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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서 보낸 편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5-21
첨부파일 부부.jpg 조회수 1,874

 



그대가 나이고 내가 그대이거늘
서울에서 평생을 학자로 살아온 노부부가 원주시 흥업면 대안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농사철이 시작되면 아내는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밭에서 이것저것 키우느라 쉴 틈이 없습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돕거나 글을 쓰면서 하늘 아래 사람의 형상을 한 산들에 이름 붙이기 여념 없습니다. 한가로운 날은 아내가 만든 자장면을 먹고, 입맛이 없으면 아내는 아껴두었던 호박을 꺼내 호박죽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한여름에는 가끔 시내 마트에서 잘 손질된 닭을 사다 삼계탕도 먹으며 몸에 기운을 북돋아 줍니다. 남편은 아내를 성모 마리아에 비유하며, 자신에게는 성모 마리아가 두 분 계시는데, 한 분은 어머니고 또 다른 한 분은 바로 아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합니다. 서로를 존중해주고, 아껴주는 마음이니 평생을 함께 살았어도 서로에게 성낼 일이 별로 없을 듯 보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은 평생 아내에게 하대하는 법이 없었고, 언제나 존대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무위당 선생님의 아내이신 이인숙 선생님도 말할 것 없이 한 살 터울의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의 가장 큰 힘은 말없이 자신을 믿어주는 아내였습니다. 서울에서 곱게 자라 낯선 원주 땅으로 시집을 온 이인숙 선생님 또한 무위당 선생님이 큰 힘이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혼인율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지난해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따지는 조혼인율은 4.7건으로 1970년 통계작성 이후 최저 수준이라고 합니다. 혼인이 가장 집중되는 연령대인 30대 초반 인구가 감소했고, 사회조사 결과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급감하는 데서 볼 수 있는 결혼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혼인 감소로 분석됐습니다. 반면 지난해 인구 1,000명 당 이혼 건수를 말하는 조이혼율은 2.2건으로 전년보다 0.1건 늘었는데, 이혼 건수는 11만800건으로 2.0% 증가했다고 합니다. 특히 황혼 부부의 이혼이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여 지난해 20년 이상 부부의 이혼은 3만8,400건으로 전년보다 5.8% 늘었습니다. 남녀 모두 40대에 이혼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의 말씀 중에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달이 나이고 해가 나이거늘 분명 그대는 나일세’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 세상에 나 아닌 것이 없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것은 나에게 화를 내고, 내가 내 코에, 내 입에, 내 왼쪽 손에 화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대가 나이고, 내가 그대인데 누가 누구에게 화를 내고 싸울 수 있겠어요. 이 마음은 남을 배려하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영복 선생은 배려에 대해 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의 비결, 부부간 잘 사는 비결은 바로 배려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등 많은 기념일이 있지만 부부의 날도 있습니다. 내 옆에서 항상 나의 든든한 편이 되어주는 사람에게 최대한의 배려가 필요한 날들 같습니다. 

 

편집장 원상호

 


여는 글
1924년 8월 20일자 <동아일보>에 “딸의 의견을 묻지 않고서 부모가 정한 혼인이 깨져서, 잔칫날 신부가 달아난 소동”이 담긴 기사가 실렸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20세 딸 김정옥은 당시로 치면 신여성에 속했습니다. 이 신여성은 평생을 해로할 사람에 대한 아무런 이해나 사랑도 없이 사진만을 교환하여 이뤄지는 결혼에 반기를 들었고 결국 혼인 전날에 혼인 서약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신여성의 부모와 오빠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신부의) 뺨을 치고 발로 차는 등” 폭력까지 행사하며 혼인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결국 혼인은 중단됩니다.

이러한 결혼 과정은 한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흔한 일이었습니다.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정한 혼기가 있었고 이 범위에 있던 젊은 여성과 남성은 부부의 연을 맺어야 했습니다. 2020년인 지금은 어떨까요. 여전히 혼기는 존재하나 기준 나이가 예전보다 높아졌고 결혼 상대는 당사자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피상적 결혼”에서 “주체적 결혼”으로 바뀐 셈이지요. 또한 여성이 남성의 집안으로 속한다는 가부장적 결혼관에서 여성과 남성이 한 집안을 이룬다는 평등의​ 결혼관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번 호의 테마는 “부부”입니다. 가정의 달이자 부부의 날(5월 21일)이 속한 5월을 맞아 가정의 중심축인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부부의 의미를 살펴보고 원주 사회적경제 조직 내에서 부부의 연을 맺을 예비부부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이 외에도 공동 육아 협동조합 소꿉마당을 소개하고 <원주에 사는 즐거움> 창간호와 커뮤니티 케이 학습과 관련한 수강생 원고도 마련했습니다.

세계적인 여성 작가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자신의 작가 생활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남편 레너드 울프가 있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아픔과 상처를 감싸주고, 스스로가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아내를 위한 출판사를 직접 차리기도 했지요. 이로운 부부란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부부가 서로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