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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2-02-14
첨부파일 달력_만사.jpg 조회수 986

미신에서 선물까지, 달력 만사(萬事) 




일반적으로 해가 뜨고 지는 현상을 일컬어 하루라 하고 이것이 365 번 반복되면 1년이라 칭한다. 달력이 만들어지기 전의 삶을 상상해 본다. 아마도 현대인보다는 자유롭지 않았을까. 나이를 셀 필요도 없고, 고로 해가 바뀐다고 해서 딱히 초조하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 하니 문명 이전의 원시인들이 부러워졌다. 

 

섣부른 예상과 달리 인류는 생각보다 아주 일찍부터 숫자의 개념을 생활에 적용했다고 한다. 달력이 최초로 등장했던 시기는 무려 약 2 만 5천 년 전인 석기시대로 추정된다. 동물의 뼈에 달의 모양과 위 치를 새긴 유물이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에서 출토된 바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1) 에서는 세금과 제물을 더 많이 거둬들일 수 있어 농사 일정 파악에 용이한 태양력 대신 354일 주기의 태음력을 사용했다 고 한다. 민초의 삶은 그 때나 지금이나 고단하기 짝이 없었나 보다. 최근 은행에서 발간하는 달력이 중고시장에서 암암리에 활발히 거 래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한 해 동안 은행 달력을 집 에 놓아두면 부자가 된다나 뭐라나. 특히 제1금융권 은행의 달력이 인기가 높단다. 여기에 더해 디지털 문화의 확산과 코로나19로 인 한 경기침체로 인해 기업에서 좀처럼 종이달력을 제작하지 않는 추 세라, 최근엔 품귀현상까지 빚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고 보니 살면 서 단 한 번도 달력을 구하러 다녀 본 적이 없었다. 으레 새해가 되 면 어디선가 따로 요청하지도 않은 달력을 마구 보내주었던 것 같 다. 가만있어보자. 지금 집에 달력이 있었던가? 확실히 예년과 비 교해 공짜 달력의 숫자가 대폭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이럴 수가.
1) 메소포타미아 남동쪽의 고대 문명지. 기원전 4000년 경 세워진 수메르인의 도시 국가를 기원으로 한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 

 

달력 찾아 삼만 리

정말로 달력이 팔리고 있는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가장 먼저 D중고마켓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달 력’이라고 검색하니 꽤 많은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대부분 무료 나눔인데다 댓글로 판매자와 구매 자 사이에 새해 덕담까지 오가는 훈훈한 상황이었다. 간혹 기사 내용대로 은행 달력을 파는 경우도 있었으나 3천원 미만의 저렴한 가격이었다. 아직까지는 돈보단 양심이 지배하는 세상처럼 느껴져 어쩐지 안심이 됐다. 달력 재판매가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기분이 그랬다.    

 

해가 바뀐 지 시일이 꽤나 흐른 시점인지라 인기가 많다는 은행 달력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집 근 처 우체국으로 향했다. 우체국도 엄연한 금융기관 아니던가! 평소에 우편물을 부칠 때는 당당했던 걸음이 막상 아쉬운 소리를 하러 가려니 멋쩍어진다. “혹시 달력 하나만 얻을 수 있을까요?” 다행 히 업무가 그리 바쁘지 않은 시간이었는지 이내 답이 돌아왔다. “달력이요? 탁상달력?” 실은 벽걸 이가 더 갖고 싶었지만 더는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얼른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이윽고 우체국을 나서는 내 손 위에는 종이봉투로 곱게 포장된 임인년 달력이 들려있었다. 뭐야. 쉽잖아. 마침 작년 에 담당집배원께서 친히 가져다주신 지난해 달력도 집에 남아있었다. 작년에는 우체국 공모 ‘어린 이 그림그리기 대회’ 입선작들을 실었다면 올해는 ‘달력으로 보는 138년 우체국 역사’가 주제다. 우 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문위우표’로 1884년 11월에 발간되었다고 한다. 인심 후하고 고객 상식 계 발에도 힘쓰는 대한민국 우체국 만만세!
다음 행선지는 행정복지센터다. 인터넷에서 확인하기로는 각 지자체에서 건강달력, 농사달력 등을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던데, 과연 원주시는 어떨는지. 기왕이면 농사달력이었으면 좋 겠다는 내 철없는 기대는 창구 앞에서 무참히 무너졌다. “저기 혹시 달력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라고 묻자 짧지만 단호한 선언이 단박에 돌아온다. “달력은 없어요. 선생님.” 안 그래도 격무로 바 쁜 때에 민폐를 끼친 듯 해 얼굴이 달아올랐다. 종종걸음으로 행정복지센터를 빠져나온 뒤 바로 결 심했다. “사자! 달력을 사보도록 하자!” 

