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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서 보낸 편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2-27
첨부파일 스토리그래픽_39호.jpg 조회수 2,070


 

생명 위기의 시대를 건너기 위해서는​
“생명운동이란 어차피 모든 문제가 생명 속에 하나 둘 살아나는 것인데 그것을 쉽게 따라갈 수 있게 처리가 되어야 되지 않겠나, 그런 것이 뭐냐 하면 원래가 전체를 모시고 갈 수 있는 하나의 생활 태도가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해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구석을 봐도 시(侍)고 저 구석을 봐도 시(侍)고 시(侍) 아닌 게 없는데 그것을 모신다고 하고, 함께 사는 관계를 키워간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시(侍) 아닌 것이 없지요. 전부가 시(侍)지요. 그렇게 됐을 때는 쉽게 알 수 있고 쉽게 행동할 수 있고 쉽게 따를 수 있고, 그렇게 처리가 되었을 때 그 일은 비로소 제자리에 크게 돌아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좀 해봤어요.”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은 <한살림선언> 하루 전인 10월 28일 한살림모임 창립기념 강연에서 ‘시(侍)에 대하여’를 이야기하며 ‘한살림운동과 생명운동이 어렵게 이야기가 되지 않고 쉽게 이야기가 되고, 또 서로 모시는 입장으로 되고 일체를 모시는 입장으로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1989년 10월 29일 대전 신협연수원 마당에서 ‘문명위기론’과 ‘생명론’ ‘한살림운동론’으로 구성된 <한살림선언>이 발표됐습니다. 무위당 장일순과 인농 박재일, 김지하, 김민기, 최혜성 등 생명운동가와 협동조합운동가, 지식인, 청년, 재야 민주인사들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한살림선언>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전통과 유기적 지식인들의 결합이 낳은 시대 성찰이자 생명운동 선언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박맹수 원광대학교 총장은 <한살림선언>을 처음 접했을 때의 순간을 이렇게 말합니다. “제 인생에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준 사건이 바로 <한살림선언>입니다. 저의 인식의 대전환은 무위당 선생님과 만남에서도 이루어지지만, 결정적인 대전환은 <한살림선언>을 손에 넣고 읽던 바로 그때였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생명의 위기, 공동체의 위기, 기후의 위기 등 모두 인간이 만들어 놓은 위기입니다. 《침묵의 봄》으로 현대 환경운동의 지평을 연 레이첼 카슨은 “만물과 공유해야 하는 이 세상을 무모하고 무책임하게 오염시키는 인간의 행위에 가장 먼저 대항하고, 우리를 둘러싼 이 세상에서 결국 이성과 상식의 승리를 위해 수천 곳에서 전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한살림선언>이 외롭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아 옵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日日是好日 

 

편집장 원상호

 

 

여는 글
2010년대가 한 달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서는 ‘이게 벌써 10년 전’으로 시작하는 옛 자료를 공유하는 글이 무척 많아졌습니다. 유명 가수 그룹이 유행시킨 ‘시건방춤’과 피겨 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인사하는 모습 등을 추억하며 ‘10년’이라는 시간에 의미에 탄식합니다.
여러분의 2010년대는 어떠셨나요? 2010년 1월 1일이 지나 정식으로 성인이 된 저는, 10대 때는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 몇 해를 헤맸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친구들과 떠난 제주도 여행, 나리타공항에서 24시간 가까이 환승 목적으로 체류하며 기어이 도착한 프랑스 여행, 인사동 뒷골목에서 처음으로 간 포장마차, 대형마트 한편에서 증명사진 찍어주는 아르바이트, 처음 받은 꽃다발, 처음 탔던 지하철 첫차, 아무 생각 없이 달렸던 한강 자전거 주행, 첫 이별, 상수역 단골 술집에서 밤새도록 떨던 수다, 엄마와의 여행... 
다가올 2020년대는 어떤 시대로 어떤 기억을 만들어 갈까요? 벌써 궁금해집니다.

이번 호 주제는 생산과 조화를 함께 아우르는 [한살림 선언 30주년]입니다. 마을 기업 ‘설악자연농원’과 ‘괘석영농조합법인’ 대표와 조합원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지난 11월, 원주를 방문한 오사카 방문교류회 소감문과 승강기 안전을 책임지는 ‘한국승강기협동조합’ 인터뷰도 실었습니다. 

얼마 전 눈 내린 양구 터널을 나오며.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이 생각났습니다. 곧 설국의 계절입니다.

 

글 이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