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원주역
원주역이 사라집니다. 80년 추억의 시간을 간직 하고 있는 원주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 니다. 이제 평창올림픽을 두달 앞두고 오는 22일 경강선 KTX 철도가 개통되면서 강원도는 새로운 교통의 대변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만종 역은 20편의 열차가 강릉과 청량리를 1시간 이내 로 연결하고 서울역 및 인천공항까지 한달음에 달 려갈 수 있게 연결시켜 줄 것입니다. 또한 내년 중 에 중앙선이 복선화되어 남원주역이 개통되면, 원 주시는 1955년 시승격 이후 가장 큰 변화를 가져 올 것입니다. 이제는 원주가 강원도의 변방이 아니 고 Megacity 서울시 광역권에 편입되고 있는 것 입니다. 원주사람이면 누구나 원주역과 함께 한 추억의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30여년 전 봄날, 제가 원주역 에 첫발을 디뎠을 때가 생각납니다. 20대 후반시절 서울서 공부하다가 불현듯 결혼 승낙을 받기위해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혼자 원주역에 내렸습니 다. 역전에서 사과 한 봉지 사들고 주소를 물어물어 원주천 둑방 흙길을 따라 봉산동을 찾아갔던 그 추 억의 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원주역은 저의 삶의 일부분이 되어왔습니다. 결혼 후 어느 날 원주역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주 교관에 지학순 주교님께 인사드리러 갔던 기억이 납니다. 긴 역사를 담은 소파에 앉아 따뜻한 미소로 반겨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원주역은 한때 뜨거운 집회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1975년 2월 18일, 지학순 주교님은 226일 동안 옥고를 치르고 석방되었습니다. 원주역에 도착하신 다는 소식을 듣고 3만 여명의 원주시민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 당시 원주시민이 10만여 명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많은 분들이 모이셨던 것 같습니다. 지 주교님 승용차가 원주역에 도착하자 진광고 밴 드의 '고향의봄' 연주와 함께 시민들이 열렬히 환영 했고, 강원감영에 이르러서는 청년들이 웃옷을 벗 어 길에 깔아 놓아드려 옥고를 치른 주교님을 환영 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마 원주시 역사상 가장 뜨거 웠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일로 한동안 원주 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고 수많은 사람들 이 원주역을 통해 주교관을 오가면서 역사를 써내 려갔습니다. 지 주교와 함께 한 무위당 장일순 선생 역시 원주 역과 관련된 일화가 남아있습니다. ‘어느날 시골아 낙네가 딸 혼수비용을 기차 안에서 몽땅 소매치기 당했다며 그 돈을 찾아달라고 장일순을 찾아와 매 달렸다. 장일순은 아주머니를 돌려보내고 원주역 으로 가서 노점에 소주를 시켜놓고 앉아 노점상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나흘이 지나자 원주역을 무대 로 하는 소매치기를 죄다 알 수 있었고 돈을 훔친 작자도 알아냈다. 장일순은 그를 달래서 남아있는 돈을 받아냈고 자기 돈을 합쳐서 아주머니께 돌려 주었다. 그 일을 마무리하고 장일순은 가끔 원주역을 갔는 데 그것은 그 소매치기에게 밥과 술을 사기 위해서 였다. 그는 소매치기에게 말하기를 “미안하네, 내 가 자네 영업을 방해했어, 이것은 내가 그 일에 대 해 사과하는 밥과 술이라네, 자 한잔 받으시고…” 그에게 소매치기를 말라든가 하는 나무라는 말은 일절하지 않았다.’ 비록 제자들에 의해 전해오는 일 화지만, 깨지고 지치고 변방으로 밀려난 서민들의 삶과 함께했던 무위당 선생의 삶과 사상을 직감적 으로 느낄 수 있는 원주역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원주의 모든 사람들이 원주역 이야기 하나 씩은 풀어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최근 20여 년 동안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 장 빠르게 성장해왔고, 그에 따라 원주시도 급격한 변화를 보이며 한반도 중심의 교통 요지로서 빠른 발전을 해왔습니다. 특히 평창올림픽 개최로 최근 에 혁신도시, 기업도시, 신청사, 역세권 등 동쪽과 남쪽의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원주가 완전히 바뀌 고 있습니다. 반면에 원주역과 강원감영을 중심으 로 한 구도심은 한때 그리도 빛나던 역사의 흔적이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만간 성장이 서서히 멈추고 신도시에 황량함을 느낄 때면 그 전의 원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때가 올 것 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돈과 화려한 고층건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아름다운 추억의 사진들과 이야 기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가치를 상실한 겉 모습은 잠시 눈요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얼마 전 만종역 신역사 개통식이 있었습니다. 참으 로 원주시민 모두가 축하할 일입니다. 또한 남원주 역도 조만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 나 그동안 80여년 원주시의 역사와 함께하고, 힘들 고 어려운 사람들의 광장이 되어주고, 원주시민 모 두의 추억의 시간을 만들어준 그곳 원주역을 기리 는 행사를 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원주역 그곳에 원 주이야기 공간을 만들고 이야기 백일장도 하면서 원주스토리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합니다. 너 무 화려한 새것에만 달려가지 말고, 근 한세기 동안 수고해준 원주역의 노고를 새겨보았으면 합니다.
글 황도근 무위당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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