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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 이야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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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터무니’ 없는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요즘 전국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이 한창입니다. 뉴딜사업이라는 명칭까지 붙은 도시재생사업은 기존의 낡은 주택을 한꺼번에 부수고 새로 짓는 재개발 방식이 아니라, 마을의 역사와 문화, 유산을 보존하면서 주민들의 생활양식에 맞게 공간을 개보수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시재생사업은 지역주민의 요구나 필요보다 관주도하에 재개발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지난 8월 17일 한살림 초대 회장을 지내신 인농 박재일 선생 8주기 이야기 마당에서 ‘땅에 새겨진 무늬, 지문(地文)’을 주제로 말씀해주신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의 강연은 난개발로 신음하는 우리 도시의 문제점과 지속가능한 도시와 마을은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강연 내용을 정리해 지면에 담았습니다.


땅에 쓰는 글자 ‘지문(地文)’

오늘 강연 제목을 ‘지문(地文)’이라고 했습니다. 사전엔 없는 제가 만든 말입니다. 땅 ‘지(地)’자에다 글월 ‘문(文)’으로 ‘땅에 쓰는 글자’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영어로는 ‘Land script’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도 제가 만들었습니다. ‘지문(地文)’을 제가 만들었노라고 여기저기 알리고 다녔는데,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지문이라는 말을 조선 초의 정도전이 먼저 썼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정도전이 땅에는 ‘천문(天文)’도 있고 ‘인문(人文)’도 있고 ‘지문(地文)’도 있다는 말을 했다는 거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머쓱해졌습니다. 속으로 ‘정도전을 당할 수는 없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웃음)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땅 위에 정주함으로써 존재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시인이 시어(詩語)를 통해 시의 세계를 구축해가듯이 인간은 땅에 정주해 자기 주변을 구축하며 살아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철학을 ‘땅의 철학’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독일의 함부르크 밑에 하르부르크(Harburg)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에 1986년에 홀로코스트 기념탑이 세워졌습니다.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탑입니다. 유태계 독일조각가 요헨 게르츠가 현상 공모에 당선돼 세운 것입니다.

사방 1m 높이 12m의 단순한 형태로 설계된 이 탑은 놀랍게도 매년 2m씩 땅속으로 침하되어 사라지게 돼있었습니다. 시장으로 가는 번잡한 곳에 세워진 이 탑 옆에는 작은 게시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나치시대에 당했던 기억들을 탑의 표면에 써줄 것을 시민들에게 당부하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지나는 시민들은 파시즘으로부터 받았던 박해와 고통을 낙서로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슬픈 기억들이 그 투박한 탑 위에 새겨지면서 탑의 표면은 분노, 슬픔, 고통의 글들로 뒤덮였습니다. 그 고통들이 그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땅속으로 파묻히는 듯, 탑은 매년 2m씩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 1993년에 땅 위에서 완벽하게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탑이 서 있었던 자리에 자국만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사라지는 기념탑’입니다. 이 탑을 설계한 작가는 “인공적인 구조물이 우리의 기억을 대신할 수 없다. 불의에 대항하는 것은 탑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인공의 구조물은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으며, 영원한 것은 우리가 거기에 함께 있었다는것, 그 기억만이 진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건축이 생명을 다한 후에 남기는 땅에 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설계한 건축가입니다. 노무현은 자기 삶을 경계 밖으로 쫓아낸 사람입니다. 대통령답지 않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 분이 돌아갔을 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슬퍼한 까닭은 적어도 가치관에서는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임에도 죽어서 현충원에 묻히기 싫다고 말했습니다. 원래는 사저 뒤쪽에 묘역을 만들기로 했는데, 이곳이 묘역으로 마땅치않아 보여서 가족을 설득해 평지에 있는 지금의 묘역을 설계했습니다. 종묘의 월대가 노무현 묘역의 본보기였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공간으로 비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죽은 자를 만납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소멸됩니다. 특히 화장을 했을때는 육체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죠. 사람이 죽으면 영(靈)은 이미 구천이나 천당으로 가고 없고, 묘역의 존재는 남아 있는 자가 죽은 자를 모티브로 해서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의 묘역은 우리를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묘역 전체를 종묘의 바닥처럼 생각해서 추모의 글을 바닥에 새기자고 했습니다. 1주기 때 완공했는데 백만명이 찾아왔습니다. 지금도 묘역에 와서 참배만 하고 돌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묘역 곳곳을 둘러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다가 돌아갑니다. 바닥에 있는 글귀를 읽는 사람들도 많지만 뭔가 자기를 성찰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묘역이 노무현을 위한 묘역이 아니라 찾아오는 자가 자기를 성찰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이란 제목으로 책까지 냈습니다.

