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3-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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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스토리_메인1.jpg | 조회수 | 3,427 | |
개인보다
마을 공동체를 위한 명절
대보름의 대표적인 행사인 동제(洞祭)는 지금까지도 대보름날을 주로 해서 여신지모신앙(女神地母信仰)을 주류로 하는 고형(古型)의 전통을 지속시켜 왔다. 동제를 지내는 시간을 물으면 노인들은 흔히 자정(子正)이라 했고, 또는 보름달이 중천(中天)했을 때라고 했다. 이러한 대보름의 상징적인 장면은 분명하게 역법이 생기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유구하게 지켜진 우리의 일관된 역사라고 말할 수가 있다. 달맞이, 달집태우기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고, 우리나라와 같은 농본국(農本國)에서 농사가 발달하면서 차차 줄다리기 같은 점풍(占風)놀이들도 여기 따라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대보름 풍속은 더구나 고대 기록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 성격상 충분히 고대부터 있어 왔다고 말할 수있다. 정월대보름에는 많은 의례들이 행해지고 있다. 보통 설에 개인적인 의례들이 행해진다면 대보름에는 마을 공동의 의례들이 행해진다. 마을공동 제의는 지역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달리 나타난다. 동제는 한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지연적인 화합을 다지는 민속의 중요한 핵심이다. 제당의 이름은 산제당·산신당(경기·충청)·서낭당(강원)·당산(전라·경상)·본향당·포제단(제주도) 등의 지역적 차가 많으나 근원은 다 같은 것이다. 제명은 동제·당제들이 일반적이다. 동제에는 선출된 제관이 축문을 읽는 유교적 정숙형이 제일 많고, 여기에 몇 년 걸이로 무당굿이 따르는 것을 동해안 지역에서는 흔히 별신굿이라고 한다. 그러나 별신굿이라도 하회별신굿은 가면극의 비중이 크고, 은산별신제는 지역과 성격이 또 다르다. 동해안 노무들은 현재 별신굿이라는 것은 ‘어촌의 서낭굿’이고, 풍어제이며 별신굿이란 시장이 경기부양책으로 난장굿과 난장판을 곁들이는 시장굿이 원래 별신굿이라고들 했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 조사도 『석전·기우·안택』의 시장제 기록에서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상원조(上元條)에 “소경을 불러다가 보름날 전부터 안택경을 읽으며 밤을 세운다. 액을 막고 복을 비는 까닭이다.”고 했다. 근래는 소경 경장(經匠)이 없기 때문에 서울·경기지방에서는 주부가 단골 무당집에 가기도 하고, 집으로 불러서 횡수(橫數)막이라는 간단한 굿을 하기도 한다. 정초부터 대보름 전후에 동네 농악대가 집집을 돌며 즐겁게 놀고 축원해 주는 것을 지신밟기(전국)·매구(埋鬼, 호남)·걸립(乞粒, 중부) 등으로 다양하게 불러왔다. 그러나 평안도·함경도 등 북쪽에는 농악대들이 없었으니 지신밟기도 없었다. 주로 대보름에 마을의 상징인 농기(農旗)와 농악대들이 모여서 그 서열에 따라 인사를 하는 의식이 기세배이다. 전북에서 많이 전승되는데 이때 각 마을의 농악대들이 서로 연주를 뽐내는 농악 경연도 벌어진다. 서열이 불분명해서 서로 먼저 인사하라고 실랑이가 벌어져서 기싸움이 되는 수도 있다. 기싸움은 상대 농기 위의 꿩깃을 빼앗으면 이기는 곳(전북 김제)도 있고, 서로 부딪쳐서 먼저 부러뜨리면 이기는 곳(전북 남 원·경남 영산)도 있다. 지금도 열 나흗날 밤에 부인들이 붕어나 자라를 사서 강에 놓아 주고 소지(燒紙) 축원을 올리는 일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이것을 방생(放生)이라고 한다. 3월 삼짇날, 8월 보름에도 한다. 또『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는 “깨끗한 종이에 흰 밥을 싸서 물에 던지는 것을 어부슴(魚鳧施)이라 한다.”고 했다. 