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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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3,120 | |
홍성철 저 페이퍼로드 · 359쪽 · 18,000원 군 입대를 앞둔 20대 초반의 청춘들은 어둔 밤 야릇한 불빛이 흔들리는 홍등가를 서성였다. 친구들이 총각딱지를 떼어준다며 강제로 등을 떠밀기도 했다. 이제는 그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전국의 홍등가들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좀 더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홍등가라는 말도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 매음굴, 윤락가, 홍등가 등으로 불리던 유곽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이전인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개항된 부산과 인천, 원산 등에서 처음 모습을 나타냈다. 성매매 집결지나 집창촌으로 불려진 것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나온 용어들이다. 우리나라에는 집단으로 성을 팔고 사는 유곽이 없었다. 개항과 동시에 일본인 노동자들을 위해 건너온 일본식 유곽이 본격적으로 퍼져나갔다. 부산의 완월동을 시작으로 목포와 군산, 인천, 원산 등에 요리점이란 이름으로 영업이 성행했다. 이후 철도가 놓여지면서 경부선을 따라 대구와 대전 등에도 유곽이 들어섰다. 일본의 전쟁에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의 가슴 아픈 역사도 같은 선상에 있었다. 원주의 대표적 집창촌인 학성동 일대가 최근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선정됐다. 어쩌면 이 사업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춘천의 난초촌 등 대표적인 집창촌은 벌써 오래 전 사라졌다. 홍성철의 「유곽의 역사」는 일종의 금기처럼 여겨지던 집창촌에 대해 꼼꼼한 자료 수집과 취재 등을 통한 우리나라 유곽의 과거·현재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말하고 있다. “집창촌 100년의 역사를 얘기한다고 해서 성매매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집창촌을 합법화하자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럴만한 이유도 명분도 없다. 선과 악의 관점에서 본다면 집창촌이나 성매매는 결코 선이 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반드시 사라져야 할 절대악으로만 바라본다면 성매매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진다. 과거 성매매 정책들이 그러했다”고. 글 원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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