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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준 과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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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준 과제 평화를 향한 정의로운 노력

인문도시원주사업단’과 천주교 원주교구 주교좌 원동성당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올 7월까지 총 9회 에 걸쳐, 세월호 문제를 한국사회 전체로 성찰하면서 세월호가 우리사회에 던진 과제를 찾아보고, 미 진한 진상규명과 진상규명 이후의 공동체 기억방식 등에 대해 살펴보는 인문학 특강을 열었습니다. 지난 7월 12일 마지막 강연을 해주신 인권운동가이자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박 래군 선생님의 강연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사회자께서 저를 작가로 소개하셨는데 몇 권의 책 을 쓰긴 했지만 작가는 아닙니다. 이전에 소설을 써 보려다가 전두환 시절에 대학에 들어가서 단편소 설 하나 쓰고, 그 이후로는 단 한 편의 소설도 못 썼 습니다. 지금은 4.16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 다. 제가 그동안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정부에 요구하면서 구속도 되고 이런저런 많은 경 험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게(세월호 진상규명) 쉬 운 일이 아니구나, 세월호참사가 워낙 많은 문제들 과 많은 사람들, 특히 권력의 하수인들이 얽히고설 켜 있어서 완전한 진상규명에 이르기까지는 험난 한 과정을 겪어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호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범죄자들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범죄자들도 있습니다. 그간에 진행된 과정을 톺아보면 정말 우리 사회가 갖고 있 는 기득권 세력들, 그야말로 적폐세력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4.16 이전과 이후 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사회적 운동을 4.16운동이라 고 총칭해서 이야기하는데, 이 운동은 망가진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운동입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우리사회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거든요. 제가 4.16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4.16 이전은 돈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회였고, 돈 중심으로 굴러가는 국가였습니다. 세 월호 참사를 통해서 사람들이 ‘아, 우리 사회가 이 렇게 돈을 믿는, 돈을 추종하는, 돈을 신앙하는 그 런 사회였구나. 그러면서 지금까지 살아왔구나.’ 세 월호를 통해서 국민들은 우리나라가 ‘돈(錢)종교’ 를 중심으로 판을 치는 사회, 교회도 절도 모두 돈 만 있으면 된다는, 돈만 유일하게 믿는 세상이 되었 다는 것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금전만능의 비인간적인 사회를 사람중심, 생명중 심의 세상으로 바꾸는 길로 가야되는 것 아니겠느 냐.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세월호진상규명위원회 가 활동해온 일들이 결코 무의미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 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 여러분과 같이 얘기를 나 누고, 세월호 이후 달라져야 할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중심, 생명중심의 세상으로 바꾸는 길

