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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서 보낸 편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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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

지난 연말 책 한권이 사람들에게 선을 보였습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부인이신 이인숙 선생님에 관한 책입니다.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무위당사람들 엮음, 2019)입니다. 이인숙 선생님과 1970년대 함께 했던 분들을 비롯해 가깝게 지낸 형제들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이인숙 선생님은 곱디고운 분, 함초롬한 꽃 같은 분, 한없이 인자하신 분, 화를 내지 않는 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분, 밥상만 보아도 정성을 가득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분, 남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는 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분 등 모두 비슷합니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과장되거나 미화되거나 혹은 왜곡되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지요. 그러면서도 문득 이 책이 우리네 어머니들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살아 온 환경은 비록 달랐을지라도 말이지요. 우리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머니의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는지, 어머니의 유년은 어떠했는지, 한 인간으로서 가졌던 고민과 포부는 또 어떤 것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면, 그저 어머니를 생각하면 한쪽 가슴이 먹먹해져 오고, 눈물이 날 것 같고, 험한 세월을 버텨 온 것이 가슴 아프기만 했던, 감정의 기억들만 떠오른다고 고백을 합니다. 

딸이면서 아내로, 며느리로, 어머니로 살아온 이 땅의 어머니들은 한 인간의 삶에서 온전한 자신을 만나지 못한 채 이 시대를 건너온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어쩌면 이인숙 선생님의 개인사이기도 하지만 질곡의 현대사를 보낸 이 땅의 모든 어머니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쟁을 겪었고 암울했던 시대를 지나 산업화의 물결에 희생되었던, 그렇지만 꿋꿋하게 이겨낸 우리 어머니들의 삶에 대한 기록일수도 있습니다. 모든 남편, 모든 자식들이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빛과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묵묵하게, 말없이, 공을 이루고도 나서지 않는, 그런 분이니까요. 우리의 어머니들이 말입니다. 

어느 날 이인숙 선생님 댁을 찾은 방문객들이 덕담 한 마디 해달라고 말했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지요.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아 모든 분들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모두 행복한 일상이 될 테니까 말입니다.

새해를 맞아 모두 날마다 좋은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편집장 원상호


여는 글
집 앞 편의점 벽에 붙어있는 현수막에 눈길이 갔습니다. 달마다 바뀌는 현수막인데 이번 달은 왜 경자에게 반갑다고 하는지 잠시 생각하고 나니, 2020년 1월이었습니다. 경자는 육십간지 중 37번째로 경(庚)이 백색을, 자(子)는 ‘쥐’를 의미하여 ‘하얀 쥐의 해’라는 의미입니다. 

30년 전에 만들어진 만화영화에서 2020년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 자원 고갈 문제, 환경오염으로 지구를 대체할 우주의 새로운 행성을 찾는 해’로 그려졌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직 지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2000년대, 2010년대를 지나 2020년의 시대입니다. 맨 앞 2라는 숫자는 이제 전혀 어색하지않지만 가운데 숫자가 바뀌는 것은 참 생경합니다. 정말이지,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쥐의 해를 주제로, 쥐 이야기와 지난 달 열린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송년회’와 원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서곡생태마을’과 ‘생생마켓’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또 마을기업인 홍천 ‘괘석영농조합법인’ 인터뷰도 실었습니다.

며칠 전 1월답지 않게 제주도 낮 기온이 23도까지 올랐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한겨울, 남은 계절 속에서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