서울시 달동네 한 곳의 재개발하고 책임을 맡고 있는데, 노원구 상계동 백사마을이라는 달동네입니다. 오세훈 전 시장이 달동네를 몽땅 허물고 아파트를 짓겠다고 발표했을 때 제가 사정을 해서 많은 부분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설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백사마을은 60년대 청계천과 왕십리에서 강제 추방된 사람들이 들어와서 도시 빈민촌을 형성해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네입니다. 집 자체는 굉장히 남루하지만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의 모습, 함께 사는 공동체의 모습은 지극히 아름답습니다.

유네스코나 세계적 권위 있는 기관에서 역사마을 조성을 권고할 때 4가지를 보존하라고 권고합니다. 첫째는 ‘지형’을 보존하고, 둘째는 사람이 산 역사인 ‘필지’를 보존하고, 세 번째는 공동체의 삶을 알 수 있는 ‘길’을 보존하고, 마지막으로 ‘생활방식’을 보존하라고 합니다. 이 네 가지를 보존하면 그 마을의 역사가 오롯이 보존된다는 거죠. 이 원칙에 따라 백사마을의 좁고 가파르고 험한 길을 그대로 보존하기로 원칙을 세웠습니다. 길을 포장하는 재료는 다를 수 있겠지만 원래 길의 모습은 그대로 보존됩니다. 길이 보존되면 공동체 삶의 모습이 보존될 수 있습니다. 보통 재개발하면 모든 삶의 터를 일거에 지워버리고, 한꺼번에 축대를 쌓아서 필지를 만들어 개발하는 것이 상례인데, 백사마을은 과거에 삽이나 일차적인 장비로 만든 터를 보존하면 집의 형태는 바뀌더라도 마을 본래의 풍경은 보존될 수 있습니다.

생활 방법을 보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재개발로 주민들이 쫓겨나는 이유는 임대료를 못 내거나 생소한 환경 때문입니다. 집의 면적을 작게 만들면 임대료가 적어집니다. 한 집에 부엌과 화장실, 욕실, 식당을 전부 갖출 필요가 없습니다. 잠을 자는 방만 있어도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머지는 공동으로 이웃과 함께 쓰면 되는, 즉 공유적 마을로 만들면 임대료가 낮아져 원주민이 다른곳으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런 점에 착안해 백사마을을 공유적 마을로 만들기로 구상했습니다.

12명의 건축가와 함께 작업하여 지금은 전체 설계가 거의 끝난 상태입니다. 집은 똑같은 아파트의 볼륨이지만, 원래 마을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특히 길들이 원래대로 보존되기 때문에 길에 깃들어 있는 사연이나 추억들이 보존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마을이 완성되면 고층의 아파트에서 박제화된 삶을 살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건축이란 무엇일까요?

