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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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포맷변환]1552611445ef00c44c503d95354291171cb4c0653c.jpg | 조회수 | 3,620 |
학성동 이야기 ![]() 원주시 학성동은 원주지역의 쇠락해가는 원도심 중 하나다. 과거에는 원주역과 법원·검찰청, 중앙초등학교, 학성중학교, 역전시장 등의 활성화로 크게 번성했던 곳이다. 신도심이 생기면서 기관들도 하나둘 떠나고, 떠날 계획을 세우면서 학성동은 활력을 잃었다.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지켜볼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3월 원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가 학성동에 들어서고 도시재생에 대한 주민들의 의지도 커지면서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희망을 꿈꾸게 됐다. 한때 학성동의 랜드마크였던 역전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들이 꿈꾸는 역전시장과 학성동의 부활은 가능할까. 40계단 끝에서 본 희망 누군가는 이곳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쟁터에 나가기 전, 죽음의 공포를 잠시 잊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언제부터 40계단이라고 불렸는지 정확하지 않다. 원주시 학성동 원주역 인근 40계단은 ‘사창가’ ‘윤락가’ ‘홍등가’ ‘매음굴’ 의 또 다른 속어로 불리며 반세기 넘게 자리를 지켰다. 6·25 전쟁이 터지면서 38선 이북의 피란민들이 몰려들었고 아버지나 남편을 잃은 여인들은 생존을 위해 이곳에서 군인들을 대상으로 성을 팔았다. 엉성하게 엮은 판잣집이 언덕 위 곳곳에 생겨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여인숙 등으로 변했다. 판잣집이 사라지고 여인숙 등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성매매 영업도 시작됐다. 그래도 인근 역전시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4~5개의 구멍가게에는 끊임없이 손님이 찾았고,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군인들로 넘쳐났다. 덩달아 시장 통닭집이며 구멍가게의 매출도 쑥쑥 올라갔다. 돈 버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르고 신바람 나던 상인들이었다. 매년 봄·가을이면 역전시장 번영회가 천렵을 하러 갈 정도로 상인들끼리의 단합도 남달랐다. 장날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닌데 시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 역전시장 내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던 정운암(63) 학성동 6통장은 역전시장이 본격적인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을 인근 통일아파트 이전과 중앙시장 활성화로 기억한다. 통일아파트가 있을 당시만 해도 아파트 주민들이 역전시장에서 반찬이며 식품 등을 대부분 사들였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등장도 시장의 쇠락을 재촉했다. 정 통장은 “역전시장이 잘 나갈 때는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좌판도 많았고 사람도 많았어요. 작은 가게를 하면서 자식 셋을 낳아 모두 잘 키웠으니 얼마나 장사가 잘됐겠어요. 지금 같아서는 어림없는 소리죠. 역전시장에 남아있는 가게도 이제는 얼마 안 돼요.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단골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과 검찰이 무실동으로 이전을 하면서 학성동 일대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빈 상가가 속출했던 것이다. 법원·검찰이 있을 당시만 해도 빈 상가는커녕 사무실을 구하지 못해 안달이 날 정도였다. 지금은 임대를 놓은 빈 상가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언제 주인을 만날지 알 수 없다. 매매가 끊긴지도 오래다. 설상가상 2018년 말 원주역이 폐쇄되면 학성동은 더욱 난처한 처지가 될 것이 눈에 선하다. 정 통장을 비롯해 지역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간절하게 원하는 이유다. “원주역마저 없어지면 학성동 일대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될 겁니다. 도시재생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원주역에 대규모 공원이 들어온다고 해도 학성동이 발전한다고 보장할 수 없어요. 마을을 살리고,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도시재생을 통해 조금씩 바꿔나가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아요.” 정 통장은 40계단과 정상부의 아름다운 경관도 최대한 살릴 방안을 찾으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40계단을 올라 정상부에서 바라보는 원주시 내 풍경이 정말 일품입니다. 관리만 제대로 되고 사람이 들어서면 최고의 경관인데 아무도 이곳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으니 그것이 가장 큰 걱정이고 문제죠. 지금은 일부에서 성매매 영업을 하고 모두 빈집으로 남아있어요. 빈집으로 남아있다 보니 노숙자들이 겨울에 이곳에 불을 피워놓고 몸을 녹이다 화재가 일어나기도 해요. 또 고물로 팔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뜯어가는 바람에 정말 완전한 폐허가 되어 버렸죠. 이곳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싶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 역전시장의 새로운 도약 역전시장에서 2대째 식품점을 운영하는 신관섭(66) 씨는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를 이어받아 어느덧 60여 년째 주민들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다. 아픔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신 씨는 오른쪽 팔을 15살 되던 해 잃었기 때문이다. 어깨에 아이스크림 통을 메고 장사를 하던 중 철로를 건너다 사고를 당한 것이다. “어린 시절 일이라 벌써 까마득해요. 그래도 결혼해서 1남 1녀를 두고 잘 살아왔어요. 지금도 이곳에서 장사를 하니까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지요. 한때는 역전시장에서 돈 버는 재미도 톡톡하게 봤습니다. 몸 생각하지 않고 돈 버는 일에 일생을 걸었지요. 지금은 인적도 끊기고 장사도 잘 안되지만 여전히 단골이 있어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는 셈이죠.” 신 씨는 도시재생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이 들어와야 시장 활성화도 되고 예전처럼 활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루 종일 있어도 아이들 보기가 힘들다. 그만큼 젊은 사람들이 없다는 것인데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학성동은 원주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원주의 교통요충지라고 할 정도예요. 큰 병원도 있고 중앙시장도 가깝고 시외·고속버스터미널도 인근이고, 만종역과 앞으로 생길 남원주역도 크게 멀지 않은 곳이니까요. 정말 살기 좋은 곳이 될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도시재생을 통해 조금씩 바꿔나가야 합니다. 일부 주민이 처음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도시재생에 찬성하고 있어요. 마을이 살아나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시급한 것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입니다.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정운암 통장과 함께 40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따라 벽화가 살아있는 듯 반긴다. 곳곳에 낡은 여인숙 간판과 성매매를 위해 설치됐었던 유리방도 눈에 들어왔다. 폐허가 된 집들과 폭탄을 맞은 듯한 집들도 여럿이다. 정 통장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이런데 어떻게 도시재생을 안할 수 있겠어요. 재생을 통해 이곳에도 사람들이 넘쳐나고, 인심 좋은 곳으로 다시 태어나야하지 않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