그리하여 주문한 것들 
달력은 일정 시일이 지나면 무용지물이 되곤 한다. 기왕이면 사용기한이 지났어도 되도록 오래 간 직해도 괜찮은 달력이 사고 싶어졌다. 첫째, 인테리어를 해치지 않을 것. 둘째. 구매를 통해 의미 있는 일에 동참 가능할 것. 이렇게 두 가지 원칙을 세운 뒤 여기저기 뒤져보니 꽤나 괜찮은 달력들 이 눈에 띄었다. 



① 이규태 그림달력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유어마인드’에서 제작한 A3크기 달력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이규태의 그림 들이 수록됐다. 다달이 교체 가능한 아트포스터라 봐도 무방하다. 날짜 표기 하단에는 친절히 공휴 일이 따로 표기돼 있다. 계절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작품들 덕분에 달이 바뀔 때마다 은은한 설 렘을 선사한다.

② 숲을 살리는 달력 
‘(사)작은것이아름답다’에서 제작한 벽걸이 달력이다. 1월 해오름달, 2월 시샘달, 3월 물오름달 등 어여쁜 우리말 달 이름과 각종 환경기념일, 24절기 등이 표기되어있다. ‘숲을 달리는 달력’이라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폐지를 활용한 재생종이로 만들어졌다. 디자인 또한 정갈해 사무실, 가 정집 어디에나 잘 어울린다.

* 상기 달력은 소량 제작되어 현재 품절로 판매가 중단된 상품들이다.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해보시길! 

③ 무위당 서화달력 
무위당 장일순의 서화와 해설이 담긴 만년달력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 이 땅의 생명과 지역의 협동을 위해 일평생 헌신한 무위당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이에게 값진 새해 선물이 될 것이다.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 (Tel. 033-762-2013) 에서 구입 가능하다.

달력, 잘 버리자
당연한 소리지만 달력도 잘 버려야 한다. 잘 분리해야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재활용 이 용이하게끔 만들어졌다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 그렇지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탁상달력은 크게 스프링, 삼각대, 종이로 구성되어 있어, 언뜻 스프링만 제대로 분리하면 될 것 같아도 삼각대 가 숨은 변수다. 일반적으로 탁상달력의 삼각대는 주로 두꺼운 판지를 색지와 비닐로 코팅해 제작 하므로 재활용이 가능하려면 비닐과 색지를 일일이 벗겨내야만 한다. 요컨대, 원칙대로라면 탁상달력은 분리배출이 꽤나 까다로운 녀석이다. 분리배출에 대해 자료조사를 하던 중 멋진 예술가를 발 견했다. ‘좋아은경’은 달력 스프링 등 버려지는 철사를 이용한 드로잉과 텍스트 작업을 하는 작가다. 그의 SNS 계정(https://www.facebook.com/yoaek)에는 ‘나무 읽는 목요일’이라는 제목 아래 매 주 목요일 마다 폐철사 필사 작업이 업로드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달력 분리배출과 관련한 유용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환경과 예술에 관심 있는 독자에겐 여러모로 유익한 소통의 창구가 될 것이다.   

 달력 분리배출 방법 
벽걸이 달력은 스프링을 분리해 각각 종이와 고철로 나눠 배출한다. 탁상달력도 마찬가지. 스 프링을 분리할 때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목장갑 등으로 손을 보호하고 볼펜과 같은 가는 막대를 안쪽에 밀어 넣어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간격을 넓히면 된다. 탁상달력에 내장된 삼 각대는 색지와 비닐로 코팅이 되어있는 경우 재활용이 불가능하므로 일반쓰레기로 분류된다.

달력 관련 추천 도서 


 

달력과 권력 (이정모 지음 / 부키 / 2015) 

달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역사 속 비화들을 과학적 관점에서 친절하게 설 명한 책이다. 기원전 6천 년경부터 현대의 그레고리우스 달력에 이르기까지 달력의 변천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읽고 나면 책상 위에 놓 인 달력이 새롭게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수업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1)
생태.환경.에너지 전문가 최원형의 저서로 환경 기념일의 기원과 의미를 이 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우리의 일상이 자연과 어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를 51가지 환경 기념일을 통해 접근한다.



글 황진영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 스토리한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