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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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스토리에세이.jpg | 조회수 | 3,125 |
한국에서 결혼하기 ![]() 서울 종로와 대학로 사이에 유난히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다. “외관의 중세 유럽풍과 분위기를 같이 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모던함과 접목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련된 느낌을 자아내는 세미 클래식한 인테리어(실제 홈페이지에 적힌 소개 문구다)”로 짠 이 곳은 <겨울왕국>에 나왔던 성보다 화려하고 잠실에 있는 놀이공원 건물보다 색이 바랬다.
혼례에서 결혼으로 엘가모아 웨딩홀은 결혼식장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오로지 결혼식만을 치르기 위한 공간이 등장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우선, 우리나라의 신식 결혼의 역사부터 짚어보기로 했다. 이 땅에서 신식 결혼은 19세기 말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자리 잡았다. 1910년 국권 피탈 이후 일제는 조선인들에게 일본 결혼 예식을 권장했으며 이에 따라 ‘혼사’ ‘혼인’ 혼례’ ‘대례’라는 표현 대신 ‘결혼’이라는 일본식 표현이 점차 일반화 되었다. 이른바 신식이라 할 수 있는 결혼 방식에는 기독교식, 천도교식, 사회식 등이 있었다. 특히 사회결혼으로 불린 사회식은 1930년대 들어와 신식 결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혼례복을 빌려주는 가게, 신부화장을 전문으로 하는 미장원과 함께 결혼 전문 예식장에서 진행되었다. 결혼식만을 위한 전용 공간이 등장한 건 바로 이 무렵이다. 이전엔 서울을 기준으로 교회나 불당, 공화당, 부민관, 신문사 강당(조선,동아일보사), 요리집을 이용했다. 물론 이에 반발하며 전통 혼례를 유지하려는 목소리도 꽤 있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점차 신식 결혼이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결혼이라는 이미지 그런데 이 신식 결혼 문화가 서양의 성城과 같은 엘가모아 웨딩홀의 겉모습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신식 결혼 문화가 막 보편화되기 시작한 당시의 시대 배경에 대해 찾아보았다. 신식 결혼이 대세로 자리 잡던 무렵, 마침내 조선은 36년 동안 이어진 일본의 긴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1945)을 맞는다. 일본 열도에 떨어진 한 천재 서양 과학자의 연구 결과물 때문이었다. 그리고 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전쟁(1950)이 일어난다. 삶과 죽음이 일상인 상황에서 아군과 구호물자를 제공하는 군복 입은 서양 사람은, 한 세기 전 새로운 세상의 등불로 등장한 서양 선교사들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절망의 시절, 그들은 희망적인 미래의 상징이자 구원이었을 것이다. 서양은 이제 이 땅 사람들의 목표가 되었다. 20세기 중반 이 땅에서 서양은 이제 옛날의 ‘서양 오랑캐’가 아니었다. 그들이 가진 이미지는 따라야 할 동경이자, 행복의 척도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동력이었다. 특히 일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라 일컫는 결혼식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지난 시절보다 더욱 커졌다.
한국식 결혼 이 글을 읽는 독자가 2,30대이며 미혼이라면 결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결혼 할 의지가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은 ‘결혼 전-결혼-결혼 후’ 중 하나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생이 결혼의 영향 아래에 놓여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연애의 끝은 결국 결혼이다. 사랑의 결실도 곧 결혼이다. TV에서는 가상으로 결혼한 연예인 부부가 나오고 진짜 부부가 나와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튜디오 조명 아래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위가 처가에 가서 생활하는 모습을 틀기도 한다. 결혼 없는 일일 연속극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결혼 장려 분위기와는 달리 현실에서의 결혼은 남녀(물론, 남녀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랑만으로는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 특히 결혼식을 치르는 과정을 보면 그렇다. 결혼식장의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이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 신랑, 신부는 ‘(부모님 성함)의 장남 (신랑 이름), (부모님 성함)의 차녀 (신부 이름)’ 같은 어순으로 하객들을 맞는다. 하객들은 부모님을 통한 사람들이 가장 많다. 자식들을 ‘결혼식’에 이르기까지 잘 키워낸 부모들이 축하 받는 건 사실 당연하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과 희생을 품고 자라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은 ‘다른 삶’을 살던 신랑 신부가 사랑으로 만나 함께 ‘같은 삶’을 시작하는 그들의 ‘결혼식’이기도 하다. ‘부모 아래’라는 기존의 가족 형태를 떠나 자기가 가족의 중심이 되는 첫 날인 것이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인 것이다.
몇 해 전 유명 연예인이 강원도의 어느 들판에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됐다. 이를 두고 모 연예기사는 ‘결혼’이라는 형식보다 ‘맺음’이라는 의미에 더 가치를 둔 모습이라 했다. ‘맺음’의 단어 뜻을 생각하다 밴드 코가손이 “오늘부터 너랑 나는 같은 길을 갈 거야.”라고 흥얼거리는 노랫말이 생각났다.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첫 날이다. 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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