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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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독일_드레스덴_2.jpg | 조회수 | 2,006 |
우리가 이곳에서 태어나면 어땠을까
![]() ![]() 체코 프라하에서 버스로 1시간 40분 정도를 달려 독일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인구 54만 명이 사는 이 도시는 매년 12월에 알트마르크트 광장(Altmarkt)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맘때 여행객이 많이 몰린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이 끝난 1월의 드레스덴은 조용하고 한적하다. 마켓이 벌어지던 광장에는 3월까지 열리는 스케이트장이 막 개장을 앞두고 있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드레스덴을 가로지르는 엘베강과 아우구스투스 다리(Augustusbrücke) 가 있다. 보수 공사 중인 아우구스투스 다리에서 엘베 강(Elbe) 쪽을 바라본다. 꼭 이런 강을 볼 때면 “강의 폭이 도시의 크기를 말해준다”라는 말이 생각나고 그럼 서울과 파리, 그리고 원주를 떠올린다. 다리 아래로 가물은 엘베 강은 한강보단 좁고 센 강보단 넓다. 고향 생각에 연상한 원주천은 강과 한 묶음이 되기엔 역시 역부족이다. 다리를 건너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너른 폭의 길과 마주한다. 흡사 차가 다니지 않는 광화문 광장 같다. 길 양쪽에 난 저층 건물은 또 어떤가. 건축 도서에서나 볼 법한 것처럼 멋지다. 함께 여행을 간 친구에게 호기롭게 말한다. 나 오늘 저기 보이는 집 한 채 살 거니깐 너도 집 한 채만 골라봐. 친구는 진짜집을 살 것처럼 잠시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베란다에 색이 칠해진 집 하나를 가리킨다. 친구와 나는 터벅터벅 계속 길을 걷는다. 입 밖으로 물음표가 샌다. “우리가 만약 이런 곳에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그러자 어느 소설책에서 여름 바다를 보며 주인공이 한 말이 스친다. “이런 곳에 태어났으면 뭐가 됐을까? 뭔가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1) 오렌지빛으로 물든 저녁 햇살이 엘베강 주변을 덮고 사람들이 너른 간격으로 달리기를 하거나 산책을 한다. 드레스덴에서 한참 떨어진 동아시아에서 온 두 명의 여자가 이곳에서 쓰이지 않는 말로 대화한다. 대화의 대부분은 감탄사와 형용사다. 저 멀리 노란색으로 칠한 트램이 엘베 강 위를 달린다. 친구가 서울에서부터 가져온 필름 카메라 속으로 오렌지빛깔의 드레스덴 풍경이 계속 담긴다. 저녁 햇살에 차가운 겨울 공기 데워진다. 별말 않고 걸어도 여행 느낌이 물씬 풍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드레스덴을 기억하기 위해 나도 아이폰 카메라 버튼을 연거푸 누른다. 평온한 여행이다. 1) 김세희 《가만한 나날》 중 <얕은잠> 인용
글 이지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