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3-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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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포맷변환]1552964024b89745c598b6b5e2095718c676241836.jpg | 조회수 | 3,393 |
역사와 전통을 계속 지켜나가도록 애써야죠
강영구 매지농악보존회 관장 인터뷰 ![]() 회촌 달맞이축제는 1993년 명산인 치악산과 백운산 자락의 전형적인 농촌 산간마을인 원주시 흥업면 매지 3리 회촌 마을에서 마을 단위 축제로 시작됐다. 이 축제는 고즈넉한 주변 경관에다 강원도 토속음악의 특징인 메나리조를 그대로 간직한 원주매지농악과 어울려 순식간에 방문객 2,000여 명이 넘는 지역의 대표 달맞이축제로 자리 잡았다. 세시풍속의 전통을 계승하고 원주시민의 무사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열려온 축제는 해마다 소원지쓰기, 망우리돌리기, 제기차기, 매지농악공연, 달집태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돼 인기를 끌었다. 2017년부터는 원주시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달맞이축제를 운영한다. 강영구(49) 매지농악전수관 관장을 만나 어려움과 바람 등을 들어봤다. 원주매지농악전수관 사무실로 들어서자 강영구 관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곳 회촌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13살부터 농악대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농악과 인연을 맺었다. 아니, 인연은 이미 할아버지 때부터였다. 할아버지도 농악을, 아버지도 평생을 농악과 함께 해온 분이니 농악과의 인연은 아주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의 아버지는 매지 농악을 부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주매지농악보존회 회장이면서 강원도무형문화재 제18호 기능보유자이기도 하다. 그의 할아버지 고 강주옥 선생은 새납(태평소)을 불며 마을 농악대를 이끌었다. 원주매지농악은 1980년 이후 각종 경연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영서 지역을 대표하는 농악으로 이름을 떨쳤다. 1994년부터는 원주매지농악보존회가 설립돼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도 매지 농악 전승과 보존에 힘쓰고 있다. 매지농악보존회가 중심이 돼 회촌마을 대동계와 함께 매년 이어져 오고 있는 회촌 달맞이축제도 우리의 세시풍속을 이어가려는 노력이다. “매년 요일을 따지지 않고 정확히 정월대보름날에 맞춰 달맞이축제를 하고 있어요. 2017년부터는 예산과 인력 문제 등으로 원주시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축제를 하는데 참가 인원은 늘지도, 줄지도 않고 거의 비슷합니다.” 그는 지역마다 축제의 특징이나 성격을 보지 않고 일괄적으로 예산을 지원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토로했다. “원주시에서 예산을 지원받다 보니 전기부터 소방, 가스, 보건, 주차 등 강화되는 각종 안전기준도 부담이었어요. 여기에 원주시에서 지원하는 예산 1,000만 원도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거든요. 달맞이축제가 입소문이 나고 지역축제로 성장하는 것 까지는 좋은 데 마을 분들이 점점 고령화되면서 일할 수 있는 인력까지 부족해지니 더 이상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2017년 원주시에 달맞이 축제를 취소하겠다고 통보했어요. 그 뒤로 자체적으로 축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회촌 달맞이 축제에 대한 바람은 무엇일까. “축제 규모에 걸맞게 예산문제와 행사 주체, 분야별 역할 분담, 비좁은 행사 장소 문제 등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행사운영과 축제기획을 분리해 효율적으로 축제를 치를 수 있는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서비스도 개선하고 주차난 해소를 위해 셔틀을 운영한다든지 운영의 묘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회촌은 작은 마을이지만 회촌 달맞이 축제가 원주시의 전통 대표축제로 가려면 적절한 예산 등을 통해 지역의 특성화 된 축제로 가꿔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글 원상호 사진 원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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