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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푸드 이야기 [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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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를 견뎌 싹을 틔우고 여러 번 잎을 잘라도 죽지 않는”

 


한여름에서 늦여름으로 가는 길목, 선선한 아침저녁과 달리 낮은 아직 뜨겁다.

한낮의 열기를 헤치고 원주시 호저면에 자리한 이영철(66), 김정숙(63) 부부의 일터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 알싸한 매운 향이 콧속을 휘저었다. 주변에 부추로 가득한 비닐하우스 몇 동이 보였다. 인기척에 실내에서 작업 중이던 이 씨가 밖으로 나왔다. 아내 김 씨와 함께 부추를 다듬는 중이었다. 이 씨와 함께 실내 작업장을 둘러본 후 쭉 뻗은 부추로 가득한 비닐하우스 입구에 나란히 섰다.

 

3년 동안 자라는 부추

“뿌리 종자식물인 부추는 종묘사에서 씨앗을 받아서 길러야 해요. 물론 종묘사에 가지 않고 부추에서 씨를 내서 지을 수도 있지만, 씨앗이 잘아요. 그래서 수확량이 적고 줄기도 가늘어서 상품 가치가 떨어져요.”

이 씨는 10년째 유기농 농법으로 부추 농사를 짓고 있다.

“날씨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 3월 말부터 모종 트레이(포토)에 부추 씨와 유기농 인증을 받은 거름을 섞어 심어요. 이때 부추 씨를 넣는데, 보통은 10알을 넣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는 30알을 넣습니다. 보통은 30알 중에서 20알 정도가 줄기로 자라는데, 지금 앞에 부추를 보시면알겠지만 10알을 넣었을 때보다 줄기가 두껍고 양도 많아요. 이 상태로 1개월을 기른 다음 비닐하우스에 옮겨 심어요.”

부추는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작물로 유명하지만 어디까지나 소규모 텃밭 정도의 규모에서나 허용된 말이다. 맛있고 양이 많으며, 질 좋은 부추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땅을 다듬고 부추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보통 구정이 끝나는 2월부터 김매기(작물을 재배하는 곳에 생장하는 잡초를 뽑아 없애는 일) 작업을 시작해요. 그리고 그 위에 유기농 인증을 받은 거름을 깔고 트랙터로 한 번 더 땅 갈이를 해줍니다. 그리고 부추는 한 번 심으면 3년 정도를 수확할 수 있어요. 물론 3년이 넘어도 수확할 수 있지만, 부추가 가늘어지고 수확량도 훨씬 줄어들어요. 마치 우리 인간과도 같아요. 젊을 땐 왕성하지만 늙어갈수록 온몸이 아픈 것처럼요.”
 



지렁이가 사는 땅

이 씨는 올해 4월에 3년 동안 수확할 부추를 새로 심었다.

“부추는 5~6월에 수확량이 가장 많아요. 자라기 좋은 온도가 계속되기 때문이에요. 보통 부추는 20~25도일 때 쑥쑥 잘 자라고 해가 넘어가면 더 잘 커요.”

날씨와 함께 유기농 거름의 역할도 아주 중요하다.

“유기농 거름을 깔고 적정 온도가 계속되면 땅이 물렁물렁해지면서 지렁이가 많아져요. 지렁이는 농약을 자주 뿌리는 땅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생물인데, 이런 지렁이가 많아졌다는 건 그만큼 건강한 땅이라는 신호에요. 보통 지렁이가 한번 흙을 파기 시작하면 5, 60cm 까지 내려가는데요. 이때 땅 위에 있던 식물 잎 등을 땅 밑으로 운반하는 역할을 반복하며 땅을 순환시키는 데 도움을 줘요. 그럼 부추는 더 건강하고 튼튼해집니다.”

유기농 거름을 사용해도 방제는 필수다. 다만 방제약도 친환경 재료로 만들어진 것을 쓴다. 아니, 썼다. 3년 전부터 아무것도 쓰지 않고 부추를 키운다. 

“유기농 거름을 써서 쭉 땅을 갈았더니 어느 해부터인가 진딧물을 볼 수 없더라고요. 사람도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하면 병 걸릴 확률이 낮아지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땅이 계속 깨끗하니깐 나쁜 균들도 이제 여길 안 오는 거죠.” 
 



쉽지 않은 농사일

이 씨의 부추 비닐하우스는 총 7동이다. 그러나 7동 전체를 동시에 재배하지 않는다. “매년 돌아가면서 부추를 심어요. 쉽게 말해 비닐하우스가 7동이니깐 7년 동안 7번 돌아가는 식이에요.”​ 700평 이상의 부추밭은 이 씨와 아내 김 씨, 그리고 이웃집 부부 총 4명이 돌본다.

“2~3월에 땅 갈이를 끝내고 하우스 1동에 3t 정도의 유기농 거름을 깔고 모종을 심어요. 그 모종을 다시 하우스로 옮겨 심는 작업은 다 수작업이에요. 우리 부부와 이웃집 부부, 딱 4명이 해요. 요즘처럼 날이 더우면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해요. 너무 뜨거운 한낮에는 실내를 다듬는 부추 작업을 하고요.”

이 씨는 30년 이상 농사를 지은 베테랑 농부다. 부추 말고도 벼, 옥수수 등 웬만한 작물은 모두 섭렵했다. 

“30대 때부터 60대 중반인 지금까지 웬만한 작물은 다 해봤네요. 지금도 부추 말고도 벼도 있고 자잘하게 파 같은 것들도 키워요. 소도 기르고요.(웃음)”


유기농 농법에 눈을 뜨다
이 씨가 유기농 농법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건 30년 전 가톨릭 농민회 덕분이다. “30대 때 천주교 원주교구에서 시작한 가톨릭 농민회(이하 농민회) 초기 회원이었어요. 당시 농민회에서 농사를 제대로 하려면 땅부터 살려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대전에 있는 전국본부에 가서 농사 교육까지 받았어요. 그러면서 유기농 농법에 시초라 할 수 있는 ‘효소 농법’을 알게 된 거예요. 계속 배우다 보니 사람 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네요.”

하지만 유기농 농사는 개인이 혼자 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그래서 유기농 농사에 뜻을 가진 생산자들이 모여 ‘원주생명농업’ 조직을 만들었다.

“유기농 농사는 일반 농사보다 생산비가 조금 더 들어요. 그리고 판로를 내는 길도 쉽지 않고요. ‘원주생명농업’을 만들기 전에 ‘원주생활협동조합(원주생협)’이 있었지만 소비자 중심의 단체이지 생산자가 주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산자들끼리 모여 농사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판로를 모색하는 장이 꼭 필요했지요.” 현재 원주생명농업은 철저한 품질관리를 위해 약 160명으로 구성된 지역 농민회원(주주)들과 계약재배를 통해 쌀, 복숭아, 채소를 비롯한 16개 품목의 친환경 농축산물을 생산하고 있으며 지역 농가의 안정적 소득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 

“여기에서 생산하는 부추가 원주에 있는 학교 급식에도 들어가요. 그리고 학교나 외부 단체에서도 이곳으로 생산지 견학을 오고요. 질 좋은 지역 농산물을 지역 사람들이 소비해서 생산자는 안정적인 판로를, 소비자는 더 건강하고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얻을 수 있어 뿌듯합니다.”


글·정리 이지은

사진 원춘식

<이 글은 로컬라이프 열 번째 이야기 (2019.07)에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