건축(建築)이란 말은 일본 사람들이 명치시대 때 조가(造家)라는 말을 쓰다가 바꾸어 쓴 말입니다. 영어로는 아키텍처(architecture) 라고 씁니다. 어원은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것인데 으뜸이 되는 기술, 으뜸 학문을 뜻합니다. 아키텍처 앞에 정관사 the를 붙여 the Architecture라고 쓰면 ‘조물주’가 됩니다. 서양에서는 건축가를 대단히 위대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건축을 뜻하는 세상의 다양한 말 중에서 우리말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로 건축은 ‘짓는다’입니다. ‘짓다’는 시를 짓거나 밥을 짓거나 농사를 짓거나 옷을 지을 때 두루두루 통용되는 말입니다. 어떤 재료를 갖고 어떤 이가 사상과 이념을 집어넣어 자신의 솜씨를 통해 전혀 다른 물체로 창조하는 행위가 짓는 행위입니다. 건축은 사유과정을 거친 창조적 결과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국회의사당이 폭격으로 무너졌을 때 폐허 위에서 의사당을 새로 건립할 것을 약속하면서 한 말입니다. 저는이 말이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정확하게 설명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독재자들은 건축은 이용해서 민심을 호도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그랬고, 로마의 황제들이 그랬습니다. 건축을 가장 잘 이용했던 독재자는 히틀러입니다. 히틀러는 권좌에 오르자마자 알베르트 슈페어라는 건축가를 측근으로 임명해 자신을 신격화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히틀러가 구상한 회심의 작품이 베를린 전체를 개조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건축을 모방해 제3제국을 건설하려고 계획한 것인데요, 히틀러가 구상한 건물들이 실제로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히틀러의 최종 목표는 인민대궁전이라고 불리는 의사당인데 1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건물의 높이가 무려 330미터, 둘레가 270미터, 구조물 상단에 돔을 만들어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있다”는 의미를 주고 이 세계를 지탱하는 평준화된 민중들을 표현한 건축물로 설계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건축은 실현되지 못하고 기록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이 건축이 부분적으로 실현된 것이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입니다.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졌는데 원래는 오피스 빌딩 같은 7층짜리 사각형 빌딩으로 설계되었습니다. 4명의 건축가들이 설계했는데 지금은 이들 중 누구도 자신이 설계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외벽 앞의 열주는 건축물과 하등의 관련이 없는 기둥입니다.

건물을 지탱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장식용으로 서 있을 뿐입니다. 열주만 서 있으니 건물의 모습이 애매하니까 지붕 위에 돔을 씌운 것입니다. 돔의 효과는 굉장히 중요한데,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의 돔은아무 기능도 하지 못합니다. 진정성이 전혀 없는 건축물입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생각하면 이런 진정성 없는 건축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는 걸 믿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린 겁니다. 건축을 도구로만 사용하면 안 됩니다. 인간 스스로가 건축을 자기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반으로 삼아야 합니다. 건축에서 모든 걸 결정해놓으면 안되고, 기본적인 조건만 갖추고 살면서 바꿔 나가는 거죠. 그것을 ‘비움’이라고 하는 겁니다. 건축가가 모든 것을 결정해놓지 말고 비워서 거주하는 사람의 의지에 맡기자고 하는 게 제가 주장하는 건축입니다. 이것을 저는 ‘빈자의 미학’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히틀러가 구상한 인민대궁전(좌)과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도시란 무엇일까요? 도시는 농촌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농촌은 혈연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체라서 법이 없어도 천륜과 인륜으로 충분히 운영이 됩니다. 도시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구하기 위해 모여 사는 곳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합니다. 이 법이 공간적으로 잘 조직화된 장소가 공공영역입니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 가도 있는 광장이 공공의 영역입니다. 공공영역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가를 보면 그 도시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도시를 만드는 방법이 비교적 간단했지만, 오늘날에는 도시를 잘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권력자가 자기가 구상하고 있는 대로 만들라고 명령하면 됐지만, 요즘은 합의에 도달하기까지가 너무 힘들어 신도시를 만들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도시는 만 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도시적 기능을 최초로 갖춘 도시는 메소포타미아에 있었던 ‘우루크’라는 도시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이기도 한데 무려 6500년 전의 도시입니다. 이곳에는 신전도 있고, 주거지도 있고, 성벽도 있습니다. 주거지역은 밀집돼 있고, 도로도 있고 골목길도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집들은 이층으로 된 큰 저택도 있고, 작은 집도 함께 모여 있습니다. 이것은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높은 자와 낮은 자들이 한데 모여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500년 전에 계급의 구분 없이 한데 모여 살았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고대 도시의 흔적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는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양의 계획도시들은 전부 평지에 세워졌습니다. 땅을 보지 않고 인간의 뇌리에서 기하학적으로 구상하면서 설계한 도시는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있는 곳에 도시를 만들 수 없고, 오직 평지에만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산이 70퍼센트인 우리의 땅에 지은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도시입니다. 평지의 기하학적 도시는 근대에 들어와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산업혁명 이후에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면서 중심부에 Mother City, 즉 현대의 메트로폴리스가 있고, 주변부에 Satellite City(위성도시)들이 생겨나면서 도시가 팽창하게 되었습니다. 주변부로 끊임없이 팽창하는 것이 근대도시의 유형입니다.

