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7-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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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4,565 | |
사는 곳도 시골, 직장도 시골, 종교 활동과 함께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곳도 시골이 주 무대인 사람. 나눔이라는 것을 그저 당연한 일로 여기는 순박해 보이기까지 한 사람. 햇볕과 공기와 물과 자연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듯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온전하게 내 것이 아닌 함께 공유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삶에 작은 보탬이 때론 온 세상을 모두 가진 것처럼 느낄 때가 있음을 아는 사람. 김남숙(49) 성공회 원주나눔의집 공동체기금 희망애찬 이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성공회 원주교회가 나눔으로 인도
직장인이면서 아내로, 두 딸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그녀는 1996년 처음으로 성공회 원주교회와 인연을 가졌다. “처음에는 성공회 신자가 아니었는데 남편과 친한 직장 동기 분 들이 모두 성공회 원주교회 교인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성공회 원주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원주나눔의집을 알게 됐고 나눔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원주는 1992년 직장이 있는 연세대 원주캠퍼스에 입사하면서 오게 됐다. 경기도 마석이 고향인 김 이사장은 초·중·고교를 마석에서 보내고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 도시 생활을 했다. “원주는 무엇보다 자연이 늘 곁에 있어서 좋습니다. 사는 곳도 직 장도, 교회도 모두 시골이라 더 좋아요. 서울에서 생활을 꽤 했는데도 지금 서울에 가면 꼭 시골 아줌마가 된 것처럼 낯설어요. 시골 쥐, 서울쥐라는 말이 있잖아요. 이제 저는 완전히 시골 쥐가 된 느낌입니다. 그래도 원주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좋습니다.” ●희망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꿈꾸다 성공회 원주나눔의집은 햇살지역아동센터와 청소년진로자립센터, 청소년 홈그룹, 여성일자리사업, 농촌지역 공동체 활동 및 복지 지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공동체 운영을 하고 있다. 이 과정 속에서 서민들에게 문턱이 높은 은행을 대신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공동체 기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희망애찬’을 설립하게 됐다. 희망애찬은 성공회 원주나눔의집을 중심으로 활동하거나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다. 나눔의집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서로 돕고 도움이 되고자 공동체 기금을 만들게 된 것. 평상시에 는 함께 모여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같이 먹지만 갑작스럽게 돈이 필요할 때는 함께 모아놓은 기금에서 빌려 쓸 수도 있다. 친구 간에 돈 거래는 하지 말라고 하지만 희망애찬은 편한 마음으로 돈 이야기를 해도 된다. 아직 기금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는 8명이 대출을 받았고 반환도 순조롭게 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게 돈이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100만 원에서 200만 원까지 소액이 갑자기 필요한 경우도 흔하다. 이 같은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2010년 4월 공동체기금 준비를 위한 나눔의집 내부토론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나눔의집 실무자들로부터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실무자들이 접하는 분들이 대부분 어려운 이웃들이잖아요. 그런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스마트폰 데이터 요금이 어마 어마하게 나왔는데 어떻게 할 줄 모르는 모습을 보게 된 거죠. 돈도 없는데다 아이들은 방법도 모르고, 어른이라고 당장 수 십 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할 능력도 안 되었던 거죠. 그런 모 습을 보면서 작지만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던 중에 기금을 모아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졌어요. 그렇게 희망애찬이 시작된 겁니다.” ●희망애찬을 세우다. 나눔의집 실무자들의 내부토론이 시작되면서 희망애찬 설립이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았다. 2010년 10월 이미 은행문턱을 넘지 못하는 노숙자와 부랑아 등에게 소액 대출을 해주고 있던 곽병은 갈거리협동조합 원장을 비롯해 김유숙 사회투자지원재단 팀장을 초청해 사례와 사업설명에 대한 워크숍을 열었다. 