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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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3,230 | |
김재형 역해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 2018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송골마을 입구 도로가에는 해월 최시형(1827~1898) 동학 2세 교조 피체지임을 알리는 비가 서 있다. 비엔 ‘모든 이웃의 벗 최보따리 선생을 기리며’라고 쓰여 있다. 무위당 장일순(1928~1994) 선생의 글씨다. 해월 선생은 1861년 35살에 천도교(동학)에 입도해 2년 만인 1863년 37세에 1세 교조인 수운 최제우 대신사로부터 도통을 전수받았다. 1년 뒤인 1864년 수운이 처형을 당하자 동학 최고 지도자가 되어 72세로 순도할 때까지 평생 쫓겨 다니며 개벽 세상을 열었다. 해월 선생은 보따리 하나 짊어지고 무려 200곳을 옮겨 다녔으며 강원도 영월과 원주도 포함돼 있다.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에는 1871년 숨어 들었다. 해월 선생은 이곳 두위봉에 있는 호굴에 숨어 있었고, 굴에서 내려와 마을에 1년을 머무르며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법’인 대인접물(待人接物)이란 유명한 법설을 남긴다. 이후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송골마을 원진녀 씨의 집으로 몸을 숨겼다가 1898년 4월 5일 관헌에게 체포됐다. 해월 선생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랐다. 남의 집 머슴도 살았고, 제지소(製紙所) 직공 생활도 하면서 가난을 면치 못해 학문이나 지식을 별로 쌓지 못한 분이다. 수운에게 도통을 전수 받은 해월 선생은 ‘우리의 일상생활이 모두 도(道) 아닌 것이 없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 속에 우주 만물의 이치가 모두 들어 있다’ ‘사람이 바로 한울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 같이하라’ 등 어렵게만 느껴지던 도를 생활을 통해 가르치고 실천했다. 해월 선생의 이 같은 사상을 더욱 쉽게 엮은 책이 나왔다. 바로 「동학의 천지마음」이다. 「동학의 천지마음」은 『해월신사법설』을 동아시아 철학과 지혜의 관점에서 현대 언어로 재해석하고 쉬운 번역과 독창적인 해설로 풀어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호저면 고산리 송골 입구에서 무위당 선생의 글씨와 해월 선생의 아름다운 말씀을 만나보길 바란다. 天地卽父母요 父母卽天地니 天地父母는 一體也라. 글 원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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