이것은 1968년에 르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가 파리를 개조하기 위해서 만든 그림입니다. 그 당시 파리의 도시를 상상하면 이것은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무렵 도시 상황이 굉장히 열약해서 파리의 오염이 너무 심했습니다. 르코르뷔지에는 건물을 다 허물고 고층건물을 지어서 건물과 건물 사이에 햇빛이 들게 하고 녹지시설을 만들어 야외에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도록 도시를 설계했습니다. 획기적이고 놀라운 발상이었습니다.

르꼬르뷔지에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던 파리의 도로망을 싹 지우고 60층짜리 아파트를 지어서 파리를 개조시키자고 제안했습니다. 물론 실현되진 않고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만, 르코르뷔지에의 도시계획은 이후 서양에 지어지는 모든 도시의 텍스트가 됩니다. 이때부터 지도에는 색깔이 칠해지는데 빨간색은 상업지역, 노란색은 주거지역, 보라색은 공업지역이 되어서 색이 칠해지는 순간 땅값에 차이가 났습니다. 땅의 계급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도로도 철저하게 서열화 시켰습니다. 이때는 모더니즘의 시기였는데, 땅을 계급화 시켜 분류하는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수

없이 많은 도시들이 만들어졌습니다.

1957년에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3천 세대의 아파트가 세워졌습니다. 철저하게 르코르뷔지에의 이론을 따른 건축물이었습니다. 미래 세대를위한 완벽한 이상 도시라는 칭송을 얻었습니다. 11층짜리 서른세 개의 건물이었는데 모더니즘 이론에 따라서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을 분리하고, 큰집과 작은 집으로 나누고, 밥 먹는 공간, 일 하는 공간, 노는 공간을 철저하게 분리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이란 미묘해서 이런 공간 분류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러다보니 주민들끼리 갈등이 생겨 싸움이 일어나고 결국 살인까지 벌어지고, 나중에는 범죄소굴로 변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두 대밖에 남지 않게 되자 시 당국은 27년 만에 다이너마이트로 전체 건물을 폭파시켰습니다. 이를 본 찰스 젠크스라는 사회학자는 모더니즘이 종말을 고한 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이 마스터플랜은 서양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970년대 초에 한국의 수많은 도시들이 이 마스터플랜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산을 허물고, 계곡의 물길을 끊고, 땅은 붉은색, 노란색, 녹색으로 표시돼서 토지가 이용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구획되었습니다. 당연히 갈등과 분열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사회에 왜 이렇게 갈등이 깊을까. 저는 우리가 잘못 만들어놓은 도시 공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시대에 사는 우리의 건축과 도시는 획일적인 구조에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진은 모로코의 마라케시라는 도시의 사진입니다. 이곳에는 대로도 중로도 소로도 없습니다. 중앙광장, 중앙 숲 등 봉건주의 잔재를 보여주는 공간들이 없습니다. 상업지역, 공업지역 이런 구분도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평등한 구조로 된 건물들이 벌집처럼 붙어있습니다.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열 채 정도의 집들이 모여 하나의 질서를 갖추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빵집 하나, 우물 하나 등 생존에 필요한 최소의 공동시설을 갖추면서 모여 있는, 그 자체가 최소단위의 도시입니다. 이 최소한의 공동체가 중첩되어 형성된 마라케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평등한 도시입니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민주주의 시대의 도시는 모두에게 평등한 도시이며 한 부분을 앎으로써 전체를 알 수 있는 도시다’라고 했는데 마라케시가 그런 도시입니다. 한 부분만 이해하면 전체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부분이 전체와 맘먹는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회, 한 개인이 전부와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는 사회가 민주적 사회입니다. 1200년 전에 만들어진 평등한 이 도시는 지금도 1200년의 무늬가 도시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몸을 움츠려야 갈 수 있는 좁은 길이지만 집안은 아주 밝습니다. 집에서 인터넷, 위성 텔레비전 모두 가능합니다. 길이 이어지는 곳에 시장이 있고, 더 큰 건물은 공장이 되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도시

