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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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1,854 | |
이별의 김포공항 박완서 지음 민음사 · 2019 푸른 동해를 보려면 항상 영동고속도로 위를 달려야 했다. 대관령 표지판과 짧은 간격으로 이어지는 터널을 지날 때면 차 안 대화는 대개 구불구불한 대관령 옛길 이야기로 빠지곤 했다. 단번에 영동고속도로는 영서와 영동 지방을 잇는 편리한 길이자 대부분의 기억이 쉬이 미화되는 옛 추억이 된다. 이 책의 세 번째 단편인 《카메라와 워커》는 6.25 전쟁 이후 부모를 잃고 고모와 할머니 손에서 길러진 ‘훈’이라는 남자의 인생을, 고모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어야 했던 시절, 어쩌면 돈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 별반 다를 것이 없던 1970년대, ‘훈’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고모의 조언에 인문대를 포기하고 공대에 입학한다. 고모에게 ‘훈’은 친오빠와 올케가 전쟁 속에 죽고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모성애에 제 자식처럼 키워낸 인물이다. 고모는 훈에게 영동고속도로 공사 일을 권하고 ‘훈’은 군말 없이 그곳으로 간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조카에게 연락이 없자 고모는 직접 영동고속도로 공사 현장에 간다. 영동고속도로 진부 지역 쪽에서 마침내 ‘훈’과 마주한다. 고모는 그제야 ‘훈’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목격한다. “(훈의 한마디)”역사 속 한국 현대사는 전쟁을 이겨내고 짧은 시간 내에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된 이야기뿐이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가 쓴 한국의 현대사는 그렇지 않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무도 주목하지 못한 여성을 주체로 내세워, 여성의 언어로 당시의 일상을 포착한다. 아메리칸 드림과 남호선호사상이 뒤섞인 둔탁한 시대에 생애 첫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는 노모의 이야기를 담은 《이별의 김포공항》과 유교 문화권 속에서의 한정된 여성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여성의 시선과 서사가 더 많이 기록되어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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