글자 뜻으로는 물고기나 오리에게 베푼다는 것인데, 대보름에 액막이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동국세시기』 정월 상자일조(上子日條)에 “충청도 풍속에 떼를 지어 횃불을 사르는데 이를 쥐불이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정월대보름 또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많이 한다. 이렇게 하면 논두렁의 잡초와 병충을 없애고, 재가 거름도 되고, 논두렁이 여물어지고 농사가 잘된다고도 한다. 전남 어촌에서는 정월 열나흗날에 풍어를 비는 깃발을 배에 단다. 이것을 “봉기(奉旗)단다.”고한다. 봉기는 대여섯 발 길이로 각색 물감을 들였고 장대나 또는 돗대 위에 달기도 한다. 이런 깃발은 고기를 많이 잡아오는 만선 때에도 단다고 하니 만선기를 다는 셈이다. 속신 정월 열나흗날과 대보름에는 모든 행동을 아홉 차례씩 한다는 관습이 많다. 나무 아홉 짐, 새끼 아홉 발을 꼬면 큰 부자가 된다고 한다. 부인은 빨래 아홉 가지, 학생은 글 아홉 번, 글씨 아홉 줄을 쓰라는 것은 모두 부지런하라는 뜻이다. 정월대보름 내에는 가능한 한 곡식을 밖에 내지않는다. 복(福)을 더는 일이라고 생각해서다. 특히 쌀 반출을 금하고 돈이 필요해도 대보름 전에는 내다 파는 일은 삼간다. 정월대보름에는 기풍과 관련된 점복이 많이 행해진다.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그해에 풍년이 들 것인지를 미리 점쳐보게 되는데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보름날 초저녁에 높은 곳에 올라서 달맞이를 하고 점을 친다. 달빛이 붉으면 가물 징조이고, 희면 장마가 길징조이다. 달의 사방이 짙으면 풍년이고, 옅으면 흉년이 들 징조이다. 또 보름달에게 소원을 빌기도 하는데 농군은 농사가 잘되기를, 총각은 장가 가기를, 부인들은 아들 낳기를 기원한다. 달과 관련된 풍속으로 청소년들이 짚이나 솔잎, 나무들을 모아서 언덕 위에 쌓고 조그만 오두막이나 큰 다락 등의 달집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는 달이 뜨기를 기다려서 불을 지르고 환성을 지른다. 달집 속에 대나무들을 넣어서 터지는 폭음으로 마을의 악귀를 쫓기도 한다. 달집이 탈 때 고루 잘 타오르면 풍년이고, 다 타고 넘어질 때 그 방향과 모습으로 흉풍을 점치기도 한다. 대보름날 밤 사발에 재와 그 위에 여러 가지 곡식의 씨를 놓고 그 사발을 지붕 위에 올려놓는다. 다음날 아침 날아간 곡식은 흉작, 남은 곡식은 풍작이 된다고 점을 친다. 콩을 통해 농사의 풍흉을 점쳐 보기도 한다. 대보름 전날 저녁에 콩 열두 알의 표시를 하여 수수깡 속에 넣고 묶어서 우물에 넣었다가 대보름날 아침에 그 콩알들이 붇고 안 붇는 것으로 그달의 수해·한해·흉풍·길흉을 점친다. 이것을 ‘달불이’라 한다. 또 동네 안의 호수대로 호주의 표시를 한 콩으로 위와 같이 각 가정의 점을 치는 것을 ‘집불이’ 혹은 ‘호불이’라 한다. 간단한 방법이기 때문에 지금도 많이 전승되고 있다. 또 소에게 음식을 주고 그것을 통해 점을 치기도 한다. 대보름 전날 밤에는 하루 세 끼 먹는 소에게 한 번 더 준다. 오곡밥도 쇠죽에 섞어서 주고 소가 쌀을 먼저 먹으면 쌀 풍년, 콩을 먼저 먹으면 목화 풍년 등으로 점을 친다. 또 대보름날에는 외양간 앞에 상을 차리고 일년 내내 소가 일 잘하기를 기원한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널리 전승되고 있다. 닭이 우는 횟수를 가지고 점을 치기도 한다. 대보름날 새벽에 첫닭 우는 횟 수를 센다. 횟수가 적으면 흉년, 열 번 이상을 울면 풍년이 된다고 한다. 정초의 토정비결 등은 개인 운수점이 주가 되고 대보름에는 농사점이 주가 되는데 농사점은 이 밖에도 다양하다. 이 밖에도 개인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풍속이 행해졌다. 즉 액을 막아내기 위한 액막이의 형태가 그것이다. 제웅치기의 풍속은 액막이의 대표적인 사례다. 나이를 따라 그 운명을 맡는 9종의 별이 각기 9년 만에 드는데 남자는 10세, 여자는 11세부터 흉한 제웅직성이 먼저 든다. 이해에는 화나 병이 생길 수 있어 그 액풀이로 ‘제웅치기’를 한다. 짚인형을 만들어 속에 돈이나 쌀을 넣고 그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적는다. 