가 얼마나 지속가능한 도시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도시가 앞으로도 1000년 이상은 너끈히 지속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삶의 터에 지문(地文)이 남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하여

지속가능한 도시는 건물에 녹색 페인트를 칠한다고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이 지속가능하게 변해야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 싫어서 재개발의 대상으로 삼았던 달동네, 우리의 달동네는 평지가 아닌 경사지에 지어져 있어 공간구조가 매우 다이내믹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이고, 다들 어렵게 사니까 많은 것을 나누며 사는 공간입니다. 달동네에 있는 길들은 통행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서로 나누고 서로 돌보는 공간입니다.

오래돼서 위험하고 부실해 재개발이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만, 이런 공간의 개념을 유지하면서 재개발을 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라고 말하는 산토리니 못지않은 지역이 될 수 있습니다.

산토리니는 관광지로 변했기 때문에 진정성이 없는 동네가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달동네는 여전히 진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달동네를 전부 허물고 고층 아파트로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건축이 아니라 범죄입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서울은 세계 6위의 경쟁력을 가진 도시입니다. 전쟁의 폐허에서 이룩한 서울,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삶의 질을 따진다면 79위에 불과합니다. 이런 불균형한 삶이 어디서 벌어진 것일까. 삶의 질이 형편없는 현실은 잘못된 도시계획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도시를 본떠서 산을 깎고 계곡을 막아 확장하고 팽창해서 메트로폴리스로 만들려는 욕망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집을 지을 때 산세를 거슬리지 않고 지었으며, 집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마을이 커지면 도시가 형성되는 구조였습니다. 땅에 삶의 무늬가 새겨지는 구조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지문(地文)이라고 표현합니다. ‘터무니없다’는 말 아시죠. 터에 새겨진 무늬를 ‘터무늬’라고 합니다. ‘터무늬’를 한자로 바꾸면 지문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우리의 존재가 터(땅)와 관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터무늬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터에 새겨진 무늬들을 깡그리 지우고 고층으로 짓는 아파트는 터무니없는 집이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집에 산다고 말할 수있습니다. 모든 땅은 자기가 어떤 건축물을 갖고 싶은지 알고 있습니다. 건축물을 지을 때 땅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어줘야 합니다. 이래야 지문이 남고 ‘터무늬’가 있는 건축을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건축과 도시는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도시를 만든 자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제아무리 튼튼하게 지었다고 해도 중력에 의해 없어지기도 하고, 경제적 이유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폭력에 의해 무너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도시 안에서 함께 살았다는 기억과 진실이 땅에 무늬로 남아서 영원히 전해질 수 있도록 가꾸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상기하면서 우리가 어떤 건축을 지어야 하고, 어떤 도시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계간 무위당사람들 65호에 실려 있습니다.




강연 승효상 건축가 국건축정책위원장 정리 무위당사람들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