촛불시민혁명이 있기 전의 일 년 전과 지금은 굉장 히 달라졌지요. 작년에 정부여당에서는, 이것은 지 금이 아닌 일 년 전(2016)의 정부여당을 말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세월호를 덮고, 국민들의 기억에 서 지우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법적으로 제대로 해석을 하면 특별조사위원회는 2017년 2월 4일까지 조사를 진행하는 기간이었 고, 조사보고서를 쓰는 것까지 하면 5월 3일까지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정부여당에서 는 자기들 멋대로 해석해서 작년 2016년 6월 30일 로 종료해버렸고, 9월 30일까지 보고서를 다 내는 것으로 해서 해산시켜버렸습니다. 이런 식의 막무 가내인 정부에 맞서서 장관급인 특별조사위원회 이석태위원장님이 광화문에서 농성도 하고 그랬지 만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에서 진상규 명활동을 방해를 하는 일들을 계속 했습니다. 해양수산부는 작년 6월말까지, 7월말까지, 8월말 까지, 9월말까지 세월호 인양을 하겠다면서 시간을 계속 지연시켰습니다. 잘못된 인양 방식을 계속 고집을 하면서, 세월호 선 수 들기, 뱃머리 쪽을 들어서 빔을 놓고, 또 선미 쪽 을 들어서 빔을 놓고, 뭐 어쩌고 하면서 말입니다. 결국 선미 쪽 들어 올리다가 실패를 하고, 작년 하 반기에 이르러서야 잘못된 인양방식이란 것을 인 정하게 됩니다. 그래놓고는 지난겨울에 선체 인양 방식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왜? 촛불이 광화문에 서 훨훨 타올랐거든요. 그때 비로소 인양 방식을 바 꿨어요. 그리고 어떻게 됐나요? 인양 방식을 바꾸 고 한 달여 만에 선체가 올라왔습니다. 박근혜 정부 가 그대로 있었다면 세월호가 인양됐을까요? 저는 안 됐을 거 같아요. 촛불의 힘으로 정권이 바뀌니까 선체가 올라오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문화예술인에 대한 블랙리스트 명단 만든 것도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거라는 거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세월호 진상규명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고, 세월호 얘기만 하면 무조건 입막음하려고, 거기에 불이익을 주고, 탄압을 하고, 이러던 게 작년까지의 일이었습니다. 화이트리스트도 있습니다. 화이트리스트는 뭐냐? 청와대에서 전경련의 돈을 끌어다가 어버이연합이 라든지, 엄마부대라든지 이런 사람들을 동원해가 지고 유가족들을 모독하고, 제가 가는 데마다 쫓아 다니면서 “박래군 퇴출하라. 박래군 구속시켜라”라 고 선동해서 제가 결국 구속되고... 이런 식으로 탄 압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말에, 이것도 촛불혁명 이 한 것이지만, 국회에서 ‘4.16참사진상규명법’을 만들고, 선체조사위원회가 활동할 수 있도록 한 것 입니다.  

작년 12월 탄핵정국 때 촛불 든 사민들이 가장 먼 저, 그리고 가장 많이 얘기했던 것이 뭐냐. ‘대통령 7시간’이었습니다. 그 추운 겨울 날 광화문 광장에 서 백만 명, 이백만 명이 모였을 때 저녁 7시면 촛불 을 껐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당신은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냐?”고 청와대를 향해 외쳤습니다. 그리 고 그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던 9명의 이름을 불렀습 니다. 촛불 투쟁 맨 앞에 정치인이나 국회의원들은 나서 지 못했어요. 시민들은 세월호 가족들한테 맨 앞자 리를 내주었지요. 박근혜 대통령이 구속되니까 그 렇게 인양이 어렵다고 했던 세월호가 바다 위로 올 라왔어요. 희한하지요? 3월 31일 새벽 4시 경에 유족들은 목포신항으로 세월호가 들어오는 것을 보기 위해내려 가던 버스 안에서 박근혜가 구속되던 것을 보게 되었어요. 그 걸 보면서 유족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어요. 저 한테 엄마들이 그러더라고요. “위원장님, 애들이 약속을 지켰어요. 금요일에, 금요일에 왔잖아요.”

