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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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4,761 | |
1999년 4월 15일 원주시 신림면 용암리에 30대 중반의 낯선 남녀 2명이 스며들었다. 서울과 서울 인근에서만 줄곧 생활 해오다 낯설기만 한 산골마을에 주저앉을 생각으로 찾은 듯 굳게 다문 입에서 비장함까지 엿보였다. 남편의 귀농 계획 을 2년여 동안 줄기차게 반대했던 김경숙(53)씨는 남편 이규옥(53)씨와 함께 그렇게 신림면 용암리에 둥지를 틀었다. 김 씨는 시민사회단체에서, 이 씨는 꿈꿔왔던 농사일을 시작 했다. 김 씨의 현재 직책은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소속 협동조합관광해설사다. 장성한 두 아들의 어머니이자 이제는 잠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데면데면해진 한 남자의 아내다. 지금은 원주의 생명사상과 무위사상, 자연과 결혼했을 정도 로 원주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김 씨는 원주로 귀농한 이후 원주지역 사회복지단체에서 우렁각시 팀장을 시작으로 재가 장기요양보험 사업단에서 일을 하며 인맥도 넓혀갔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성공회 원주나눔의집 원주가 생명사상과 협동조합의 메카라는 것을 까맣게 몰랐던 김 씨는 남편 이 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원주에 오면서 무위당 장 일순 선생님의 생명사상을 책으로 접했던 남편 덕에 원주의 매력 을 알게 됐다. 이후 성공회 원주나눔의집에서 우렁각시 일을 하면서 많은 시민단체와 복지단체, 활동가들과 교류를 했다. 점점 더 원주의 매력에 빠지게 된 계기였다. “아마도 원주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금의 나를 키운 8할은 원주나눔의집 같아요. 6년 6개월여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사람을 알게 됐죠. 지금도 여전히 원주나눔의집과 인연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와 정신이 살아있는 협동조합의 도시
협동조합관광해설사로 일을 하는 김 씨는 아직도 협동조합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원주나눔의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를 알게 됐고 해설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에 지원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협동조합의 오래된 역사와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갑니다. 이것은 원주의 큰 자산이고 협동조합 관광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해 나가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2012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생기고 산업관광해설사를 고용하면서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2013년과 2014년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협동조합이 생겨났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설립되는 추세다. 원주가 협동조합의 도시로 알려지면서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실무자들이 지속적으로 원주를 찾았다. 김씨는 협동조합 설립을 위한 실무자들이 이제는 거의 다 찾아온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은 좀 더 새로운 지역의 콘텐츠를 발굴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지역에 협동조합이 많이 생겼고, 그곳에도 볼거리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거든요. 따라서 협동조합 관광도 분산된다고 보는 겁니다. 원주는 협동조합의 오랜 역사와 정신 부문을 특화시키는 한 축으로 가야 할 것 같고요. 다른 한 축은 새로운 콘텐츠의 인프라를 어떻게 개발해 나가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원주에는 아직도 협동조합이 활발하게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원주 시민들에게 알리는 작업도 병행해야 된다고 봅니다. 협동조합 광장의 사람책 도서관과 전시관 공간을 활용한 짧은 해설코스도 만들어 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협동조합 관광은 체험 김 씨가 하는 역할은 협동조합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의 역사와 정신을 알고 싶은 관광객들에게는 강사를 섭외해 방문 목적에 맞게 강의하고 방문할 곳을 안내한다. 식사와 숙박까지 안내한다. 관광객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는 피드백도 받고 다시 원주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주로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조합원 단체와 협력단체 위주로 관광을 유도한다. 음식을 만드는 곳이나 공장 등은 위생문제가 걸려 될 수 있으면 자제하는 편이다. 실제로 방문하는 곳은 13~14곳이다. “관광객들에게 원주에는 어떤 협동조합이 있는 지 안내하고 해설하는 역할입니다. 일종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어떤 곳을 원하는 지도 파악합니다. 관광객들은 역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아요. 체험비의 경우 원주시에서 일정부분 지원을 해주고 있어 부담도 덜 한 편입니다.” 원주는 영원한 생명의 땅 김씨가 아침 7시50분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길은 소박하다. ‘신들의 숲(신림·神林)’에서 한껏 받은 기운은 상쾌함마저 더해준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때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시댁과 친정은 물론 식구들 모두가 반대했던 귀농을 선택한 남편에게 이제는 더 없이 고맙기만 하다. 2년여 줄기차게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따라 내려오게 된 것은 역시 가족과의 생이별이 싫었기 때문이다.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굳은 믿음이 없었다면 주말부부로 남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은 벼농사를 주로 하고 있다. 1만 4,876㎡의 논에서 즐겁게 일하고 조금 있는 밭에는 우리밀과 콩, 깨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지낸다. 요즘은 술 만드는 작업장도 조그맣게 지었다. ‘영농조합법인 쌀로술쌀로초’라는 법인을 설립해 시험분석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원주로 오기 전 남편은 귀농운동본부에 다니면서 전국에 귀농해 사는 지역을 모두 다녔어요. 어디가 살 만한지 직장을 다니면서 찾아다녔죠. 그리고 처음으로 가자는 곳이 지리산이었습니다. 지리산에 가서 산다고 땅도 알아보고 그랬는데 너무 멀어서 포기를 했고 원주로 오게 됐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원주에 와서 심적으로 고생도 많이 했어요. 남편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읽으면서 생명사상을 접했어요. 제가 협동조합과 관련된 일을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셈이죠. 원 주는 장일순 선생님 뿐 아니라 박경리 선생님 등이 있어 영원한 생명의 땅으로 남을 것입니다.”
협동조합 관광은 학습관광
협동조합 관광 해설사는 일반 관광이나 문화해설사와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관광문화 해설사는 역사적인 사실이나 관광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야하고 암기해야 하는 것도 많다. 협동조합 관광 해설사도 물론 암기해야 할 것은 암기해야 하지만 현장의 깊이 있는 이해가 없으면 하기 힘든 직업이다. 협동조합 관광을 오는 관광객은 단순한 관광목적이 아니라 일종의 교육과 학습관광을 원하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좀 더 쉽게 협동조합에 다가갈 수 있게 하려면 해설사가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제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정말 소중한 자산을 가진 원주가, 그 자산들을 계속 이어서 발전해 나가는 게 현재 활동가들이나 협동조합의 몫인데, 그 부분 에 있어서 역시 참 어렵구나란 생각을 많이 합니다. 협동조합을 매 슬로우(Abraham Maslow)의 인간욕구 5단계 이론에 빗댈 수는 없겠지만 협동조합은 인간정신에 있어서 가장 상위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굉장히 어렵고 가난하지만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사람들, 혹은 어떤 염원을 갖고 같이 모여서 협동조합을 만들 어서 활동하는 데, 그 활동 자체가 녹록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
원주시민들이 협동조합을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김씨는 “원주 의 여러 어르신들이 협동조합에 대해 말씀하신 것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와 ‘협동조합은 사랑이다’ 등입니다. 마지막으로 협동조합의 선구자와 역사 등을 시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싶어요. 협동조합 광장은 카페와 다양한 전시 품목도 있는 만큼 시민들의 행복한 공간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강화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고 원주에 터를 잡은 김경숙 해설사는 우렁각시에서 다시 협동조합 전도사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좋은 땅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일을 하며 날마다 꿈을 꾸는 그에게 원주는 바로 생명의 땅이며 근원의 땅이다. 원주를 사랑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글.사진. 원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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