그리고 2011년 12월 나눔의집 실무자 퇴직금 중간정산 중 일부를 공동체기금으로 출자하는 결의를 하게 된다. 다음 해인 2012년 6월에는 희망애찬 발기인 대회 및 창립준비위원회가 구성됐고 곧바로 사회투자지원재단 ‘공동체기금 지원 사업’에 선정돼 1,500만 원을 지원 받았다. 그리고 2012년 8월 31일 드디어 ‘희망애찬’이 첫 발을 내딛게 됐다. 초대 이사장은 나눔의집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병채 위원장이었다. “문병채 위원장님은 워낙 맡은 일이 많은 분이라서 조금이라도 일을 덜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해 2월부터 제가 이사장직을 맡게 되었어요. 그나마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 같았어요. 돈 문제는 실무진에서 모두 알아서 해주니까 회의주재하고 기획하는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희망애찬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 뿐 아니라 교인들 중에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이직을 하게 되거나 실직을 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 생활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서로 돕고 힘이 되어주자는 취지로 기금을 조성하게 됐지만 교인들 중에서도 정말 소액이 필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가장인 남편이 잠시 이직을 하게 되면 월급을 받을 수 없는 기간이 생기는데 그때 돈이 필요한 거죠. 은행 문턱이 워낙 높으니 우리끼리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워낙 간단하게 대출을 해주는 것이어서 신뢰가 최우선이고, 서로가 서로를 아는 사이여야 하는 것. “나눔의집 후원인이거나 교인, 봉사자, 활동가, 실무자 등이 대상자입니다. 하지만 나눔의집을 최소 6개월 동안 알고 지내며 공동체 모임에 일정부분 참석을 하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될 수 있어요. 그 외에 대출을 결정하는 데 특별한 사유는 없습니다.” 대출금액에 대한 이율은 3%이지만 계획대로 잘 갚으면 상환 축하금으로 1%를 되돌려 준다. 대부분 성실하게 갚기 때문에 모두 축하금을 받아가지만 축하금을 다시 출자금으로 내놓는 사람도 있다.
올 한해 희망애찬은 이름 그대로 희망찬(?) 한 해를 보내려고 계획하고 있다. 올 해에도 분기별로 4차례 이사회를 진행해 소소한 일들을 논의하고 결정할 예정이다. 모든 회원이 함께하는 공동체 활동은 6회를 진행한다. 공동체 활동에서는 맛집 나들이를 비롯 공동체기금의 이해 및 참여 교육, 백운산 임도길 걷기, 송년모임 등으로 계획 중이다. ‘희망애찬’이란 이름처럼 희망을 함께 나눌 방침이다. “성공회 원주교회에서는 미사를 마치고 나면 모두 모여서 애찬을 함께 나눕니다.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희망을 함께 나누는 것인데 우리 모두에게 비빌 언덕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아요. 비록 소박한 나눔이기는 하지만 함께 한 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동체기금 명칭을 희망애찬으로 정했어요.” 김 이사장은 그동안 ‘희망애찬’을 이끌어오면서 대출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존재 이유가 있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모습을 봤다. ‘희망애찬’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기금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더 많은 분들이 출자자로 들어오고 기금이 쌓이면 급한 돈이 필요한 분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금이 좀 더 쌓인다면 운영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기금은 있지만 이용도가 떨어진다면 그만큼 사람들의 삶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니까 다행인 것이고, 또 기금이 준비돼 있어 언제든지 오면 이용할 수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활동 을 해서 키워나갔으면 좋겠어요. 기금은 준비돼 있으면 언제라 도 쓰임새가 있을 테니까요.” 올 한해 ‘희망애찬’의 목표는 신규 회원 10명에 출자금 100만 원 증자다. 이미 지난 2월 열린 제4차 정기총회에서 신규 회원 2명과 출자금 50만 원을 확보했다. 벌써 절반의 성공을 이룬 셈이다. 김 이사장은 “비록 작은 목표지만 목표를 달성해서 희망애찬이 정말로 우리들에게 희망이 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성공회 세례명이 ‘사라’인 김 이사장은 ‘사라’의 일생이 좋아보였다며 ‘사라’란 이름을 가지면 예쁘게 살고 닮을 것 같았다고 환하게 웃었다. 김 이사장을 만난 날은 뜻밖에도 ‘희망애찬’ 윷놀이 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윷놀이를 하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즐거워하는 김 이사장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희망애찬’의 희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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