이 제웅을 대보름 전날 초저녁에 길에 버리면 주워가는 사람에게 액이 옮아간다는 것이다. 제웅을 한자로 ‘처용(處容)’이라고 적고 있다. ‘액막이연’이라 하여 정초부터 날리던 연을 대보름날에는 날려 보낸다. 이때 연에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 등의 글귀를 써서 하늘 높이 띄우고, 연줄을 끊는다. 연은 한없이 날아가 버리고, 그 연의 주인이 지닌 액은다 사라진다고 한다. 대보름날 아침에 더위팔기를 한다. 이날 아침에 사람을 보면 급히 이름을 부른다. 대답하면 곧 “내 더위 사가라.” 한다. 이것을 ‘더위팔기’라 하고 이렇게 하면 그해에는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구충(驅蟲)을 위한 풍속도 많이 행해진다. 대보름날 새벽에 마당에 짚불을 놓으며 이것을 ‘모깃불’이라 한다. 시골 여름철의 모기 성화를 미리 쫓는다는 것인데, 여기에 참대나 아주까릿대를 넣어서 마디가 튀는 소리로 잡귀를 쫓는 경우도 있다. 절식 정월대보름의 시절음식은 시절음식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속신적인 부분과 많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 귀밝이술(耳明酒)은 대보름날 아침에 데우지 않고 먹는 귀밝이술은 귀가 밝아진다는 의미 외에 일년 내내 좋은 소식만을 들을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부럼깨기 풍속도 마찬가지다. 『동국세시기』에 “상원 이른 아침에 날밤·호두·은행·무 등을 깨물면서 일년 열두 달 무사태평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고 축수하니 이것을 이굳히기(固齒之方)라고 한다.”고했다. 이굳히기는 중국·일본에서도 널리 전해 왔으며 설날에 행해지고 있다. 부럼은 지금도 전국적으로 성행된다. 정월대보름날을 전후해서 찰밥과 약밥을 먹는 풍속이 있다. 찹쌀을 쪄서 대추· 밤·기름·꿀·간장을 섞어서 함께 찌고 잣을 박은 것을 약밥(藥飯)이라고 한다. 이것은 대보름의 좋은 음식이고, 이것으로 제사를 지낸다. 찰밥( 飯)에 더공을 들인 것이 약밥이 되는데 전남에서는 찰밥이나 약밥은 시루에 쪄서 성주께 올리기 때문에 성주밥 또는 시리(시루)밥이라고도 한다. 놀이 정월대보름에는 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놀이들이 행해진다. 이때의 놀이들은 단순히 유희와 오락의 의미만이 아니라 주로 승패를 가르는 놀이로 농사의 풍흉을 예견하기도 한다. 줄다리기는 편싸움의 대표 종목 중 하나이고, 대개 대보름 밤에 행해진다. 줄다리기의 종류에는 아이들 골목 줄다리기에서 어른 줄다리기, 마을 줄다리기 등이 있다. 그 종류에 따라서 진행 과정도 다양하고 내용도 복잡 다양해진다. 석전(石戰)은 두 편으로 갈라서 돌을 던져서 싸우고, 이기는 편에 풍년이 온다고 했던 대보름의 편싸움놀이다. 한·중·일에 다 있었고, 한국은 고구려에서부터 역사상 기록도 많았으며, 전국적으로 성행하다가 1930년대에는 소멸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금기 대보름 금기는 농경사회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인 조건, 즉 무병이나 풍농 등을 보장받기 위해 행하는 상징적 형태의 행위다. 전국에 걸쳐 전승되고 있는 대보름 금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먹는 것과 관련된 금기다. 김치를 먹으면 살쐐기(여름철에 생기는 피부병의 한 가지로 가렵고 따끔거림. 흔히 몸쐐기라고 함.)가 온 몸에 인다고 여긴다. 또 풀쐐기(불나방의 유충으로 누에와 비슷함. 온몸에 거친 털이 빽빽하며 몸빛은 검푸름.) 또는 벌에게 쏘인다고 여긴다. 그리고 발바닥에 가시가 배긴다고도 하고 논밭에 잡초가 무성해진다고 여기기도 한다. 또 “얼굴에 검버섯이 핀다.”, “손가락에 보풀이 생긴다.”, “이(치아)가 상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백김치를 먹으면 “머리가 센다.”고 하고 동치미를 먹으면 “못자리에 이끼가 낀다.”고 여긴다. 따라서 김치뿐만 아니라 깍두기 내지 김치국도 일절 먹지 않는다. 그리고 음식을 조리할 때에도 고춧가루를 넣지 않는다. 한편 살쐐기가 일 경우에, 측간에 있는 짚을 그슬려 깨와 함께 볶은 후 환부에 바르면 낫는다고 한다. 