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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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4,933 | |
시절이 엄혹하고 혼탁할수록 그리운 사람이 있다. 나날의 삶이 메마르고 강퍅해질수록 더욱더 그리운 사람이 있다. 무위당 장일순. 이름만으로도 마음 한쪽에 스며드는 그리움이 있다. 무위당 기념관을 찾아 나는 어려서 일찍 고향을 떠난 탓에 선생님을 직접 뵙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때늦은 귀향 후 그분의 흔적과 자취를 쫓으면서 달래 왔는데 오늘 걷는 이 길도 그런 추억의 길이다. 나는 되도록 천천히, 걸음을 세듯 천천히 걷는다. 선생님은 시대의 아픔을 고뇌하며 걸으셨던 길이지만 내겐 첫사랑 여학생과 뻘쭘하게 걸었던, 이젠 아련한 기억만 남은 철없던 길이다. 황량한 개천, 뚝방길, 비록 풀벌레 소리 들리지 않아도 그분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나는 가끔 한밤에 풀숲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에 매우 놀라는 적이 있습니다. 만상이 고요한 밤에 그 작은 미물이 자기의 거짓 없는 소리를 들려주는 것을 들을 때 평상시의 생활을 즉각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부끄럽다는 이야기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의 통찰. 그러나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짐작조차 어렵지만, 그분의 서화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생전에 느끼셨을 외로움이 내게도 전해져 온다. 살아 계셨더라면 여쭙고 싶은 말들이 참 많은데…. 어디서 그런 지혜로운 어른을 다시 뵐 수 있을까. 작년 한 해는 어느 시인이 표현한 것처럼 정말 ‘숨쉬기도 미안한’ 한 해였다. 선생님의 시대처럼 지금도 여전히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패악의 세력들이 산천을 망가뜨리고 우리들의 마음마저 어둡게 만드는데 선생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지금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 그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무는 깊은 상념의 강을 건너자 무위당 기념관이 눈앞에 보였다.
선생님의 노심초사가 보인다. 공무원인 김남규 님에게 써 주 신 ‘시민여상視民如傷 - 백성 살피기를 다친 사람 보듯 하라’, 무위당만인회 이경국 회장님께 주신 글, ‘자비심慈悲心으로 일체一切 이웃을 대접待接하시오. 그것이 길입니다.’ 김지하 시인의 글 ‘南’에서 뽑아 쓰신 ‘혁명은 보듬는 것’. 또 한살림 일꾼들에게 써 주신 글,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마라, 앉은자리 선 자리를 보라, 이루려 하면은 헛되느니라, 자연은 이루려 하 는 자와 함께하지 않느니라” 지금도 절절하게 다가오는 혜안 의 말씀이다.
“무엇을 이루려하지마라 앉은 자리 선 자리를 보라 이루려 하면은 헛되느니라 자연은 이루려는 자와 함께 하지 않느니라.” 한쪽 벽면으론 투명 아크릴 진열대가 있고 그 안에 선생님 생전에 쓰시던 여러 가지 물건이 전시돼 있다. 읽으시던 책, 정갈한 글씨의 친필 편지, 이현주 목사님과 같이 펴내신 ‘노자老子이야기’ 초판본(3권짜리), 255번 명찰이 달린 수의. 문득 가슴이 저며 온다. 지학순 주교님과 우정을 나누며 함께 제호를 쓰신 도자기, 그리고 모자, 지팡이, 돋보기안경, 그 끄트머리에 남겨 져 있는 지필묵과 연습 종이를 보노라면 돌아가신 지 20년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기념관 한쪽엔 기념품 코너도 마련돼 있다. 선생님의 생애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도서들, 선생님의 글과 그림이 새겨진 접시들, 다포, 컵, 컵 받침, 앞치마, 메모꽂이, 그리고 부산의 가수 우창수 선생이 만 든 CD,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음을’ 등등….
혹 외롭거든, 무료하거든, 삶이 버겁거든 무위당 기념관을 찾으시라. 그저 시간 날 때 잠시 들러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번잡한 마음이 가라앉고, 요새 말로 ‘힐링’이 되는 걸 느낄 것이다. 또 운이 좋으면 사무국 안쪽 방에서 살아있는 ‘전설’들을 직접 만나 뵐 수도 있다. 평화의 상징 장화순 선생님, 아직도 두세 시간 강의쯤은 그대로 서서 하실 정도로 정정하시고 총기 맑으신 김영주 선생님, 괄괄한 음성 그대로 카리스마 넘치고 인간적 품이 크신 이경국 회장님,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지역의 일을 챙기시는 정인재 선생님 등, 여전히 뜨거운 분들을 만날 수 있다. 가끔 밥도 사주신다. 그러니 시절의 ‘힐링’이 필요하신 분들은 무위당 기념관을 찾아 마음을 달래보시는 게 어떠실지……. 글. 신승철 목공예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