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1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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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위원장_최법순.jpg | 조회수 | 2,400 |
“‘개미들마을’의 발전은 교육에 달려있어요” 진한 초록빛 산 사이로 구불구불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거칠게 깎인 절벽과 높은 산봉우리는 카메라로는 도저히 실제 느낌을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웅장하다. 움푹 파인 그릇에 담긴 듯, 산과 산 사이에 낮은 분지에 자리한 정선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선평역이 보인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2003년부터 운영 중인 체험형 농촌마을 ‘개미들 마을’에 다다른다. ‘새농촌영농조합법인’과 ‘개미들마을’은 같은 단체인가요? 네. 같습니다. 새농촌영농조합법인은 이곳(정선 낙동2리)에 사는 주민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데, 이름이 긴 탓에 외부인들이 기억하기가 쉽지 않아 ‘개미들마을’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붙였어요. 밖에서는 이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마을명이 독특해요, 무슨 의미인가요?) 개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부지런하고, 단합이 잘 되는 모습이잖아요. 많은 사람이 우리 마을을 이렇게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되었어요. 원래 이곳의 정식 행정구역명칭은 ‘남창’입니다. 국가나 관청이 가진 곡식을 보관하는 창고인 남창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1940년경부터 낙동으로 불리기 시작했어요. 낙동이란 주민이 온순하여 서로 협동한다는 뜻에 ‘여민동락’을 의미해요.
‘개미들마을’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체험형 농촌마을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이곳에서 많이 잡히는 송어잡기부터 백이산白夷山과 동남천東南川을 둘러볼 수 있는 자전거 하이킹과 풍경열차, 난타체험과 수확체험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입니다. 이 외에도 폐교한 학교를 리모델링한 숙박 시설과 일반 펜션, 한옥 같은 숙박 시설도 함께 운영 하고 있습니다.
‘개미들마을’이 시작이 궁금해요. 저는 이곳(개미들마을)에서 나고 자랐어요. 그러다 학교 진학을 위해 서울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국어 교사를 하며 풍요롭지는 않아도 남부럽지 않게 살았어요.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척박한 도시 생활에 지쳐갔고 결국 지난 2001년, 어린 시절 느꼈던 고향의 따스함을 기대하며 이곳으로 귀농 했어요. 하지만 기대는 귀농 후 며칠 만에 무너졌어요. 기대와는 달리 마을 공동체는 무너지고 있었고 이웃들은 서로 적이 되어 있었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며 ‘마을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고민했고 그 이유가 농가 소득이 적은, 어려운 마을경제 탓이라는 생각에 도달했어요. 당시에 이곳에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건 대부분 농사뿐인데 농가들은 계속 부채만 늘어가는 중이었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토착민과 귀농한 외지인 사이의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요.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마을회관 하나조차 없어 이들이 다 함께 모이기도 어려웠지요. 우선 마을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이 꼭 필요했고 그렇게 시작한 일 중에 하나가 바로 ‘개미들마을’이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은 모두 마을 주민인가요? 네. 모두 마을 주민이에요. (모두 이 곳이 고향이신 분들인가요?) 아닙니다. 마을 주민은 6:4 비율로 6은 토착민, 4는 이곳으로 귀농·귀촌한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개미들마을’을 20년 가까이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요? 최근 들어 외국인 방문객이 크게 늘었어요. 다양한 외국인 방문객 중 동남아에서 특히 많이 오는데, 이 분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우리 마을의 조직 분위기 때문이에요. 마을공동체사업은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개 불투명한 자금 사용 때문인데요. 우리는 ‘재정 투명성’을 내세워 처음부터 모든 재정을 공개하고 자금 관리 또한 아예 전문가에게 맡겼습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이 ‘문서화’ 입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문서로 꼼꼼히 기록하고 남겨야 마을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을 공동체의 이원화’입니다. 소득사업을 주도하는 출자자 중심의 경제공동체와 마을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장 중심의 생활공동체가 나뉘어야 합니다. 또, 리더는 지원금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어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편, 귀농·귀촌한 주민이 바로 ‘개미들마을’에 합류할 수는 없습니다. 자체적인 심사 프로그램을 통과해야 비로소 함께 할 수 있어요.
자체적인 심사 프로그램의 내용을 알고 싶어요. 시골에서 필요한 ‘사람’의 조건은 세 가지예요. 우선 사람 그 자체가 있어야 하고, 가능한 젊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재가 있어야 합니다. 또, 제가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면서 여러 일을 겪어 보니 꼭 피해야 하는 사람의 기준이 생겼습니다. 우선 모든 시선이 삐딱한 사람, 그리고 자신의 말만 고집하는 고집쟁이, 마지막으로 자신만 챙기려는 욕심쟁이입니다. 고정관념과 편견이 강할수록 마을에 적응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곳 특성상, 40가구가 모여 살면 40가구가 모두 사장입니다. 다들 자기 자신을 대표로 농사를 짓고 가정을 꾸려가니까요. 이런 성향의 사람들을 한데 모아서 조화롭게 하는 일은 무척 어렵기 때문에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능력을 특별히 더 눈여겨봅니다.
마을에서 ‘교육’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사람에 의해서 성공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의 발전은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만큼 교육과 사람이 중요합니다. ‘개미들 마을’이 있는 곳은 예로부터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 안에서의 정서가 전부였고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고정관념과 편견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깨기 위해서는 ‘교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교육이 계속 되면 자연스럽게 인재를 육성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개미들마을’은 11월 말부터 2월까지 비수기에 접어드는데 이때 집중적으로 주민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주민 교육비용은 마을에서 모두 지원하고요. 결국 모든 일은 경험에 의해서 나옵니다. 그래서 견문을 넓혀야 하는 것이고요. 때로는 유럽이나 일본, 중국 같은 해외 선진지로 견학을 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리고 선진지를 갈 때 무조건 잘 되고 성공한 곳만은 가지 않습니다. 잘 되다가 망한 곳을 가기도 합니다. 실패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겸업(농사&관광업)을 장려하는 이유는요? 농촌의 주목적은 농사이지, 관광이 아닙니다. 우리 마을 같은 경우는 농사 비중을 6, 관광 비중을 4로 두고 있습니다. 도시민들은 시골에서 도시에 없는 것들을 누리고 싶어 해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보거나 여러 가지 레저 활동을 하는 식으로요. 무엇보다 넉넉한 인심을 만나러 옵니다. 그래서 시골 관광의 1순위는 인정人情이어야 합니다. 인정이 없거나 부족하면, 도시민들은 시골에 오지 않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도시민들과 잘 나누기 위해서는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농사를 통해 시골 경관을 보여줄 수 있고 농사를 이용한 체험학습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광업은 사회 현상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항상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대비책으로 항상 농업을 기본으로 두고 ‘개미들마을’ 일을 할 수 있도록 권장해요. 그런데 농사와 체험학습 일이 겹칠 때가 있어요. 농사나 체험학습이나 봄과 가을이 한창 바쁜 시기인데, 이럴 때에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체험활동 일을 서로서로 바꿔 진행하고 농사는 품앗이로 해결합니다.
최 위원장 님이 바라는 ‘개미들 마을’의 미래가 궁금해요. 한국 농촌의 새로운 롤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시골에서도 도시 못지않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런 분위기가 다른 농촌 마을까지 뻗어갔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인재 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함께 하고 있는 주민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나아가 도시에 있는 젊은이들이 시골로 돌아와도 괜찮은 분위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취재·사진 지역문화콘텐츠협동조합스토리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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