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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 Story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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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천 이야기


인류가 이동생활을 청산하고 한곳에 정주하게 된 것은 약 1만 년 전 시작 된 신석기 혁명 이후의 일입니다. 신석기 시대에 석기를 활용한 원시 농업이 태동했는데, 농경 활동과 함께 본격적으로 한곳에 정주하는 거주 체계가 등장합니다. 이러한 고대 문명은 대부분 큰 강을 끼고 나타났는데 이는 이들 문명이 모두 농경문화에 근간을 두었음을 알게 하는 것으로 하천, 즉 강이나 개울은 오랫동안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자연의 일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적인 도시들도 하나같이 하천을 끼고 태동하고 발전하였는데, 봉천내로 불리던 원주천은 판부면 금대리에서 시작하여 원주시내를 거쳐 호저면 주산리 섬강으로 합류해 한강으로 이르는 물줄기로 원주의 역사와 함께한 대표적인 하천입니다.

 봉산동에 위치한 원주초등학교 뒤에 있는 산을 봉산이라고 부릅니다. 봉황새의 꼬리 부분과 같다하여 봉산·봉산미(鳳山尾)라고 하였고,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원주에 와서 봉산의 모양을 보고 원주에서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날 것이라 생각하여, 봉의 꼬리에 해당되는 곳에 큰 말뚝을 박아 봉의 혈을 자름으로써 봉산의 정기를 죽였다 하여 봉살뫼(鳳殺뫼) 혹은 봉살미(鳳殺尾)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러한 봉산의 이름을 따서 봉천, 봉산천 또는 봉천내로 부르는 하천이 원주천이지요. 

원주천은 국내 대부분의 도시하천이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흐르는 방향과는 다르게 남쪽에서 북서쪽으로 흐르는 지리적 특징이 있어 지역인재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으니 치수정책이 중요하다고 언젠가 풍수전문가가 강의했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원주천은 올 1월에 지방하천에서 국가하천으로 승격되어 하천 정비사업 및 유지 관리에 전액 국비가 지원됨에 따라 지역 경제에 크게 기여하게 되며, 정지뜰 호수공원조성사업 등 하천정비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이수·치수는 물론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 특성이 반영된 친수공간 조성을 통해서 지역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원주천변 주차장에서 열리는 새벽시장 주변지역은 ‘배말’이라고 불리는데요, 이곳의 지형이 배의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서울(한양)에서 남한강을 따라 섬강을 거쳐 이곳 강원감영 앞까지 배가 드나드는 마지막 구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서울(한양)에서 원주에서는 구할 수 없는 소금 같은 생필품을 싣고 오고, 조선 왕실에 사용될 질 좋은 소나무인 치악산 황장목을 실어갔다고 하지요.

또한, 군부대이전 예정부지인 우산동 맞은편의 군수지원사령부 부지에서 원주천에 이르는 학성동 지역을 정지뜰이라고 부르는데요, 원주천을 거슬러 봉산동 배말로 가던 거룻배가 이곳 나룻터에서 잠시 쉬거나 대기하는 터미널 기능을 수행했던 곳으로, 이곳에 많은 거룻배를 매어두었던 곳이라 하여 거룻배 ‘정(艇)’자에 터 ‘지(址)’자를 써서 정지(艇址)라고 했다는 지명유래가 있습니다.
도시하천은 생태학적으로는 물의 순환과정에서 물이 흐르는 장소이고, 생활과 문화의 장이며,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통로입니다. 원주천은 수년간에 생태하천복원사업으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간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개봉교를 비롯한 여러 교량에 조형물을 비롯한 야간경관 조명을 설치해 안전하고 쾌적한 야간 문화 활동공간을 제공하고 아름다운 도시경관을 가꾸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코로나19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 시기에, 도시공원과 함께 오픈스페이스이자 생태공간인 원주천이 시민 삶속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는 보배로서 역할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글 신영식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