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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BOOK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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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쓰는 그림일기

올해 스물아홉이 되는 후배가 며칠 전 찾아왔다. 밤색 모자를 눌러쓰고 츄리닝 바지를 입은 그는 오래전 보 았을 때보다 훨씬 더 깡말라 보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층 더 성숙한 모습이었다. 눈빛마저 형형한 것이 예 사롭지 않았다. 곧바로 그의 입에서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고 며칠 전 한국에 들어왔다는 대답이 돌아왔 다.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 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km를 걷고, 내친김에 100km를 더 걸었다고 한다. 불과 1년 여 전에 그는 작은 금융회사에 취업을 했다며 좋아했었다. 그런 그 가 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에 나선 것은 주 말만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이 안쓰러웠기 때문이란 다. 안정적이고, 야근도 거의 없어 편한 직장이었지만 주말을 기다리다보면 일주일이 쏜살같이 가버려 ‘이 건 아니다’ 싶었다는 것이다. 서른을 앞둔 그는 순례 길을 걸으며 꼼꼼하게 적은 일기장이 있고, 사진도 많 이 찍어 독립출판물을 제작하고 싶다며 순하게 웃었 다. 거창한 것 보다 아직 용기가 없어 여행에 나서지 못한 지인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 책을 만들고 싶 다는 것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이루고 싶은 바람이라 고 덧붙이기도 했다. 순례길은 물론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 오사카를 거쳐 여행은 원 없이 해봐 이제 삶의 궤도에 안착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와 함께 차를 타 고 가면서 책 제목이 떠올랐다. 「서른, 여행은 끝났다」였다.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빌려왔다. 이 시집을 읽었던 적이 서른이었는지, 서른 을 넘어서였는지, 이십대 후반이었는지 기억나지 않 는다. 당시 베스트셀러였고, 서른을 앞둔 젊은이들은 유행처럼 잔치는 끝났다고 읊조리곤 했다. 서른을 이 야기하다보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도 떠올랐다. 가객 김광석은 사랑의 열병을 앓았던 서른,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날들이 서글펐던 서른, 조금씩 떠나가는 청춘을 아쉬워하던 서른을 노래했다. 우리의 서른은 어쩌면 감정의 최고 정점을 찍었던 때였는지도 모른 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거나 모든 것이 너무나 명확했 으므로 혼란은 더 가중되었을 것이다. 독립출판물 「서른에 쓰는 그림일기」도 인기다. 혼 란스러웠던 감정의 시기를 지나 불혹에는 생각대로 살 것이란 꿈을 꾸는 30대 샐러리맨의 이야기다. 아 침 출근길과 진급 누락, 직장 권태기, 여름휴가, 아 빠, 엄마, 돌아가신 할머니, 서른 맞이, 새해 다짐 등 평범한 8년차 회사원이 마주하는 일상과 감상을 담 은 그림일기다. 작가는 감정에 무디어지기에는 서 른하나가 되어도 쉽지 않고, 맞지 않는 사람과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을 대면하는 일은 6년째가 되어도 여 전히 어렵다고 고백한다. 서른을 앞뒀거나, 서른 즈 음에 있거나, 서른을 훨씬 앞질러 왔거나, 이 책이 그 때를 다시 추억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해피 해피 브레드」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홋카이 도의 츠키우라라는 작은 마을에서 ‘카페 마니’를 운 영하는 부부의 이야기다. 빵을 굽는 남편과 커피를 내리는 아내, 그들에게 찾아오는 유쾌한 이웃들과 손님들의 에피소드가 잔잔하게 이어지는데, 화면 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도야 호수 인근의 사계절과 화덕에서 구워낸 따뜻한 빵을 보노라면 평화로운 시골 생활을 마냥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에 이런 빵집이 있다면 어떨까? 일본의 한 시 골 마을에는 ‘다루마리(タルマーリー)’라는 곳이 있다. 주인 부부인 와타나베 이타루·마리코 부부의 이름에서 각각 두 글자씩 따서 붙인 명칭이다. 막연 히 농부를 꿈꾸던 남편, 환경과 전원생활에 관심이 많았던 아내는 ‘작아도 진정한’ 일을 찾아 의기투합 했고 시골에 빵집을 열게 된다. 「시골빵집에서 자 본론을 굽다」는 도쿄에서 나고 자란 부부가 ‘진짜 인 일’을 찾아 빵을 배우고, 도시를 떠나고, 빵집을 열어 운영해오며 겪은 일들에 대해 쓴 책이다. 영화 의 현실판이자, 조금 더 깊이 있는 고민이랄까. 이들이 만드는 빵은 조금 특별하다. 좋은 물, 지역 에서 재배한 밀, 천연 발효시킨 균으로 반죽을 하 고, 화덕은 인근 숲에서 자란 나무로 불을 땐다. 보 통 제빵에 사용되는 우유·달걀·버터·설탕 등 다른 첨가물은 들어가지 않는다. 이들이 구워낸 빵은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생태를 보호한다. 지역 생산· 지역 소비를 실천하는 선순환도 이루어 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일주일에 월·화·수 사흘 은 가게를 닫고(책이 발간된 후 현재는 월요일에도 문을 연다. 단, 빵은 굽지 않고 런치 메뉴 등을 판매 한다), 직원들 모두가 일 년에 한 달 장기 휴가를 간 다. 일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수년간 연구해온 천연균 발효와 빵 제조 노하우를 기꺼이 전수해 주기도 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천연효모를 발생시켜 정성껏 빵을 만드는 것, 제대로 된 먹거리에 정당한 가격을 받고 판매하는 것. 그리고 빵을 만들수록 지역과 환 경에 보탬이 되는 것. 다루마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분명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는 부패하지 않 기에 발효되지 않는다고 진단하며, 도래한 저성장 시대에 계속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2014년 출간된 후 한국에서만 4만 부가 판 매되며 일약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다루마리는 한 적한 시골에 있고, 판매하는 빵은 다른 빵집보다 세 배 이상 비싸지만 언제나 순식간에 동이 난다. 이들 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 이리라.








글 원상호 / 글 이새보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