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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 STORY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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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여백

‘여백(餘白)’이라함은 국어사전적 의미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자리를 의미하며, 동양화에 서는 예부터 여백을 화면에 두루 퍼져 있는 기(氣)의 표상으로 여겨서 비움의 철학으로 채움의 번잡함을 포 용하는 동양미학의 백미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바쁘다 바빠’로 일관되는 오늘날의 삶속에서 도시의 여백은 무엇일까요? 도시를 가득채운 건축물과 자동 차, 알록달록한 옥외광고물 거기에 저마다의 목소리를 담은 현수막까지 더해져서 각박해진 도시의 삶을 더 욱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지나치게 많다는 것, 그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거리에 가득차서 넘칠 것만 같은 저마다의 홍보안내 물들은 정작 시민안전을 지켜주어야 할 교통사인판을 가려버리고, 공들여 조성한 도심공원을 지나치게 하 며, 간판정비와 지중화사업 그리고 문화거리조성 등으로 시민과 지자체가 노력한 도시이미지의 쾌적한 변 화를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부유하지도 않았고 도시의 규모도 작았지만, 연말이면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럴과 장식트리가 행인들의 미 소와 함께했고 설날이면 한복과 때때옷을 차려입는 주민들이 동네마다 윷놀이 판을 벌이며 농악소리와 함 께 마을잔치에 흥겨웠던 우리네 기억이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도시는 그 시대의 사상과 문화가 투영된 거울이라고 합니다. ‘더 많은 것을 보다 빨리’ 채우려다 보니 도시 는 숨을 쉬고 따뜻함을 이어줄 공동체의 여백을 잃어버린 채,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마음적으로 각박함에 파묻혀 당면한 도시문제에 함께 고민하지 않고 대립과 갈등으로 달려가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시와 더불어 시민 모두가 자존감을 갖고 좀 더 느긋하게 도시를 바라보고 여유롭게 도시의 변화를 추 구한다면 여기저기서 불거지는 도시문제를 훨씬 수월하고 슬기롭게 풀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보다 많이, 보다 크게, 보다 빨리, 보다 높게가 도시의 경쟁력으로 평가되는 현대의 패러다임 속에서 여백은 무엇보다 중요한 공동체의 쉼이자 진정한 발전의 기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뒷마당에서는 안 돼!’라는 님비(NIMBY : Not in my backyard) 현상과 ‘내 집 앞으로 유치할꺼야!’라 는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현상 그리고 ‘어디에든 아무것도 짓지 마라’라는 바나나 (BANANA : 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현상까지 모든 지역이기주의의 대립과 갈등은 여백을 가지고 여유롭게 나누며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의식과 이해와 배려의 노력과 시간 부 족에서 시작되었을 것이지요. 삼국시대로부터 중부내륙의 문화와 사회경제를 이끌어오는 원주의 역사성에 걸맞은 여백이 필요한 때입니 다. 크고 빠르게 채우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고 작고 느리게 채우고 비움을 갖는 것도 좋을 수 있다는 우 리 모두의 공감이 필요할 것입니다. ‘작고도 큰 도시, 느리고도 빠른 도시같은 얼핏 모순된 것처럼 생각되는 도시로의 체질 변경이 근본적인 도시문제 해결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라고 강의하신 옛 스승님의 말씀을 떠올려보며 다가올 설날에는 마을 마을의 여백공간에서 흥겨움이 가득하길 기대해봅니다.








글 신영식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