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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서 보낸 편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4-24
첨부파일 인권.jpg 조회수 1,789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960~1970년대 동네 언니와 또래 여자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도시로 돈을 벌러 마을을 떠났어요. 그 돈으로 오빠나 남동생 학비를 대고는 했지요. 나도 인천으로 돈을 벌러 갔었지요.” 

 

제가 존경하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수출역군, 산업역군, 경제성장의 디딤돌 역할을 했던 분들의 어린 시절은 비슷합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떠난 우리의 누나, 언니들은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못 먹고, 못 입으며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을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 삶은 처절하리만큼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지요. 노동인권이라는 말은 먼 나라의 일이었을 따름이고요. 인권이라는 말 자체가 생경했을 정도였죠. 병이 걸려도 병원을 찾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병원비를 아껴야 했으니까요. 이제는 인권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그저 말로만 머무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차별과 혐오가 더 늘어난 것만 같아요. 사회가 다양화되고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인권침해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행위, 혐오도 함께 늘어나고 있지요.

올해는 전태일 노동인권운동 50주년입니다. 1962년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981년까지 20년 동안 진행되며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을 이룩합니다. 그렇게 이룬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정권유착과 노동자 인권말살의 시초가 되기도 하지요.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을 외치며 온몸을 불사른 평화시장은 청계천에 있었습니다. 전국 의류시장의 90%를 차지할 만큼 성장한 평화시장은 의류의 메카로 자리 잡기에 이릅니다. 자본가와 정부가 손을 잡고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기, 평화시장의 누군가는 그 경제성장의 뒤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는데, 그들은 바로 봉제공장의 미싱사와 재단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햇빛도 들지 않고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는 다락방에서 하루 16시간씩 미싱을 돌렸지만 월급은 고작 교통비와 용돈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이런 현실은 전태일로 하여금 노동인권운동의 세계로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전태일은 자본가와 대화를 시도하고 언론사를 통해 사실을 알리지만 경제성장이 최우선인 국가와 자본가들로부터 번번이 배신을 당하고 맙니다. 전태일은 결국 1970년 11월 13일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죽음에 이르지만, 수많은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기틀이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도 우리 주변의 노동현장에서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할 때는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편집장 원상호


여는 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를 ‘인권’이라 합니다. 근·현대에 이르러 인권은 프랑스 혁명(1789)을 시작으로 노동권 운동, 세계 대전, 여성 참정권 운동을 거쳐 마침내 세계 대전이 끝나고 3년 뒤인 1948년 ‘세계인권선언’ 채택으로 이어집니다. ‘세계인권선언’의 첫 두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이 선언에 나와 있는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인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우리의 삶과 함께하지만 숨쉬기처럼 의식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아 인간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할 때 우리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계인권선언문’의 첫 두 조항처럼 누구든지 몸의 상태나 성별, 인종, 경제력 등을 기준으로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번 호는 [인권]을 주제로, 인권 이야기와 함께 강원도상임인권보호관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원주에 사는 즐거움> 창간호의 주요 내용과 ‘커뮤니티케어’ 이야기도 실었습니다. 두레공예, 한살림 등의 조합원 소식과 함께 노나메기 협동조합을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마스크 착용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것처럼요. 민낯으로 꽃송이를 맞이할 날을 기다립니다.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