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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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 | 1,250 | |
거울을 보는 것만 같은 불편함 <나를 더 사랑해야 한다. 당신을 덜 사랑해야 한다> 빌리버튼 · 손현녕 2018
‘어른’을 뜻밖의 발견처럼 써내려간 글을 발견하면 읽기를 멈춘다. 그리고 책등을 손바닥에 놓고 오른손으로 휘리릭 소리가 나도록 페이지를 빠르게 넘긴다. 책 내용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고민에 빠진다. ‘참고 더 읽을까?’ ‘어른이 된 나’를 자각하는 글에는 1+1 묶음 상품처럼 ‘어른이 된 나’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이어진다. 원래 예전부터 그랬는데 몰랐는지, 아니면 정말 갑자기 이런 글들이 유행이 된 건지 알 수 없다. 이런 현상을 소급할 것도 없이 나는 좀처럼 그런 글들에 적응할 수 없다. 나이와 인생 속 장면들이 대부분 인과 관계로 정리되고 사소한 순간에 자의식을 깊게 빠뜨린 채 써내려간 글에 도저히 마음을 둘 수 없다. 작가이자 독자가 자기 자신이 되어버린 책에서, 또 다른 독자인 나는 무엇을 얻어야 할까. 이런 생각으로 계속 책을 읽다 말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널린 잡념을 파헤쳐 결국 하나의 주제로 엮어내는 작가의 성실함과 집중력에는 박수를 친다. 이렇게 작가의 성실한 태도와 섬세한 필력은 인정하지만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도달했을 때, 나는 별안간 서평 쓰기를 멈췄다. 이건 취향 차이가 아니었다. 정면 돌파를 피하려는 성향, 다시 말해 회피가 기저에 깔린 나의 책읽기 태도에서 비롯된 호불호였다. 사소한 순간을 글자로 옮겨 생각을 ‘뽑아내는’ 방식은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한 것들 중에 하나이다. 어딘가 거울을 보는 것만 같은 불편함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어른이 된 나’와 같은 주제를 싫어한 이유도 결국 벌거벗겨진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걸 고백한다. 사소한 것을 깊게 생각하는 행위는 다른 말로 소심함이 되기도 하고 예민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말들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동시에 가장 익숙하고 편한 표현이다. 손현녕 작가의 성실함과 집중력 말고도 글을 쓰고 세상으로 내놓은 용기에도 남은 박수를 보낸다. 세상 곳곳에 있을 작가를 닮은 이들이 부디 외롭지 않길 바란다.
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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