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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명소 아카데미의 부활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3-30
첨부파일 아카데미.jpg 조회수 1,964

‘아카데미극장’이라는 여정 그리고 2020년

 


원주 아카데미극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원주영상미디어센터에서 가끔 발행하는 매거진 ‘모두’를 제작하면서이다. 2015년 1월 아카데미극장을 커버스토리로 한 잡지가 나왔을 때만 해도 원주역 근처 문화극장이 같이 있었으니, 그만큼 소중한 존재인지 몰랐다. 그해 겨울 문화극장이 갑자기 팔리며 철거가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문화극장 자리에 금방 만들어졌다. 그즈음 원주는 혁신도시, 기업도시가 들어오며 날로 팽창의 꿈을 꾸고 있을 때였다. ‘아쉽다아쉽다’라는 말은 쉽게 삼켜지지 않았다. 그렇게 유일하게 남게 된 아카데미극장. ‘이건 좀 지켜내야 하지 않겠니’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였다.

 

2016년 7월 14일, 첫 번째 ‘아카데미로의 초대’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 아카데미극장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누자며 연락이 왔다. ‘원주도시재생연구회’.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곳. 도시재생이라는 말도 풍문으로만 들었지, 원주에 그런걸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몰랐다. 시의원, 건축가, 문화기획자 등 다종한 사람들이 모여서 도시재생이라는 먼 이야기를 당기려고 노력 중이었다. 하나 남은 아카데미극장을 지켰으면 하는 마음에 ‘우리’는 금세 의기투합했다.

 

우리는 사전 행사로 시장상인회, 건축학과 교수, 지역 문화단체장 등이 참여하는 포럼을 진행하기로 했다. 아카데미극장을 재생하면 원도심이 활성화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모으는 자리였다. 이 포럼에서 중요한 발언이 나왔다. 평소 ‘아카데미극장 보전이 웬 말이냐!’며 ‘우리는 주차장이 더 필요하다’는 지론을 펴왔던 한규정 문화의거리 상인회 당시 회장이 오셔서, “상인회 안에서 격렬한 토론을 했고 주차장보다는 아카데미극장 보전이 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결정했고 지지하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손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쳤다.

시민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열흘 기간 동안 1,200여 명이 참여했고, 설문조사에 참여한 88%의 시민이 극장 보전을 원한다는 답변을 해주셨다. 그리고 진행된 ‘아카데미로의 초대’ 행사. 온라인 홍보 뿐만 아니라 풍물시장 오일장에 맞춰 나눠드린 행사 팜플렛 덕분에 많은 시민들이 오셨다. 행사장에는 아카데미극장과의 사연을 담은 시민 엽서를 걸고, 원주에서 가장 멋진 극장이라던 시공관의 옛 문짝도 가지고 와 전시했다. 오래동안 보관되어 있던 영화포스터도 벽면에 붙였다. 정신없는 여름날이었지만 준비한 모두들 흥겨운 시간이었다. 

 


몇 번의 ‘아카데미로의 초대’ 행사를 거치면서 ​보다 많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보전운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아카데미극장 보전을 위한 시민기획위원을 모셨다. 2017년, 22명의 시민기획위원이 중심이 되고, 원주역사박물관의 도움을 받아 ‘먼지 쌓인 극장에 불을 켜다’를 진행했다. 원주와 서울 곳곳에 흩어져있던 극장의 물건을 모았고, 원주 극장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내었다. 
극장의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 제작에도 힘을 들였다. 서울영상미디어센터의 도움을 받아 원주 단관극장들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씨도로 시네마로드>, 단관극장과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단편영화 <꿈의 공장>을 제작했다. 그 과정에서 멀티플렉스 극장 개관에 환호했던 원주의 젊은 친구들이 폐관된 극장으로만 여겼던 아카데미극장을 바라보며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아카데미극장, 천천히 천천히 물어가는 시간
‘아카데미극장’이라는 고민의 시간이 갈수록, 단순히 오래된 극장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지역재생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동진(​경성대학교 도시공학과)은 지역재생을 “쇠퇴하거나 쇠퇴 중인 지역에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여 살린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것처럼 아카데미극장에 잘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밤이면 사람의 발길이 끊기는 구도심에 지속적인 문화콘텐츠를 제공하여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면 누가 마다할까.
극장은 영화만을 상영하는 곳이 아니었다. 의연금 모금을 위한 악단 공연이 진행되고 초등학교 졸업식, 시민들이 참여하는 ‘가족노래자랑’이 열렸다. 아카데미극장은 몇 사람의 아이디어로 쉽게 변화해서는 안되는 곳이다. 원주를 살아온 많은 이들의 기억이 새겨진 공간은 58년의 시간만큼 두터운 것이다. 그 기억들을 헤아릴 충분한 시간이 시민들에게는 필요하다. 원주의 대중문화를 이끌던 극장의 현재의 의미를 따져 어떤 공간으로 변모해야 할지, 쇠퇴해가는 구도심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시민 모두가 천천히 천천히 재생의 의미를 물으며 찾아가야 하는 공간이다. 그래야 아카데미극장이 구도심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는 공간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원주 모두 힘모아 근대역사공간 주목 받는 계기 되길
2020년 아카데미극장에서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이다. 작년 철거 위기까지 갔던 아카데미극장이 원주시와 소유주의 협의, 또 여러 사람의 마음과 힘이 모여 다시 한번 재생의 기회를 잡았다. 강원도와 원주시의 지원으로 원주역사박물관이 중심이 되고, 원주영상미디어센터와 원주창의도시지원센터, 극단 노뜰이 힘을 합쳐 아카데미극장 내에서 공연, 그림책, 영화를 주제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아카데미’를 아끼는 원주지역 여러 단체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다. 같이 손님 모실 준비로 청소부터 시작하고, 재미있는 기획을 위해 머리를 맞대어 갔으면 한다. 
2016년부터 시도되고 실패되었던 여러 아카데미극장 보전 사업이 재생으로 이어질 어쩌면 마지막 기회이다. 이번 7월부터 시작될 아카데미극장 재생 프로젝트가 이후 문화재청에서 공모하는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사업 신청에 밑바탕이 되어 원주 구도심 내 근대역사공간들이 다시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글 변해원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사진 원주영상미디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