먹는 것과 관련된 것으로 “찬물을 먹지 말라.”는 금기가 있다. 대보름에 찬물을 마시면 여름내더위를 먹고 놉(날품을 제공하고 보수를 받는사람)을 얻어 일을 할 때마다 소나기가 오기 때문에 찬물을 마시지 않는다. 특히 찬물을 많이 마시면 논둑이 터진다고 여긴다. 타인이 와서 물을 마시면 모를 심을 때 비가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뿐만 아니라 숭늉을 마시면, 정신이 흐리멍덩해지며, 게으름을 피운다고 여긴다. 따라서 물 대신 챗국이나 맑은 콩나물국을 마신다. 그 밖에 물을 길어 오거나, 오수(汚水)를 버리면 논둑이 터진다고 전해온다. “비린 것을 먹지 말라.”는 금기도 있다. 생선과 같은 비린 것을 먹으면, 여름에 파리가 들끓고 몸에 부스럼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이외에도 “나물을 먹지 말라.”고 하는데 첫술에 나물을 먹든지 또는 나물을 많이 먹으면, 논밭에 잡초가 무성해진다고 봤다. 둘째는 행위와 관련된 금기가 있다. 보름밥을 나물과 비벼 먹으면, 논밭에 잡초가 무성해지고, 보름에는 개에게 밥을 주지 않는데 개에게 밥을 주면, 여름내 비실비실 잠만 잔다고 여기고 개 주위에 파리가 들끓는다고해서 금기시 됐다. 만약 이날 숟가락으로 밥을 먹으면, 두레를 결성하여 공동으로 김을 맬 때 밭고랑 넓은 것을 담당한다고 믿어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다만 새댁의 경우에만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 또 칼질을 하면, 논밭에 노래기(절지동물, 노래기강의 총칭)가 들끓고 논둑이 무너진다고 여기며 농우(農牛)가 등창을 앓는다고 믿었다. 한 해의 복도 잘라지고, 곡식도 잘라진다고 여기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칼질을 하다 손을 베면, 일년 동안 낫지 않는다고 여겨 열나흗날 밤에 미리 음식 재료를 손질해 두는 등 일체의 칼질을 삼간다. 남의 집 출입을 금하기도 한다. 이때는 키가 작은 사람을 농작물과 연관시켜 생각하는데 키가 작은 사람이 먼저 출입하면 삼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생각해 키 작은 사람이나 아이들의 출입을 금한다. 더러 키 큰사람을 초대하여 융숭하게 대접하기도 한다. 한편 여성이 먼저 출입하면, 가장이 구설수에 오른다거나 닭이 부화를 많이 못 한다고 하고 논둑이 터진다고 여긴다. 따라서 가정 내에서도 남성이 먼저 일어나 집안을 한 바퀴 돈 다음에야 여성들이 활동을 시작한다. 여성들은 오전이라도 가능한 한 외부의 출입을 삼간다. 대보름날 오전에는 마당을 쓸지 않는다. 오전에 마당을 쓸면 한 해 복이 나간다고 본다. 따라서 마당을 쓸지 않는다. 그래도 혹 쓸어야 할 경우에는, 해가 중천에 솟은 다음에 쓴다. 이때에도 비질을 마당 안쪽으로 향해 하며, 쓰레기는 집 밖으로 버리지 않는다. 또 빗질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머리를 빗으면, 콩밭에 새삼이 무성하게 자라 밭농사를 망친다, 집안에 뱀이 들끓는다, 머리에 비듬과 이가 많이 생긴다, 집안에 곰팡이가 많이 생긴다, 집안의 복을 쓸어낸다며 삼간다. 그리고 음식에 머리카락이 들어가면 한 해 재수가 없다고 봐서 빗질뿐만 아니라 아예 머리를 감지 않는다. 특히 비가 올 때 머리를 감으면 부모상을 당한다고 여겨 삼가 주의하였다. 그리고 빨래를 하지도 않는다. 빨래를 하면 나락이 말라 버리고, 빨래를 널면, 논에서 황새가 놀아 논농사를 망친다, 나락이 병충해로 인해 하얗게 변한다, 특히 옥수수 밭의 지질이 변한다고 여긴다. 이날은 맨발로 걷지 않아야 하는데 맨발로 걸으면, 발가락이 튼다, 무좀이 생긴다, 그해에 짐승에게 물린다, 농사철에 가시가 박힌다고 믿었다. 따라서 반드시 양말을 신고 다닌다. 잠을 잘때에도 버선이나 양말을 신고 잔다. 또 생인손(손가락 끝에 염증이 생겨 곪거나, 손톱이 빠지기도 하는 증상)을 앓고 농사철에 가시가 박힌다고 하여 바느질을 하지 않는다. 이 밖에도 논밭의 둑이 무너지고 두더지가 밭을 헤친다고 절구질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논밭의 곡식을 노루가 망친다고 여겨 작두질을 하지도 않는다. 자료 한국민속대백과사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