세월호, 앞으로의 남은 과제

이제 촛불시민의 염원을 받아서 새로운 정부가 출 발을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까, 이게 문제이지 요. 새 정부가 들어선 지 60일이 넘었는데요, 선체 조사위가 생긴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습 니다.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 지난 4월 16일, 안산에서 ‘세월호 3년 기억식’을 할 때 대통령 후보들이 모두 왔지만,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약속한 사람은 문재인 후 보였습니다. 다른 후보들은 4.16을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있거나, 아니면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어 요. 당시 여당 후보자는 “세월호를 3년이나 우려먹 었다” 이런 막말을 해대고 그랬어요. 지난 5월 10 일 문 대통령은 세월호 2기 특조위가 만들어지기 전이라도 정부에 조사기구 같은 것을 만들어서 철 저하게 진상을 밝히겠다고 약속했어요. 
올해 해야 할 일과 내년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4.16참사 진상을 위한 ‘특별법’이 11월 10일 이후 에 국회 본회의에서 꼭 통과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러고 나면 7월 7일부터 조사를 개시한 세월호 선체 조사위가 활동을 10개월 동안 하게 됩니다. 선체조 사위는 말 그대로 선체조사와 미수습자 수습, 그리고 선체보존 대책을 세우는 게 기본 임무입니다. 이 런 것들이 내년 초까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선체조 사 활동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세월호참사진상규 명을 위한 2기 특조위’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2기 특조위의 세월호참사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은 이전 정부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야 되겠죠. 이전 정부에 서는 ‘해수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조사방해를 하 고, 심지어 우익단체들을 동원해 유가족을 고발하 는 일들이 횡행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됩니다. 그 다음에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합 니다.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 도록 제도화해야 합니다. ‘특조위’에서 철저하게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주셔 야 합니다. 정부와 특조위가 아무리 하려고 해도 국 민 여론이 싸늘해지고 관심이 없어지면 이거 쉽게 안 됩니다. 원주에서도 3년 동안 해온 천막미사를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참여 속에 세월호참 사와 관련된 책임 있는 사람들을 다 리스트로 만들 어서 기록으로 남겨놓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대형 참사가 났을 때 진상규명은 물론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몇 백 명씩 죽는 선박 대형사고가 십 년, 이십 년 주기로 계속 일어났습니 다. 1970년에 제주 서귀포항에서 부산까지 운항하 는 여객선이 있었어요. 그때도 과적, 과속, 이것이 문제였는데, 이 배가 여수 앞바다에 침몰했어요. 320여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는데 그때는 몇 명이 타고 있었는지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됐습니다. 삼백 이십 몇 명이 바다에 몰살했는데, 3일에 걸쳐서 시 신 50구만 건지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망한 사람에게 일인당 70만원씩 주고 덮었거든요. 배를 인양할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어요. 놀랍게도 선박 사고 중 인양을 해서 선체를 옮기고, 미수습자를 수습한 일은 세월호가 처음입니다. 이 것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지요. 누구의 힘으로?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힘으로! 이렇 게 만들고 얻어낸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재난참사 가 일어났을 때 정부에서는 돈으로 다 해결했거든 요.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렇게 안했습니다. “우린 돈 필요 없다. 진상규명을 해서 우리 애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했고, 그것을 위해 싸웠 고, 그것이 시민들의 가슴을 울린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공감을 회복해가면서 드디어 우리 사회가 인간의 목소리에, 인간의 호소력에 반 응하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 니겠어요? 끝으로 ‘안전사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는 안전에 대한 측면에서 보면 정말 위험 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경쟁력을 제1의 가치로 생각하면서,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겨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일 년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만사 천 명입니다. 하루에 4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셈입니다. 산업현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 하는 숫자가 일 년에 2천 4백 명입니다. 
사람 목숨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사고로 다치 거나 죽으면 보상해주면 해결된다는 생각이 만연 해 있습니다. 세월호를 계기로 이런 것을 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세월호 참사와 시민촛불혁명을 계기로 안전사회를 만들어가는, “이 정도면 됐다”고 할 때 까지 지치지 말고, 길게 보고, 혼자만 하는 게 아니 라 다 같이 함께하는 사회로 만들어갔으면 좋겠습 니다. 4.16연대에 보내주신 원주시민 여러분의 성 원에 감사드리며 세월호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 셔서 고맙습니다.


‘무위당서화자료집’ 7집 출판기념회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송년회

무위당 서화자료집 7집 출판기념회 및 송년 행사가 12월 22일 오후 4시 30분 상지대학교 민주관 강당 등에서 열린다. 7집에는 앞서 간행한 자료집에 미처 담지 못한 100점의 작품이 수록됐다. ‘배고 픈 사람 배불리 해주어라 세금 조금 내보내라. 부역 없게 하라’를 비롯해 상당 작 품을 소장한 분들과 연결돼 발굴하고 촬영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의 뜻풀이도 함께 실었다. 작품을 소장하게 된 사연과 함께 소장자들이 기억 하는 무위당 선생님에 대한 단상도 감상할 수 있다. 서화자료집 출간 사업은 원주시 지원으로 2011년에 시작, 해마다 발간하고 있 다. 서화자료집 발간은 ‘(사)무위당사람들’이 3,000여 점 이상으로 추정되는 전 국에 산재한 무위당의 작품이 관리소홀로 훼손되거나 사라질 것을 예방하고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후세에 남겨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추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