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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 떠난 등나무 아래 시민들 웃음 가득했으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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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의 추억은 동네와 떼어놓을 수 없다. 나는 버스를 타고 남부시장에서 내리거나, 원동 동성아파트를 지나는 골목길로 학교에 등교했다.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골목에서 바바리맨이 자주 출몰했고 친구들이 울면서 등교하곤 했다. 하굣길의 추억은 좀 더 풍부하다.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았는데, 친구들과 돈을 모아 향교막국수를 저녁으로 사먹거나, 날이 좋은 날엔 추월대길을 골목골목 쏘다니다 설렁설렁 집에 들어가곤 했다. 1학년 때는 본관 4층에 교실이 있었는데, 이따금 큰길 건너편에 있는 남자고등학교에서 거울에 반사시킨 빛이 반짝거리며 신호를 보내오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의 후배들은 이런 추억을 알지 못할 것이다. 몇 년전 이맘때 학교가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명륜동에 있던 옛원주여고 이야기다.

오랜만에 찾은 옛 원주여고는 쓸쓸했다. 철조망 너머 운동장엔 하얀 개망초꽃이 일제히 피어 뒤덮였다. 건물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져 초라했지만 몇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치곤퍽 대견스럽게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입학하기 직전 신축되었던 금란관은 현판이 떼어진 자리에 글씨 형태만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선택과목인 음악 수업을 듣고, 1·2학년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던 건물이다. 교문 쪽으로 다가갔다. 굳게 걸린 문엔 강원도교육감의 재산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접근자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교문 안 바로 오른편 건물인 진달래관에선 점심시간마다 배드민턴을 쳤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과 둘씩 짝을 지어 내기를 해서, 학생부 선생님들 몰래 교문 바로 앞의 문구사에서 불량식품을 사먹곤 했다. 진달래관은 지난 2013712, 원주여고가 혁신도시로 이전하기 전 마지막으로 고별식이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원주여고는 1945년 신명여학교로 개교, 원주농고를 제외하면 원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고등학교다. 1973년 일반계고등학교로 전환하며 원주여자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2009년 혁신도시로의 이전이 확정된 이래 부지 활용에 대한 방법은 계속 논의되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20137월 학교가 이전하며 ()’가 붙은 원주여고터는 주민들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주변 상권 문제는 물론, 폐허처럼 변한 터에 탈선 청소년들이 모이거나, 주민들이 쓰레기를 불법 투기해 위생상의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원주시는 2014년 초 부지 매입 계획 및 건물 리모델링 계획을 발표하고, 그 후 강원도에 도립문화예술공원 조성을 요청했다. 이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최문순 도지사는 옛 원주여고 터에 문화커뮤니티센터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포함시킨 바 있다. 원주시는 20154월 도교육청 소유인 옛 원주여고 부지와 강원도 소유인 반곡동 옛 종축장 부지를 교환하자고 제안하였으나 이 역시 무산되었다. 토지 감정가에 문제가 있어 지난 강원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부결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원주시는 시비로 부지 및 건물을 매입하고 국·도비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으며,2017년이 되며 비로소 옛 원주여고의 활용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옛 원주여고는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월과 4월 복합문화센터 조성을 위한 시민워크숍을 개최되었으며, 526일에는 원주여고 졸업생을 포함한 문화인·시민 30여명이 참석해 부지를 둘러보고 관리 상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원주시는 지난 7월 보도자료를 통해 옛 원주여고 활용 방안과 시기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안내했다. 630일 원주시는 강원도원주교육지원청과 옛 원주여고 부지 및 건물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 사전사용승낙도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원주시는 옛 원주여고 부지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의 공연예술연습공간 조성사업에 최종 선정되었다는 소식도 전했다. 공연연습장 조성사업은 민간 공연예술단체와 지역예술인들에게 안정적인 연습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실시되는 것으로, 이에 따라 국비 15억 가량을 지원받아 하반기 설계 및 공사가 진행되며, 20181월부터 본격 활용될 예정이다. 공연연습장을 제외한 다른 건물의 리모델링 역시 연내 착공해 2019년에 준공하는 것이 목표다. 부지 29,660, 건물 11,365규모로, 리모델링이 완료되면 다목적 공연장을 포함해 문화커뮤니티동, 창작동, 문화아카데미동, 청소년문화센터, 게스트하우스 등을 갖춘 복합문화커뮤니티센터로 재탄생한다.


 

이를 위해 원주시에서는 리모델링 이전에 임시주차장 조성 일부 시설을 이용한 탐방 원주그림책시즌 연계사업 등의 시범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향수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모교 터를 보던 중, 우연히 한 사람을 마주쳤다. 전기 공사를 위해 사전 답사를 나온 것이라고 했다. 이제 정말로 옛 원주여고는 대대적인 변신에 들어간다. 옛 원주여고가 결국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청사진만으로는 아직 알수 없다. 수많은 소녀들이 등나무 아래에서 십대 후반 시절의 추억을 쌓았던 그때만큼 아름다울 수 있을지, 조금 쓸쓸한 마음도든다. 그렇더라도, 학생들이 떠난 공간에 다시 시민들의 웃음이 가득차기를 희망한다.

. 이새보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