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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에세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7-22
첨부파일 ‘빠르게_차오르고_나아가는’_분위기에서_벗어나기.jpg 조회수 1,567

‘빠르게 차오르고 나아가는’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나는 오랜만에 다시 간 유럽여행에 들 떴고 함께 삶을 맞춰갈 사람과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기에 바빴다. 이것은 앞서 간 이들의 발자국만 봐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그렇지 않다. 새학기가 사 라졌고 학교가 텅 비었다. 거리에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기 시작했다. 외출이 줄고 집에 있 는 시간이 늘었다. 온라인에 넘쳐나는 실시간 해외여행 콘텐츠는 ‘#그립다’ ‘#가고싶다’ 같 은 류의 해시태그와 함께 모두 과거가 되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는 각종 입장 차로 어림도 없던 각종 국가 지원금이 풀리기 시작했다. ‘국민’으로 불리던 사람들은 ‘전 세계 사람들’이 되어 ‘국가’에서 ‘지구’로 소속 공간을 넓혔다. 이제 코로나19는 그들의 문제에서 우 리의 문제가 되었다. 

지난 1월에 유럽 여행을 했을 때만 해도 일부 국가의 문제로 끝날 줄 알았다. 당시 유럽은 코 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이라 위기나 다급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매년마다 돌 아오는 추운 겨울이자 여행 비수기였다. 아시아에서 온 나에게 그들은 거의 친절했다. 그런 친절을 얻은 이유는, 아시아 출신보다 유럽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소비자로 먼저 비쳐 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소비자를 벗기자 국가와 인종이 드러났고,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투명한 방식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고 구분했고 혐오했다. 순식간에 개인은 증발하고 집단만 남았다. 그리고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불러일으 켰다. 혐오 대상은 직업과 종교, 성별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남긴 건 제약이 많아진 일상과 혐오만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지금, 여기, 나”를 자각시켰다. 매년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반짝하던 연도는 코로나19의 확산 시간에 밀렸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갈 수 있던 다른 나라 방문은 공항 폐쇄와 함께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에 의미가 달라지자, 나(자아)를 맞닥뜨리는 시간이 잦아졌다. 항 상 ‘빠르게 차오르고 나아가는’ 사회에서 잠시 멈춤 것이다. 집에 머물며, 집밖에서 매초마 다 쏟아지는 자극과 정보에서 멀어지는 기회를 얻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대전환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나날이 인류가 발전해도 결국 자 연을 꺾을 수 없다. 코로나19가 2020년을 휩쓸며, 인간에게 남기는 메시지이다.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