좁고 불편한 교실을 공감과 배움의 열기로 가득 채워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더 많은 원주시민들이 무위당학교의 동문이 되어 배움()을 나누고, 실천하며(), 더불어 함께하는 붕우(朋友)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글. 김찬수 무위당사람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