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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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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것의 속도




모처럼 날씨가 좋아 오랜만에 거리 산책을 나선 어느 날이었다. 선들선들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지척에서 굉음이 들 려와 나도 모르게 ‘어머나!’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 았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했음이 분명한 청소년이 전동킥보드를 타고 유유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 다. 무슨 심보인지는 몰라도 만면에 웃음을 띤 그 가 쏜살같이 내 곁을 스쳐 지나고 나서야 ‘어머나!’ 라는 유약한 감탄사를 뱉은 사실이 치욕스러웠다. 희롱의 대가로 ‘네 신체 부위 중 하나를 골라 제 기 능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다’는 의사 정도는 표 시했어야 했는데. 속 좁은 모멸감을 연료로 평화 롭던 산책은 결국 분노의 경보로 바뀌고 말았다. 탈것은 왜 종종 폭력의 수단이 되는가. 비단 전동 킥보드만의 일은 아니다. 탈것의 몸집이 크고 속 도가 빠를수록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게 당연하거 늘, 자가용 운전자가 보행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 또한 빈번하다. 도로교통법이 버젓이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소용없기 일쑤 다. 옵티머스 프라임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 하는 변신 자동차 캐릭터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 아니고서야 누구나 목적지에 이르면 지면에 발을 딛고 다시 보행자의 처지가 될 텐데 마치 그럴 리 없다는 듯 막무가내로 구는 온갖 탈것 의 운전자들이 밉살맞은 요즘이다. 
그렇지만 탈것이 늘 권력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특히 어르신 운전자에게 그렇다. 시골동네에 살 다보니 속도가 느린 탈것을 자주 접하게 된다. 간혹 어르신들이 전동휠체어를 타거나 보행보 조기를 끌고 차도에 진입하기도 하는데 일견 무 모해 보여도 다 사정이 있다. 보도블럭의 턱이 너무 높다보니 차라리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를 이용하는 편이 여러 모로 낫기 때문이다. 한 번 은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보행보조기에 몸을 의 지하고 앞서 가시던 할머니 한 분과 마주친 적이 있다. 시끄럽게 차임벨을 울리는 대신 자전거에 서 내려 할머니를 추월하려는데 인기척을 느끼 셨는지 놀라시며 길옆으로 자리를 내주셨다. 괜 스레 곤란한 상황을 만든 것 같아 참 민망했다. 속도가 느릴수록, 충격에 취약할수록 먼저 존중 받고 배려 받을 순 없는 걸까. 공연히 인도의 좁 아터진 너비를 탓해보고 ‘전동킥보드 타고 질주 하는 무뢰배들보단 그래도 내가 낫지’ 스스로를 추켜 세워보아도 “길을 막아서 미안해요”라고 사과하시던 할머니의 음성이 지워지지 않는다. 고령화가 점차 가속화되는 추세에 경제인구 비 율 감소나 지자체의 존속까지 염려하는 목소리 가 높지만 정작 일상에서 혀를 차게 되는 건 전 혀 다른 문제다. 전동킥보드와 보행보조기 사이 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 세상엔 분명히 존재한 다. 어찌됐든 하나 확실한 건 누구도 태어나서부 터 죽을 때까지 팔팔한 상태만을 내내 유지할 순 없다는 점이다. 알겠나요? 옵티머스 프라임 씨?


 글 황진영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