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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인터뷰-코이노니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7-22
첨부파일 코이노니아_2.jpg 조회수 2,946

 

오래된 시인의 노래가 들려오는 곳 

부부는 용기를 냈다. 둘이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더라도, ‘설마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 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밤잠도 설쳤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일 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믿었다. 처음에는 아내가 앞서 갔고, 남편은 뒤에서 응원하고 밀어줬다. 그러다 ‘입에 거미줄 칠 것’ 같은 불안감에 뒤에서 밀어주던 남 편이 아내 옆으로 왔다. 다시, 아내는 ‘입에 풀칠해야 할’ 걱정에 사로잡히긴 했다. 
전공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그렇게 북 치고 장구 치고 논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기를 희망한다. 하고 싶은일을 하기까지 50여 년이 걸렸다. 그렇게 원주 단구동에 색다른 공간을 마련했 다. 동네책방 ‘코이노니아(Koinonia)’다.​​

 

 


오래된 시인의 노래가 들려오는 곳

어느 늦은 밤 원주 단관초등학교 앞 복잡한 골목길 한쪽에 환하게 밝혀진 ‘동네책방 코이노니아’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낯선 외국어가 들린다. 

어떤 날은 이층 다락방에서 두런두런 역사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오른쪽으로는 주인장의 취향이 가득 담긴 책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오래된 시인의 노래​가 들려오고, 철 지난 드라마가 펼쳐지듯 장대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우뚝 서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작가들도 간혹 눈에 띄지만 소소한 감동과 울림을 전해주는 제목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네책방다운 책 진열이 정감있다. 책 선정 기준에 대해 강혜숙(52) 대표는 “책은 주로 남편이 주문하는 편입니다. 남편이 워낙 책을 좋아하는데 대부분 문학과 관련된 것​이에요. 오래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 는 소설이나 시 위주로 고르더라고요.” 

 
 

지난 4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동네책방 코이노니아’의 일꾼으로 들어 온 남편 이동일(55)씨는 “일을 그만두고 합류한 것에 대해 정말 후회는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 들이 있고, 아이들도 이제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거든요. 우리 ​부부 먹고 살 수 있는, 쌀을 살 수 있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대신 책 주문은 최소한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장르지만, 책을 입고한 뒤 안 팔리면 제가 읽으면 된다는 생각으로요.” 남편 이 씨가 합류하면서 처음으로 기획한 것은 원주독서 모임 ‘우리길’이다. 6월부터 시작한 ‘우리길’ 모임의 첫 번째는 소소했지만, 두번째 모임부터는 인원이 꽤 늘었다. “함께 가면 길이 어렵지 않고, 무료하지 않고, 길을 잃지 않을 것 같아서 우리길이라고 정했고요. 올해 첫 번째 주제는 ‘문학 속의 역 사’로 조정래 선생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집에 있던  『아리랑』을 보니 1994년 초판 1쇄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너무 기뻤습니다. 함께 하는 분들도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재미있게 진행하고 있어요. 꾸준하게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밖에도 영어동화반과 영어프리토킹, 힐링어반드로잉, 에코크래프트, 원어민회화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북 카페 그리고 동네책방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거나, 명함을 주고받을 때 당연히 ‘코이노니아’의 뜻을 궁금해 하고, 어려워한다. 강 대표에게 어떤 뜻인지 물었다. “교회 용어이기도 한데, 헬라어로 공유하다, 남과 함께 나누다, 다 같이 등의 뜻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부부도 독실한 신자거든요. 처음에는 ‘코이노니아’ 그러면 어려워하는데 익숙해지면 괜찮 아 하더라고요.” ‘동네책방 코이노니아’는 최근(지난 4월1일) 강원도 예비​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됐다. 

             
 

“2018년 7월에 사회적 기업가 육성과정에 참여 해 지난 4월 1일자로 강원도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됐어요. 사실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적경제, 협동조합, 마을기업에 대해 잘 몰랐어요. 

우연히 홍보 현수막을 보고 지원했는데 일이 잘 풀리려고 했는지 육성과정을 모두 마치고 얼마전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도 지정됐어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코이노니아가 추구하는 공유와 나눔, 함께하기 등과도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 바로 협동조합이고, 사회적 경제인 것 같아요.” 

