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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에세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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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하는 사람

 



언젠가부터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다. 
문자 그대로 생각하면 최소한의 물건만 소지하고 살아간다는 뜻인데, 단지 그런 의미로만 소비되는 개념은 아니지 싶다. 미디어에서 전시하는 미니멀리즘의 이미지는 넓고 깨끗한 집에 무척 간소한 가구만 갖춰져 있는 풍경에 가깝다. ‘너무 휑한 거 아니야?’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물건이 참 튼튼하고 멋져 보인다. 
‘고급진’ 미니멀리즘의 실천은 일정 수준의 경제력을 전제로 한다. 질 좋은 물건은 대체로 비싸다. 간혹 튼튼하며 저렴한 물건이 있긴 하지만 이 경우 대책 없는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무기력에 빠트리는 경우가 많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모든 항목을 만족하는 상품은 단연코 없다. 꼭 어느 한두 가지 정도는 포기해야 한다. 얼마 전 함께 사는 애묘를 위해 캣타워를 장만했다. 나의 소망은 ‘하나, 원목이며 둘, 높이 150cm이상이고 셋, 지그재그 구조’였다. 조건을 충족하는 제품은 물론 시중에 수두룩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판매금액이 올라갈수록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반대로 가격이 내려갈수록 조잡하고 허술했다. 눈에 들어오는 제품을 이것저것 거침없이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쓸어 담으며 나의 고양이를 생각했다. 이 친구를 위해 얼마까지 지출할 수 있을까. 특가상품이 마침 눈에 띄었다. 최초출고가에서 반타작이 되었건만, 결제버튼을 누르기까지 꽤나 긴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침내 캣타워가 집에 도착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온 가족이 매달려 조립에 성공했다. 모서리는 날카로웠고 고양이가 오르내릴 때마다 진도 3.5 정도의 흔들림이 발생했다. 
그래도 어쨌든 원목이며 150cm이상이었고 지그재그 구조였다. 그리고 역시나 고양이는 올라가지 않았다. 그 대목에서 뜬금없이 궁금해졌다. 미니멀리즘이란 무엇일까. 이 쓸모없어진 캣타워를 내다버리고 고오급진 제품으로다가 12개월 할부를 끼고 냅다 질러버린다면? 나는 충동구매하지 않았으나, 돈이 없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소비를 했다. 대체로 이런 과정을 통해 나라는 맥시멀리스트가 완성되곤 한다. 나는 앞서 말한 형태의 미니멀리즘이 정갈하고 지혜로운 생활철학의 표본처럼 여겨지는 세태가 불만스럽다. 사람들이 간소한 집을 만든다고 집에 있던 물건을 와르르 버리곤 그 자리를 질 좋고 값비싼 것으로 대체하거나 텅 빈 공간을 보며 미소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두가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각자 형편껏 최선의 소비를 했으면 좋겠다. 원목이며 내 키와 비슷한 높이에 지그재그인데다 가격까지 저렴한 새 캣타워는 고양이가 영 적응에 실패해 끝내 올라가지 않으면 우리집 화분받침대로 활용될 예정이다. 씁쓸한 에피소드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추억이다. 애초에 질 좋은 제품을 샀더라면 좋았겠지만, 뭐 어떤가. 
가장 작은 단위의 환경보호운동은 ‘절약’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다. 될 수 있으면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고 재활용에 적극 동참하며 꼭 필요한 물건만 구매하는 소비생활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일상의 모습이다. 그런 모습의 미니멀리즘이라면 적극적으로 동참할 의향이 있다. 그러나 ‘그러게 내가 처음부터 비싸고 좋은 것 사랬지!’라고 으름장을 놓는 미니멀리즘이라면, 글쎄올시다.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아, 물론 내가 품질 좋은 (그리고 비싼) 물건들을 살 여력이 없어서 이러는 건 아니다. 정말로. 진짜.

 


글 황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