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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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메인.jpg | 조회수 | 2,898 |
알바몬 ![]() 대학을 막 졸업한 해, 서울 중심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나는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월세를 내며 살았다. 이 정도 처지라면 곧장 정규직 취업이 ‘마땅한’데 ‘그만’ ‘알바생’이 되고 말았다. 뜨개질 같은 취미 수업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 일은 쉬웠다. 스케줄 관리 프로그램에서 수업 시간을 확인하고 전화 문의가 오면 응대를 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강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강의실 주변을 청소했다. 커피 머신에 커피를 채워 넣는 일도 도맡았다. 이렇게 시키는 대로만 하면 여느 직장인처럼 출·퇴근하며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은 국내에서도 제법 큰 규모의 문구 유통 회사 본사였다. 비록 층과 건물이 다르고 소속팀 이름도 살짝 달랐지만, 적어도 알바생을 관리하는 관리자는 본사 소속이었다. 관리자는 당시 40대 초반 정도에 여자였는데 왜 본사 소속 관리자가 본사 사무실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는지 궁금했지만 물을 순 없었다. 관리자는 가끔 일터를 나와 바로 앞 공사 중인 건물을 바라보며 혼자 담배를 태웠다. 관리자는 서울 어디에 ○○아파트를 사서 그곳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막 사회에 나온 나는 그게 얼마나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잘 알지 못했다. 알바생 같지만 알바생 같지 않은 30대 초반 여자도 있었다. 이곳에서 오래 일했고 집에서 얼른 선이나 봐서 결혼하라는 말을 듣고 있으며, 아직 주거 독립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관리자는 30대 여성을 친동생처럼 아끼는 것 같았지만 30대 여자가 같은 마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 30대 여자가 이대를 나왔다고 말했다. 왜 이대 나온 여자가 이곳에서 ‘나 같은 알바생’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지 의문스러웠지만 역시 물을 수 없었다. 하지만 멋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막 학교 밖을 벗어난 나는,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같은 책으로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대 여자의 삶 역시 책과 비슷한 맥락이라 여기며 속으로 찬탄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면 본사 소속 로고와 색이 새겨진 지퍼형 후드를 유니폼처럼 입었다. 실은 그때 그 옷을 입고 뿌듯했다. 10대 때부터 자주 들락날락한 유명한 온라인 쇼핑몰 회사였고 본사가 바로 건너편 건물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할 때 그 옷을 입는 사람은 알바생뿐이었다. 어쩌다 들어간 본사 사무실에서는 나처럼 지퍼형 후드를 입고 일하는 직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관리자가 사무실 안으로 호출했다. 점심시간이니깐 앞에 가서 햄버거를 사 오라는 심부름이었다. 구인 공고에는 적혀있지 않은 일이었지만 무슨 맛을 원하시냐고 묻고는 그곳을 나왔다. 그때 그 햄버거를 같이 먹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햄버거를 먹으며 왜 내가 햄버거 심부름을 다녀와야 했는지 한참 생각했던 것만은 또렷하다. 한번은 수강생을 맞는 카운터에 앉아 있는데 키가 크고 우아한 느낌이 드는 여자가 들어왔다. 본사 대표직을 맡은 사람 중 한 사람이라는 걸 관리자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아한 여자는 관리자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우아한 여자와 관리자는 오랜만에 마주친 사이 같았다. 그들의 대화는 평범했지만, 어딘가 불평등해 보였다. 대화하다 말고 우아한 여자가 갑자기 두통을 호소했다. 관리자는 호들갑스럽게 두통약이 탕비실에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나를 툭툭 쳤다. 나는 얼떨결에 탕비실에 들어갔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두통약을 겨우 찾아, 따라 들어온 우아한 여자에게 건넸다. 함께 들어온 관리자는 내 행동이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알약을 건네고 물을 주는 ‘올바른’ 방식을 알려줬다. 그때 윗사람에게 알약과 물을 ‘바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알게 되었을 뿐 어디 가서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결국 이곳을 채 몇 개월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 서울의 월세를 감당하기에는 빠듯한 급여 탓도 있었지만, 아르바이트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뜨내기인데 일터에서조차 같은 처지였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이날 이후로도 업종과 장소가 다른 간헐적 아르바이트는 계속되었다.
글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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