코이노니아의 프로그램 중 유독 영어와 관련된 것이 많은 이유는 바로, 강 대표의 전공이 영어​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한 강 대표는 40대에 겁 없이 유학을 떠났고, 영어 공교육·사교육 현장을 모두 경험한 베테랑 이기도 하다. 

 
 

“우리 교육이 너무 획일적이고, 입시 위주다보니까 영어를 몇 년씩 해도 실제로 외국인을 만나면 아무 말도 못하잖아요. 그런 머뭇거림을, 쑥스러움을, 창피함을 없앨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어요. 누구나 머뭇거리고 쑥스 러워하고, 창피하니까 괜찮지 않겠어요? 누구도 잘하는 사람 하나 없는, 그래서 편안한 우리들만의 공간, 말이 되고 안 되고 따지지도 않고 자유롭게 떠들어댈 수 있는 시간, 그런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주고 싶었어요. 지금 잘 운영 되는 편입니다. 인기도 있고, 알음알음 소문도 좀 났고요.” 동네책방 코이노니아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부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이곳 골목만 해도 벌써 몇 개의 카페와 커피전문점이 있어요. 책방은 조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어 분위기를 보고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손님들도 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책방은 좀 자유분방했으면 좋겠거든요. 작은 도서관도 그렇고요. 꼭 조용해야 한다는 인식은 안해주셨으면 해요. 손님들이. 책방이 좋긴 하지만 꼭 조용하고 책만 읽는 그런 곳으로 이미지가 굳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카페로서의 기능만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복합문화공간으로 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수익도 창출하고요. 카페만으로는 어려움이 있으니 모임과 강연,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 시키고 싶어요.” 책방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의 만류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운영하고 있는 북카페 형태의 책방지기님들 대부분이 어려운 길 이라며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할 것을 주문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서 시작한 길이다. “아무리 주위에서 말려도 그동안 생각했고 꿈꿔왔던 일이었기에 과감하게 추진했어요. 제가 영어 전공이니까 영어 관련 모임도 하고, 전공을 살려서 살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 중에 있기도 합니다. 아직까지는 코이노니아 만의 수입으로 생활하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거든요.” 

그나마 이곳을 찾는 분들 중에서 함께 협업을 하자고 제안해오는 곳도 제법 늘었다. 같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모여 일을 해보자고 하는 것인데, 강 대표는 교육서비스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물론 남편 이 씨도 함께다. 

“얼마  전  로드스꼴라(roadschola)라고  하는 여행 대안학교의 글을 읽고 무릎을 쳤습니다. 

아,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이런 것이 로구나. 여행을 하며 현장의 느낌과 역사, 문화를 알아가고,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정말 살아있는 교육을 해보고 싶었던 겁니다. 여 행 속에서 철학과 인문학을 배우고,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하는 그런 교육, 꼭 한번 해보 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삶은 이어진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강 대표와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서 자란 남편 이 씨 모두 서울이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들 부부의 원 주 사랑은 특별하다. 

“원주에서 근무를 하다 서울로 발령이 났는데, 원주가 너무 좋아서 주말 부부로 15년을 있었습니다. 사실 굳이 원주에 있지 않아도 되었는데 말이죠. 치악산 아래 행구동의 한 아파트에 서 살았는데, 그때 칠흑 같은 어둠이 어떤 것인지 처음 알았어요. 정말 행복했습니다. 여름이면 쉴 새 없이 개구리 소리와 새 소리, 자연의 소리가 들렸는데, 아! 이런 것이 바로 자연이 살아 있다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했죠. 논둑길을 걸을때 발밑으로 전해오는 그 부드러운 촉감이 좋았거든요. 아이들도 그런 원주에서의 삶을 좋아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원주가 너무 커졌어요. 앞으로는 더 인구가 늘어날텐데 걱정이 됩니다.”​ 이들 부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원주를 사랑한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꿈을 접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누고,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강 대표가 꿈꾸는 원주의 ‘동네책방 코이노니아’ 는 백범 김구 선생님이 백범일지에 기록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곳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 략을 막을 만한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글 원상호 사진 원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