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1-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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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학봉정.jpg | 조회수 | 1,356 |
봉황이 앉은 자리 전망 좋은 곳 가끔은 궁금하다. 산에 정말 정기(精氣)라는 게 있을까.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교가마다 앞 다투어 산을 언급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산을 숭상해왔다.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산신을 모시고 서 낭당에 치성을 드렸다. 산을 통째로 깎아 길과 터를 닦는 광경을 목격할 때마다 문득 두려워진다. 이제 저 산의 정기는 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 원주에는 예로부터 봉황을 닮았다고 전해지는 작은 산이 하나 있다. 봉산(鳳山)이다. 높이는 해발 184m 로 아담하지만 기운은 예사롭지 않다. 봉산의 끝봉을 봉산미(鳳山尾)라 한다. 어찌나 기운이 영험한지 일제는 봉산미 부근에 쇠말뚝을 박아 혈을 끊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후 1939년에 손창관이라는 어르신 이 일제에 항거하고자 봉산미에 학봉정(鶴鳳亭)을 지었다. 학봉정은 원주지역 독립운동사에 있어 상징 적인 장소다. 묵객모임인 설미회(雪眉會)는 이곳에서 시를 읊고 독립투쟁을 논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 긴 일본 경찰이 학봉정을 폐쇄하고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학봉정으로 향하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대로변에 있는데, ‘신한차바닥’이라는 다소 묘한 간판을 달 고 있는 가게 길 건너편에 위치한 계단이다. 꽤나 가파르기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거나 무릎이 좋지 않 은 이에게는 권하지 않는다. 또 다른 진입로는 ‘모란수퍼’를 끼고 관불사 방향 골목으로 진입해 언덕길 을 오르다보면 좌측으로 나타나는 데크길이다. 대로변 입구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원래 학봉정은 지금보다 약 200m 위에 한옥건물로 지어졌으나 안타깝게도 6·25전쟁 때 완전히 소실 되었다. 이후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1991년에 원주시가 다시 현재의 누각 형태로 복원했다. 전면 중 앙의 현판은 최규하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학봉정 인근에는 오래된 활터가 눈에 띈다. 1957년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다. 1983년 명륜동 종합운동장 인근으로 활터가 이전하면서 원주에는 ‘학봉정’이라는 명칭을 쓰는 장소 가 두 군데가 되었다. 학봉정에 오르면 처음엔 잠시 실망할지 모른다. 특히 여름철엔 사람 키만 한 잡초 들이 무성하게 자란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어딜 봐도 번듯한 느낌은 없다. 언뜻 흔하디 흔한 동네 공터 처럼 보인다. 인내심을 조금 더 발휘해 누각 위로 올라가보자. 여기서부터 학봉정의 진면목이 발휘된다. 사방이 탁 트인 구조로, 특히 현판을 기준으로 왼쪽 편에는 봉산동 일대와 멀리 혁신도시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몰 때를 골라 학봉정에 오르면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다만 인적이 드문 장 소이므로 동행과 함께 가는 것이 좋겠다. 사진·글 황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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