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9-0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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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여름농산물이야기1.jpg | 조회수 | 2,843 |
“펀펀하고 탱탱한 방울토마토” 차창 너머로 섬강과 합류 직전인 원주천이 보였다. 초록색 아치 장식이 멋들어진 호저대교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 호저면 고산리에 도착했다. 아기자기한 집들과 논밭 한가운데로 놓인 중앙고속도로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중앙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자 비닐하우스 몇 동이 서 있었다. 가까이 가자 모자를 눌러 쓴 조수행(63) 씨가 막 비닐하우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다들 다른 길로 들어와서 헤매는데 한 번에 잘 찾아오셨네요.”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하늘에서 굉음이 몰아쳤다. 바로 앞 사람과도 대화가 힘들 정도로 큰소리였다. 굉음의 주인공은 인근 공군비행장에서 훈련 중인 제트기였다. 그러고 보니 조 씨가 쓰고 있는 모자에 ‘공군특수비행단’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 모자요? 근처 공군비행단에서 하나씩 나눠 준 거예요.(웃음)”
![]() 방울토마토 키우기 제트기가 지나가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제야 비닐하우스 안에 가지런히 심어진 방울토마토들이 눈에 들어왔다. 방울토마토 줄기가 어른 남자 키 정도의 지지대에 묶여 있었다. “원래는 이것보다 더 높게 자라지만 (나는) 발판 놓고 작업하기가 힘들어서 이 정도까지만 키워요.”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가 바닥에 가득했다. 위로 올라 갈수록 덜 익은 토마토이거나 꽃만 달렸다. “파종은 2월 9일에 했어요. 가식(잠깐 심기)을 3월 4일에 하고 정식(아주 심기)을 3월 25일인가에 했어요. 4월부터 이렇게 열매가 달리기 시작했어요.” 조 씨는 바닥에 주렁주렁 놓인 방울토마토를 가리켰다. “맨 아래에 있어도 줄기에 가까운 게 제일 열매가 굵고 커요. 바깥으로 퍼질수록 열매가 덜 익고 잘아요. 중간에 있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자세히 보니 정말 그랬다. “제가 기르는 품종은 미니 찰 대추 방울토마토예요. 대추 방울토마토라서 보통 것보다 조금 더 커요. 맛도 꽤 괜찮고요.” 요즘은 일반 방울토마토보다 알이 더 큰 대추 방울토마토를 생산하는 농가가 많다. 또한 조 씨는 무농약 농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따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힘들어도 늘 이렇게 해왔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무농약을 해도 가격을 더 주는 건 아녜요. 만약 돈을 더 준다면 좋긴 하겠죠.(웃음)”
![]() 자연의 섭리 방울토마토 사이로 호박벌이 윙윙거렸다. “일부러 호박벌을 사서 풀어놨어요. 자연스럽게 수정이 되라고요.” 호박벌은 수정벌이라고도 불린다. “호박벌 없어도 (방울)토마토는 나오지만, 기형을 줄이려고 일부러 이렇게 해요.” 가물면 물을 한 번 씩 준다. “비닐하우스 천장 위에서도 물이 나오고요. 여기 바닥을 보면 수로가 하나 더 있어요. 여기서도 물이 나와요. 하지만 물이 너무 많이 나오면 토마토 상품 가치가 떨어져서 항상 주의해야 해요.” 조 씨는 방울토마토 말고도 파와 양파, 옥수수, 복숭아, 벼 등 여러 작물을 재배한다. “이제 여기 방울토마토를 다 거두면 다른 작물도 심어요.” 농사를 잘 알지 못한 채로 왜 방울토마토를 같은 곳에 심지 않고 다른 곳에 심느냐고 물었다. “아, 연작 피해를 막으려고요. 연작 피해가 뭐냐 하면요. 같은 땅에서 같은 작물을 계속 심으면 식물이 해를 입는 거예요. 예를 들면요. 옥수수를 같은 땅에서 계속 심잖아요. 나중에 보면 중량이 계속 줄어요. 덜 나는 거죠.” 내년에는 이곳에 파를 심을 예정이다. “여기가 300평이니깐 방울토마토를 다 거두면 한 2.5톤이 나와요.” 조 씨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일곱 시부터 방울토마토를 돌본다. “아침 일찍이는 방울토마토를 하고요. 낮에는 복숭아도 작업하고 양파도 작업해요.” 이 모든 일을 아내 강종래(62) 씨와 함께한다. 하지만 강 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집사람은 지금 저쪽에서 양파 일을 하고 있어요.” 인력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제 생각에는 농협 같은 곳에서 인력을 모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바로바로 현장에 투입되면 좋겠네요.”
고산리 토박이 조 씨는 호저면 고산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농사를 얼마나 했더라? 한 50년 했나…” 중간에 다른 일을 함께한 적도 있다. “일용직도 해보고요. 벌목도 해봤네요.” 조 씨가 농사를 짓는 호저면은 ‘닥나무 저楮’ 한자를 쓸 정도로 닥나무가 풍부한 곳이다. “지금 살아계셨으면 한 백 살이 넘었을 거예요. 이북에선 온 분이었는데, 그분이 닥나무 갖고 문 창호지 만드는 걸 했었어요.” 담배 농사를 짓는 곳도 많았다. “74년부터 97년인가, 98년까지 나도 담배 농사도 했어요. 지금은 안하고요. 고산리에서는 이제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저기 (호저면) 매산리 하나 있고 횡성에도 하나 있는 거로 알아요.” 다른 자랑거리도 물었다. “뽕나무(닥나무는 뽕나뭇과에 속하는 나무이다)가 많아서 오랫동안 누에를 치는 집이 있어요.” 조 씨가 방울토마토를 비롯해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고산리는 예로부터 비옥한 땅으로 유명하다. 고산저수지에서 발원하여 섬강으로 흐르는 옥산천이 흐르고 해발 350m 정도의 야트막한 산이 마을을 두르고 있다. 조 씨가 키우는 작물은 모두 이런 풍경을 마주하며 자란다. 인터뷰의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조 씨는 빈 상자를 꺼내왔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방울토마토 맛은 보셔야죠.” 즉석에서 딴 방울토마토가 빈 상자에 가득 쌓였다. “무농약이라 바로 먹어도 상관없어요.” 엄지손가락만 한 방울토마토를 한입에 꿀꺽 삼켰다. 푸릇한 여름옷을 입은 고산리 풍경이 입속 한가득 번졌다. ![]() 글 이지은 사진 원춘식 <이 글은 로컬라이프 열 번째 이야기 (2019.0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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