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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서 보낸 편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6-19
첨부파일 철도.jpg 조회수 1,331


 

추억을 부르는 기차 여행​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 네 명과 원주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강릉을 넘어간 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풍경을 즐길 수 없었는데 밤기차 안에는 낭만이 가득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던 때였습니다. 그 기차 안에서 의자를 돌려놓고 4명이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며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참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기차는 태백을 지나 도계 인근 스위치 백 구간에서 뒤로 가는 바람에 잠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점점 날이 밝아지면서 동해를 향해 질주하던 기차 안으로 여명이 스며들었습니다.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기차 안에서 바라본 동해의 일출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특별한 여행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우리는 강릉역 인근의 원주해장국 집에 들러 아침을 먹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관에서 ‘볼륨을 높여라’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10여 년 뒤 부산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원주역에서 오전 9시 출발하는 통일호 열차를 탔습니다. 열차는 충청도와 경상도가 걸쳐있는 중앙선·동해남부선을 따라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거의 완행 수준의 열차는 대부분 역에서 정차했고, 함께 있던 사람이 내리고, 새로운 사람이 좌석을 차지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구수한 사투리 억양은 바뀌었고 창밖 풍경은 시시각각 변했습니다. 예쁜 풍경에 빠져 그 긴 시간 통일호에서 보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밤기차보다 낮에 타는 기차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징어와 땅콩, 맥주, 음료수, 삶은 달걀을 실은 끌차가 올 때마다 주전부리를 사들이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죠.
이제, 강릉은 고속열차를 타면 38분 만에 갈 수 있고, 부산도 서울을 거쳐 가면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고장 원주의 철도 역시 많은 변화에 휩싸여 있습니다. 
원주역이 옮겨가고 서원주역사가 들어서고, 기차는 모두 고속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만종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깜빡 잠이라도 들면 어느새 둔내나 진부역에 도착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6월28일은 철도의 날입니다. 한국 최초의 철도국 창설일인 1894년 음력 6월28일을 기념하기 위한 대한민국의 기념일입니다. 우리에게 삼등삼등 완행열차를 타고 동해를 갈 수 있는 추억을 제공하기 시작한 날입니다. 기적을 울리며 어느 작은 역사로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들입니다. 이제는 오래 전 친구들과 밤기차를 탈 일이 거의 없어졌고, 먼 곳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기차를 타고 갈 일도 사라졌습니다. 고속열차를 타거나, 자가용을 이용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여유가 생긴다면 느리게 가는 기차를 타고 예전으로 돌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코로나19 사태에 건강 유의하시고 늘 행복하길 바랍니다.

편집장 원상호

 

 

여는 글
버스보다 기차를 좋아합니다. 도로가 막힐 염려도 없고 여러 차량이 동시에 달리지 않아 덜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달 전에 원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광주광역시를 다녀왔습니다. 광주까지 한 번에 가는 기차가 없어 제천역과 오송역에서 두 번이나 갈아탔지만 창밖 풍경을 보는 재미로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1940년부터 학성동에서 원주의 기차 여행 출, 도착지 역할을 맡아온 원주역이 곧 무실동으로 이전합니다. 새로운 원주역은 99% 공정률을 보이며 오는 6월 완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후 6개월간 시범 운영을 거쳐 12월에 원주시민을 만날 예정입니다. 옛 원주역과 주변 부지는 ‘치악산 바람길숲’과 공원 등의 테마형 관광자원으로 변신해 사람들을 맞이할 계획입니다. 
6월 28일 철도의 날을 맞아 이번 호에서 다룰 주제는 “철도”입니다. 이날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국이 세워진 날입니다. 그러나 2017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서 최초로 기차 운행을 시작한 날짜인 1899년을 9월 18일이 철도의 날이었습니다. 이에 역사학자들은 해당 날짜를 일본 침략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비판했고 2018년 5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현재의 날짜로 철도의 날을 재지정했습니다.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철도 이야기를 비롯하여 원주역 이전 소식을 전합니다. <원주에 사는 즐거움> 창간호와 ‘내가 생각하는 돌봄-커뮤니티 케어 학습’ 수강생 소감문과 ‘무위당학교’ 소개, 원주 내 사회적기업 소식도 담았습니다.
2020년의 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거리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이 변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마스크를 쓰지 않고 초여름 바람을 맡을 날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