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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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2,071 | |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백종옥 지음 반비 · 2018 기존의 형태를 틀어버린 이미지들, 이를테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각종 CG 기술을 사용해 만든 영상, 비양케 잉겔스가 만든 건축물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래’를 떠올린다. 이때의 ‘미래’란 과거와 현재가 희미해지며 드러나는 감상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베를린에 만들어진 기념추모비도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웅장하고 중앙 중심적인 이미지가 강한 기념비와는 달리 베를린의 기념비는 일상의 사물과 별 차이 없이 도시 곳곳에 서있다. 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베를린의 기념비를 보며 떠오른 ‘미래’에는 과거와 현재가 선명하다. 2차 세계 대전이 계속되던 193-40년대, 독일은 히틀러와 나치를 중심으로 유대인 대학살을 저질렀다. 고통의 시간 끝에 마침내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독일은 자신들의 어두운 역사를 감추거나 잊지 않았다. 전쟁 피해자들에게 사과했고 수도인 베를린 시내 곳곳에 전쟁 역사와 관련한 표시, 즉 전쟁과 관련한 기념추모비를 세웠다. 베를린 곳곳에 있는 기념추모비는 랜드마크처럼 바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다. 도심 한복판, 축구장 4배 크기의 땅 위에 세워진 ‘홀로코스트를 추모하는 풍경’은 높이가 다른 2,711개의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들었다. 전쟁에 희생을 당한 사람들이 사는 집터 위에 작은 크기로 설치한 ‘길바닥 추모석’은 베를린에만 7천 개에 이른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리는 버스 정류장에는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 책임자로 활동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인물의 사진과 그와 관련한 역사가 적혀있다. 한국에도 굵직한 역사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많다. 하지만 베를린과 달리 거리감이 느껴진다. 천안독립기념관 ‘겨레의 탑’만 해도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바깥’에 있다. 미래는 결국 과거를 딛고 나타난다. ‘안’으로부터 시작하는 베를린만의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을 보며, 역사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을 고민해본다.
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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